[에세이] 떠남의 재정의

끝없이 떠나며 남겨둔 조각 기록을 모아
글 입력 2023.07.3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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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다’ 라는 말을 정의하는 여러가지 갈래가 있다. 사전을 참고하니 대략 ‘옮기다’, ‘벗어나다’, ‘끊다’, ‘죽다’, ‘나서다’ 등이 눈에 띈다. 계속해서 어딘가로부터 혹은 어딘가를 향해 떠난다. 앞으로 더 많은 ‘떠남’을 경험하게 될텐데 나는 아직도 익숙지 않다.

 

 

 

나를 모르는 곳으로


 

여행은 나를 낯선 곳으로 ‘옮기는’ 행위이면서, 내가 원래 속한 곳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 저 문을 박차고 ‘나서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떠난다는 것에는 나의 의지가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냥 그러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떠날 수 없으니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번째 여행의 목적지는 어느 아이돌의 콘서트장이었다. 버스를 타고 두세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맞이하는 환희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에게 떠남의 의미는 쾌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늘 있던 자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비일상적 이벤트야 말로 가장 짜릿하니까.

 

두번째 여행의 목적지는 대만이었다. 처음으로 나선 해외여행에 나는 잔뜩 기대 하고 있었다. 나와 나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인다는 것은 대단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그때의 떠남은 도피였다. 나를 모르는 곳에서 더 대단하고 엄청난 사고를 칠 것도 아니면서 조용히 심호흡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던 날. 마치 그전까지는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숨이 막혔다는 듯이.

 

세번째 여행의 목적지는 서울이었다. 집이 있는 곳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해서 똑같지도 않은 복잡한 도시. 나는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나 뿐만이 아닌 야망의 도시로의 떠남은 내게 인내와 다름 없었다. 그 어떤 것을 가질 때까지 무너지지 않는 인내의 시간.

 

충분히 견디지 못해 감정이 터진 홍시처럼 흘러내린 날엔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나의 모든 떠남은 의지로 행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내 손으로 선택한 일에 치여버리는 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시간에 몸을 맡기면


 

그러나 의지 없이 이루어지는 헤어짐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네 마음이 꼭 그렇다. 유통기한이라도 있다는 듯 어느 날 별안간 인상을 달리하는 감정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어나곤 한다.

 

그게 못내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유기된 마음이 어딜 배회하는지 알수는 없어도 분명한 것은 상대와 나는 어떤 교차점을 지나쳤다는 사실 뿐이다.

 

사랑하던 마음으로부터 떠날 때도 있고, 미워하는 마음으로부터 떠날 때도 있다. 가장 최근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떠나왔다. 애정의 크기가 관계의 평형을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애정은 역시 크기가 아니라 모양이 중요한 걸까?

 

맞지 않는 퍼즐조각처럼 쓸모없이 나뒹구는 시간들이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툼은 핑계다. 연약하게 휘어지는 마음이 못내 이기적으로 보이는게 싫어서 대는 핑계. 그러니까 결국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변하는 것들이 숱하고, 우리는 그런 식으로 같은 행성에서 만난 서로 다른 우주인이라는 걸 이제 막 인지했을 뿐인 것이다.

 

 

 

앞으로만 나아가는 존재들


 

어느 날의 일기에 ‘아쉽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들.

 

 

시간이 흐른다는 것보다는 되돌릴 수가 없다는 게

앞으로만 나아가는 존재에게 왜 뒤돌아볼 기회를 주셨는지

모든 미련과 후회를 아작아작 씹어삼키고

아무렇지 않게 주어진 일을 지워가는게 그게 내가 해야하는 일인지

 


돌아가는 길을 표시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오는 많은 것들이 불안할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간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뜻하니까.

 

흐르는 동안 자리를 옮기고, 시간을 끊어내고, 감정에서 벗어나고, 문을 나서면서 결국 어디에 다다르게 될까 궁금해진다. 도착할 때까지 전혀 예측조차 할 수 없겠지만, 그동안 열심히 기록이나 남길까 한다. 어쩌면 이런 조각들이 하나 하나의 발자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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