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V.15

들뜬 마음과 재밌는 구경거리
글 입력 2023.07.1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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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V.15


  

첫 방문이었다. 가본 적은 없지만 이런 페어가 익숙하기도 하고 주변에 유경험자가 있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코엑스에서 하는 각종 페어에 가봤는데, 내가 소비하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남의 잔치에 불쑥 찾아간 느낌이 들었던 적은 없다. 심지어 일러스트 페어라니 벽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모든 부스를 돌아보겠다는 호기로움은 삽시간에 사그라들었다. 애정을 가지고 원하는 걸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살짝 이방인이 되었다. 요즘 부스는 이런 식으로 꾸미는구나, 전통적인 컨셉의 일러스트가 적지 않구나, 역시 하얗거나 동글동글한 동물이 인기, 고양이가 없었으면 큰일 났겠다 하는 단편적인 생각을 하면서 부스를 지나다녔다. 지갑을 열 각오를 하고 왔지만 부스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워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부스를 쭉 구경하다가 이 전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쪽으로 빠져서 안내도를 훑다가 외국부스를 살펴보기로 했다. 기업 부스는 사람이 몰리고 재미없을 것 같아서 외국 부스를 목표로 했는데 좋은 결정이었다.

 

국내의 유행과 해외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풍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었다. 개인의 차이도 크겠지만 국가, 다른 문화권이라는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 때문에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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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귀여운데 맛도 있는 케이크와 디저트를 아메리카노 없이 양껏 먹고 나서 뭔가 매운 게 생각날 때, 누가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을 권했다. 마다할 리가 없다.


그로테스크만큼 자극적인 건 더 없었다. 표현의 빈약함을 메우려는 의도의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본 건 대체로 취향의 표현이고 전시였다. 어디까지가 본인의 취향이고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전시장에서는 마라 같은 자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엽서라도 한 장 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게 나의 오래전 취향이 아니라 오래된 취향인가 혼란스러워할 때 친구가 상대적으로 자극적이기 때문에 시선과 손이 가는 게 아니냐고 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제일 맘에 들었기 때문에 샀다. 그로테스크와 호러블.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니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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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말했듯 생각보다 전통적인 일러스트를 선보이는 부스가 많았다. 그 유명한 흑요석님도 있었고 다양하게 전통을 차용한 일러스트를 선보이는 부스들이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사진을 찍었지만 쓸 만한 게 없어서 생략하게 되었는데 올린 것보다 더 동화적이거나 토속적인 것들까지 다양한 전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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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스는 큰 흐름이 내 취향과 닿아있지 않았을 뿐이지 작가 본인의 개성만큼이나 독특한 그림도 적지 않았고 저마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취향에 맞는다면 어디를 가도 원하는 게 있는 곳이었다. 상점을 컨셉으로 본인의 캐릭터를 녹여내거나 레트로를 컨셉으로 부스를 디스플레이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게 업계 내의 작은 유행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저 신선하고 재밌었다.

 

각 부스 가까이 가서 상품을 구경하지 못하더라도 부스 그 자체로서 하나의 컨텐츠처럼 느껴졌는데 이건 대부분이 한국 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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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지갑이 열린 건 오타니 스튜디오(Otahni Studio)였다. 순수미술적인, 유화로 그려낸 한국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풍은 눈에 익지만 심적으로는 친밀하지 않은 서양의 스타일인데 눈에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한국의 한 장면이었다. 다른 문화가 한 컷에 담겨있어서 하나는 가지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은 cerebrum art.original. 비너스의 탄생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재해석했다. 지극히 아시아적이면서 약간의 그로테스크를 가미했다. 비너스인데 해골이 얼굴을 대신하고 있다니 신선하기도 했고 탄생의 화사함이라곤 약간의 꽃뿐, 전체적으로 어둡게 화려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환기하는 스마일 타임 스튜디오의 꽃을 든 유령. 어릴 적 캐스퍼를 좋아했고 그 후로도 유령 캐릭터에 대한 호감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 번 봤다가 지나갔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유령을 데려왔다. 말하자면 이건 정말 나의 오래된 취향.


마지막은 묘재. 초반에 둘러보고 마음에 뒀다가 퇴장하기 전에 다시 들려 고민 끝에 전통과 고양이를 다 잡기로 했다. 얼핏 보면 전통과 고양이인가 싶지만, 자세히 보면 온통 고양이다. 이걸 고려청자가 생각나는 푸른색으로 뽑아내서 ‘사야지, 이건 사야지’ 하면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손바닥 두 개 크기의 클리너라는 실용적인 소비로 이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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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쓰면 일러스트 페어가 단순한 판매의 장처럼 느껴질 것 같은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입구 근처에는 회화 작가 보얀 젤레쇼브스키의 라이브 페인팅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주 그래피티는 아니면서 그래피티인 독특한 화풍.


그리고 글로벌관은 전시 공간을 넓게 확보해 두어서 부스를 구경하다 느긋하게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감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처럼 서일페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하게 느껴진 공간이었다.


요약하자면 잔치 같은 페어였다. 남의 잔치라고 해도 잔치는 역시 잔치, 재밌는 구경거리와 들뜬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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