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러분의 바다는 어떤 빛깔인가요 - 화가가 사랑한 바다

글 입력 2023.07.15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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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정우철 도슨트의 인터뷰를 인상깊게 보았다. ‘도슨트’는 전시 해설가로, 기획된 전시를 공부하여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직업을 의미한다.

 

정우철 도슨트는 앙리 마티스, 피카소 등 여러 전시에서 해설을 맡아오며 관람객들에게 ‘미술계의 스토리텔러’, ‘화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등의 찬사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작품 분석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미술 작품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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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전시를 꽤 자주 보긴 하지만, 주로 전시 팸플릿이나 전시장 벽면에 붙어 있는 설명, 오디오 가이드 정도만 참고하면서 보는 편이었다.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는 여백을 남겨둔 채 나의 시선에서 작품을 해석하고 그 여백을 채워가는 것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우철 도슨트가 들려주는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 그 삶의 방향에 따라 변해가는 화풍, 그림만 볼 때는 알 수 없었던 숨겨진 이야기들을 접하며 사람들이 왜 도슨트 해설을 꼭 들으려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작품에서 특정 감정을 느끼고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일도 흥미롭지만, 화가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그 화가의 입장이 되어 작품을 바라보는 일도 또 다른 느낌으로 매우 재미있었다.

 

작품이 그저 종이 위에 물감을 덧칠한 한 폭의 그림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과 고뇌가 전부 담겨 있는, 감정과 인생의 집합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예술가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평면적으로만 보이던 그림이 살아 숨쉬는 느낌이었다. 정우철 도슨트의 해설 덕분에 이제는 전시를 보러갈 때 꼭 도슨트 해설 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것이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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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이 작품에 빠져드는 법을 알게 해준 정우철 도슨트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화가가 사랑한 바다’로, 18명의 화가들이 그린 101점의 바다 그림을 정우철 도슨트의 해설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현재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름은 유명하지만 정작 그들이 그린 바다는 본 적 없는 피카소, 고흐, 모네의 그림부터 현재 국내 전시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와 라울 뒤피,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장 피에르 카시뇰, 이반 아이바좁스키 등의 화가들이 그린 바다들과 그들의 스토리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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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푸르빌의 석양'

 

 

'바다'를 떠올려 보자. 지금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모두의 마음속에 그려진 바다는 각기 다를 것이다.

 

바다는 그 자체로 그곳에 언제나 존재한다. 넓디 넓은 바다가 내 모든 고민과 생각들을 따스히 품어줄 것만 같다. 그러나 언제나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 같은 강물에 다시는 발을 딛을 수는 없다는 어느 격언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왔다가 끊임없이 가버린다. 그래서 더 미련 없이 상처들을 내던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인간으로서 삶을 살았던 화가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바다를 보며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꺼냈습니다. 바다는 화가의 내면에서 여과되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캔버스에 칠해졌습니다. 같은 바다는 없었습니다. 모두 각자의 바다를 가지고 있었죠.

 

- '화가가 사랑한 바다' 프롤로그 중

 

 

 

오딜롱 르동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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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딜롱 르동, '두 승객을 태운 범선'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화가인데, 환상적인 색채와 몽환적이고 숭고한 분위기의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흐리고 부드러우면서도 순간순간 거친 붓터치와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색조합이 이 화가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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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딜롱 르동, '하얀 옷을 입은 두 여인이 있는 배'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의 영향으로 그의 초기 작품은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의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위의 작품처럼 그의 캔버스에 환상적인 색을 칠할 수 있게 만들어준 존재인 아내를 만나게 된다. 그의 아름다운 바다 작품들은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맞은 후 그린 후기작이 많다고 한다.

 

 

 

라울 뒤피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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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 '레가타'

 

 

지금 라울 뒤피의 전시회가 여의도 더현대서울과 예술의 전당 두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전시를 통해 뒤피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는데, 밝고 청량한 색과 순수함과 행복이 드러나는 그의 그림을 사랑하게 되었다.

 

색채의 화가 라울 뒤피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도시 르아브르에서 태어났기에 유독 바다를 많이 그렸다. 그는 예술적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던 중 앙리 마티스의 강렬한 원색에서 영감을 받아 아름다운 색채를 그림에 자유롭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밝고 즐거운 면만 보기 위해 노력했던 화가로서, 바다의 푸른색과 요트 경기의 활기참을 캔버스에 담으려 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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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바다 위의 월출'

 

 

독일 낭만주의 화가인 프리드리히는 자연의 영적, 종교적 의미를 보여주고자 했다. 18세기 말에 등장한 '낭만주의'는 특정 역사 속 이야기나 이성보다 개인의 감정에 집중한다.

 

프리드리히는 "모든 진정한 예술작품은 특별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는 주변 가족들이 죽음을 맞이한 고통을 종교적 신념으로 승화하고자 했다. 주로 인물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독특한 구도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바다는 무한한 자연 앞에 선 유한한 인간을 보여준다.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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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브라질리에, '물이 흐르면서'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20세기 프랑스 예술 계보를 이어나가는 화가로, 자신의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작품을 오래 보아도 눈이 불편하지 않도록 도드라지는 색은 피했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화가인데, 종이에 부드럽게 녹아드는 청량한 바다의 푸른색과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물감의 빛깔 덕분에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들이었다.

 

그의 해변에는 바다와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달리는 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프랑스 국립 승마학교가 자리해 있고 물건을 배달하는 말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던 그의 고향 소뮈르에서의 추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

 

모두가 사랑하는 자연인 '바다'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을 접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더라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붓칠과 색깔으로 다채롭게 표현한 여러 바다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정우철 도슨트는 예술가들의 인생을 공부하다가 자신의 인생이 바뀌어버린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바다를 담은 그림들과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감동과 의미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최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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