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의 정의 [문화 전반]

선분이 아닌 직선으로써의 무한함
글 입력 2023.07.06 12:5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여행은 익숙했던 장소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경험을 쌓고 다시 돌아오는 행위다.


사물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바로 점, 선, 면이다. 이런 기하학적인 관점에 빗대어 보면 여행에는 ‘출발한다’와 ‘도착한다’의 개념이 점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여행’이라는 단어, 그리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행위는 시작과 끝을 기점으로 한 가장 일반화된 선분이라고 볼 수 있다.


여행이라는 선분은 단순하다. 낯선 곳에서 보낸 우리의 모든 순간이 출발과 도착을 기점으로 빼곡히 모였을 뿐이다. 이 '선'이 여럿 모이면 단숨에 '면'이 된다. 그리고 그 면이 모이면 '입체도형'이 된다.


이렇듯 우리 삶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필수 요소로 여행이 빠질 수 없다. 다양한 여행을 통해 경험을 쌓으라는 말은, 어쩌면 모든 순간을 온 감각으로 느껴 삶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 보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간접적으로 여행을 접하던 날들



그런 입체성을 찾아다닌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크기변환]KakaoTalk_20230705_124239257.jpg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진 세계의 하늘길은 마비되었고, 국내에서 가까운 곳으로 종종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담장 너머의 세상이 궁금한 아이처럼, 한국을 벗어난 다른 나라의 문화권이 궁금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행 방법은, 스마트폰과 책으로 해외여행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를 읽거나, 수많은 여행 유튜버가 제각각을 만들어 내고 있던 콘텐츠를 접했다.

 

 


색다른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



그러던 중 유튜버 ‘빠니보틀’의 영상을 접했다.


유튜버 ‘빠니보틀’은 친근감 있고 꾸며지지 않은 여행기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지루하지 않은 편집과 공감할 수 있는 여행 스타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으며 현재 국내 여행 유튜버 중 구독자 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뻔한 여행 영상이란, 아주 예쁘게 포장된 영상들이었다. 반짝거리는 필터와 색감을 보정해 흔히 '감성' 한 스푼을 얹은 외국의 모습이 만연했다.


그의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털털하고 시원스러운 여행 스타일이 돋보인다. 그래서 옆집 삼촌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나 같은 한국인이 제법 많았던 모양이다. 빠니보틀의 구독자 수는 나날이 늘어났고,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돈을 버는 여행 유튜버의 표본이 되어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 활동도 함께 할 수 있다니, 얼마나 꿈같은 말인가? 그런 모습을 동경했다. 언젠가 나도 반드시 마음이 가는 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

 

 

 

좋아하는 일이 권태가 될 수 있다는 깨우침


 

그렇게 다양한 국가에서 수많은 점을 찍으며 여행하던 그였지만, 어느 영상에서 돌연 권태를 이야기한다. 이제껏 혼자 여행해 왔음에도 혼자 여행하는 것에 무료함을 느낀 것이다.


마냥 좋아하는 일이 권태로운 순간이 온다는 사실, 그리고 직업이 되면 그만한 고충이 따른다는 사실은 당시 내게 제법 묵직한 울림과 두려움을 불러왔다.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무료해질 것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었다.


빠니보틀은 결국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로써 그는 출발과 도착이 점으로써 이어진, 여행이라는 하나의 선분을 완성하는 듯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 것



여행은 끝났지만, 빠니보틀은 그만의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극심 시절, 시골에서의 일상을 촬영해 콘텐츠로 제작하거나 2~3인과 함께하는 새로운 동행 콘텐츠를 제작했다. 또 PD, 작가의 영역까지 넓혀 활동하고 있다. 특히 총감독과 투자를 맡은 웹드라마 ‘좋소좋소 좋소기업’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칸 시리즈 비경쟁 부문으로 초청되기도 했다.


여행의 마침표가 새로운 출발의 역할을 하는 시작점이 된 셈이다. 빠니보틀은 경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으로 더욱 명성을 얻었고 타 여행 유튜버와 함께 광고를 촬영 및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그렇게 그는 '유튜버'보다 더 넓은 범위인 '크리에이터'로서 도약한다.

 

 

 

여행의 정의 : 그게 무엇이든, 계속 나아가는 것



[크기변환]journey-1130732_1280.jpg

 

 

빠니보틀은 코로나바이러스와 권태 등 여행을 그만둘 수도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펼쳐나갔다. 물론, 그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그의 유튜브 채널이 잘 활성화되었다는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순 없다. 꾸준히 여행 영상을 올려도 화제성을 얻지 못한다면 현실적으로 운영이 더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의 영상과 일대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을 선분이 아닌 ‘직선’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선분과 달리 직선은 무한히 뻗어나간다. 여행이 시작과 끝이 정해진 선분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끝이라는 것은 없는 직선이라면, 그 하나하나가 모여 정말 거대한 면을 이루고, 정말 거대한 도형을 이룰 수 있다. 글을 마치려는 지금, 큰 입체도형이 보이는가? 그 도형으로 진정 ‘여행’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박정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