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황우석 박사 ‘캐해’하기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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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해: ‘캐릭터 해석’의 줄임말로 주로 창작물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이나 관계에 대한 독자들의 해석 또는 그렇게 해석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 글에서는 실존 인물인 황우석 박사와 그의 사기 사건을 둘러싼 대한민국 대중의 반응을 일종의 캐릭터로 비유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자료만을 바탕으로’ 해석합니다.
황우석과 PD수첩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 동물 복제와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인류 최초의 업적을 이루며 세계의 주목을 받음과 동시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던 황우석 박사라는 인물이 2005년 11월 논문 조작 사건을 시작으로 연구 결과 조작, 연구 윤리 이슈에 휩싸이다가 몰락하게 된 사건이다.
현재 황우석 박사는 아랍, 북극 등을 무대로 생물 복제 연구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그의 근황은 대중의 관심이 꺼지며 아무도 모르게 잊혀졌지만, 과거의 사건만큼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에 여전히 종종 회자된다.
그리고 이 당시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을 둘러싼 한국과 세계의 반응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이 공개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황우석 박사 본인이 직접 인터뷰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당사자가 직접 말하는 이야기’. 이것은 시청자가 객관적인 사실을 볼 수 있게 돕는다는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편향된 관점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다. 해당 다큐멘터리가 공개한다는 소식과, 주연이라는 항목에 ‘황우석’이라는 세 글자를 보게 된 몇몇 사람들은 후자를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으로 듣는 당시의 상황과 ‘지나간 궤적 역시 나의 모습이었다’는 소심한 인정이 ‘진실에 근접한다’는 느낌을 주며 오히려 당사자와 거리를 두게 되며 의견에 균형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1931)
‘미친 과학자’가 속한 사회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쉽게 말해 광기가 있는 과학자를 의미한다. 보편적 상식, 윤리, 가치관 등의 일반적인 사회 통념을 벗어난 영역과 행위를 자신의 욕심과 연구적 성과를 위해 탐구하는 일종의 부패한 과학자인 셈이다. 이들은 자신의 학문적 탐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무모한 실험을 감행한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리는 황우석은 이런 이미지이기도 하다.
황우석 박사는 명예와 연구 자금을 위해서라면 극적인 연기도 가능했던 사람 같다. 대중이 어떤 인물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았고, 그렇기에 그런 극적인 발언들과 선동을 할 수 있었다. 그의 극적인 면모는 한국에서의 논란 이후 해외에서 연구 활동을 진행할 때도 보이는데, 주로 자신의 연구가 성공하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가상의 시나리오를 장담하듯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이런 황우석 박사의 연기는 어떤 국가 대중의 깊은 콤플렉스를 교묘하게 건드리며 부작용을 낳았다. 국가 성장에 대한 열망이 가져다준 기형적인 ‘영웅 만들기’. 이는 현재도 남아있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이고,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것에 도달해야 한다는 어떤 허황되고 빈 껍데기만 남아있는 믿음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기라는 것이 실감 난다.
한편 생명과학이 대중적인 상식이 잘 형성되지 않은 전문적인 분야였기 때문에 황우석 박사가 일구어낸 하나의 작은(비록 거짓이었지만) 성공이 모든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섣부른 희망을 품게 되어서 문제가 커졌다는 해석도 내놓을 수 있다.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은 명예와 성과를 중시하는 과학자의 태도가 섣부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해석을 종결하고 싶어 하는 한국 사회의 근성을 만나면 어느 정도까지 부정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으로 남을 것 같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난자의 기증과 관련하여 세계적으로 크게 비판이 제기되며 일어난 윤리적 이슈에 한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무감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떤 황우석 박사 지지자는 논란 의혹이 제기된 이후에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황우석 박사 사건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논란이 되었던 것은 연구 논문의 이미지가 합성된 이미지였던 것, 그리고 연구 결과의 대다수가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 돌아오고, 나의 고질적인 아픔을 결국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는, 애초부터 기적 같은 것은 없었다는 허무한 사실의 증명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인간적 윤리의 침해보다도 더욱 괴로웠던 것이다.
한국에 꼭 필요한 인물이 등장했다는 희망이 꺾이자, 그들은 태세를 전환해 급격히 비난하기 시작, 결국 황우석 박사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추방되었다. 박사의 이런 면까지도 여러모로 한국이 원하는 상징적이고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인물의 특성을 띠고 있다.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은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해 아카이브 푸티지를 이용한 다큐멘터리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꾸준히 다루는 소재이다. 그의 사건이 그만한 파급력을 가져다준 이유는 역시 당시 한국이 빨리 발전하고 싶다는 대중의 조급한 마음을 충족시켜 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황우석 박사 연구실의 내부고발자가 PD수첩의 한학수 PD와 연락 끝에 대면하고 처음으로 던진 한마디는 ‘국익이 중요합니까? 진실이 중요합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당시 한국의 국민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국익’이라는 막연한 실체였다.
지금 한국은 어떨까? 인터넷의 작은 사실마저도 ‘팩트 체크’를 요구하는 현재의 대중을 보면 진실에 대한 막연한 갈망은 여전히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믿고 싶은 사실에 한해서는 재빠르게 믿었다가, 그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주류가 되어버리면 쉽게 내팽개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킹 오브 클론>은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이 다큐멘터리는 2023년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류나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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