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무애 無碍 13

사랑스러움2, 매력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6.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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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진실히 바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봄에 있어 타자이자 관조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대가 불길 속에 거하며, 더 이상 바꾸어 태울 무엇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고할 어떤 분노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오래 타오르기를 바란다. 그래, 전부 다 진부하고 지루해질 때까지, 연옥의 불길이 더 이상 그대에게 뜨거움이 아니게 되는 때까지. 미치지 않도록 이따금 어루만지면서도, 그대에게 가하는 풀무의 바람이고자 하는 내가 끝에 진실히 바라는 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다 태워내고 난 다음, 그저 무애 無碍한 고요함 속으로 접어들어 우뚝 서서는 그 안에 가로놓이기를.

 

- 무애 無碍 12

 

 

비록 그대의 몸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대의 눈길을 빼앗아 버리는 것, 아름다움. 그러면 어떤 그대는 말한다, 나는 아름다움 따위에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의 육신에 가장 가벼운 것은 눈동자, 사람들은 아닌 척 외면하여 고개를 돌리면서도 눈동자마저 잡아두지는 못했으나, 그것은 나의 눈동자조차 끔벅일 수 없다. 아름다움은 이제의 나에게서 그 무엇도 일으킬 수 없었다, 그것은 나의 주체성을 드높이는 한 가지 거름이 되어있을 뿐, 아름다움이 일으켜내는 힘, 그런 즉물적인 욕망은 나에게서 정복되었다. 그런 그대와 나는 참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대는 아름다움이 내포하고 있는 독과 가시를 해득하고, 그것을, 정확히는 그를 갈구하는 마음의 촉수를 먼저 잘라내 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는 것이란, 그대가 베어내 버리고자 하는 것이 물과 같은 유체의 속성을 지니고서 끊임없이 용천하는 것이라는 사실, 머리를 잘라내도 금세 자라나는 히드라와 대적자 헤라클레스의 비유와 같이, 그대의 의지와 용기가 그대 스스로를 오랜 투쟁상태에 놓이게 되리라는 것이 하나이고 투쟁이 다시 그대를 날카롭게 벼리어가매 자칫 그 칼날이 다른 이들을 향해 버림이 둘이다.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총체적인 것으로, 시각적인 것이자 외적인 것에 대해 아름다움을 국한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일반화가 되어 여남은 것들을 소외시켜버렸다. 아주 조용하고 질박한 모든 아름다움들, 누군가의 어여쁜 마음씨와 다정함과 섬세함 같은 것들과 수풀과 나무와 풀꽃과 별과 같은 것들을 무의미하다는 듯이 여기게 하기도 했다. 그런 정도의 맹목, 광기를 연상시키는 저돌성, 화려함에 매료된 사람의 눈에는 오직 그 화려함이 내는 영휘만이 선명하여 눈이 멀어 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태양을 응시하느라 눈이 멀어버리는 사람처럼, 태양이 비추이는 동안 다른 별들이 모두 가리어지는 것처럼... 심지어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사람, 그대들로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의 발로에 불과하였고 자유인인 그대에게 이를 금할 어떤 권리도 존재치 않을 것이나, 매료된 사람의 입으로 고하는 찬미마저도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일이 되곤 했다. 바라건대 그대가 조금 더 상냥하고 신중해 주기를, 자주 주의 깊어지고 말하기에 앞서서는 신중하기를, 왜냐하면 그대들의 입은 그대의 마음을 세상에 발하는 통로이고 그대의 것이나, 그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귀에 이르러 종착하는 한 가지 여정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아름다움을 향하여 달려가는 동안, 그 길 바깥에 놓인 사람들은 조용히 아파할지도 모르기에. 소외된 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에, 실은 너무나 조용하여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을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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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으나, 마치 나의 것처럼 생각해볼 수는 없었다. 그런 그대의 말에 더불어 나란히 걸을 수는 없었다, 비록 그 말이 한때 내게 가장 필요한 달콤함이자 위안이었음에도, 내게 가장 필요한 구절이라 그에 기대어 의탁하여 쉬고자는 마음을 느끼는 와중에도, 왜냐하면 나는 내게 한 톨의 아름다움나마 깃들어 있으리라 스스로 믿어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나의 추악함을 단단히 믿는 것과 동의 관계에 있다. 아니, 나의 추악함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다정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의심하여 스스로 채찍질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모든 선량함과 다정한 언어들. 그것은 아무리 다시 들여보아도 나의 것이 될 수 없었기에다. 그건 내가 아집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의 불신과 반 反 믿음이 너무 강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세계에서 그것은 어쩜 불가능한 일이요, 너무 달콤한 꿈이었다는 것을, 깬 꿈의 눈물을 예기한 까닭이다. 너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스럽다, 그런 한 줄의 말이 나의 젊음 속에는 없었거니와, 있었다 한들 아무리 부딪혀 오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였음을 미리 안 까닭이다. 너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스럽다, 이러한 간단한 명제로는 나의 단단한 불신을 깨어낼 수 없었기에, 그것은 너무 손쉬운 말이라 아무런 근거와 까닭도 제시해줄 수 없었기도 하거니와, 왜냐하면 존재가 아무리 놀라운 인과와 기적이라 불릴 만한 연역을 통해 왔다 한들, 그것은 사랑스러움과 별개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움은 네 눈을 사로잡아 내게로 끌어당기는 모든 인력, 너와 내 존재의 희소함을 믿지만, 그것이 네 눈과 귀를 붙들어 매기에는 너무 만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모두 희소하고 존귀하다면, 네게도 내게도 놀라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게 한 가지 사랑나마 바람을 타고 불어오던가, 이리 되물을 때마다 자명하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 그녀는 나에게 신이기도 한데, 오 나의 범박하고 어엿븐 여신, 그녀의 사랑을 제외하고 나는 느껴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불신에는 너무도 사소하나 단단한 이유들이 깊이 자리한 까닭이다. 너는 네 선량함과 다정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스러울지어다, 내게 그들의 말은 이렇게 이해되었다. 아름답지 않은 사람아, 너는 몰래 다정할지어다, 너는 그리움에 빚어 갈리는 고운 모래알갱이이다. 털실처럼 뽀스라운 그 언어들은 얼만큼 까슬하니 따끔하던지. 왜냐하면 나는 언제부턴가 다정하지도 선량하지도 하물며 순수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공황감 속을 불안했고 말미암아 불길하고 사나와져갔기 때문이다. 누구도 내게 오려 하지 않았고, 다가간들 머물려 하지 않았으며, 언제부턴가 나는 그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이해하기 시작했다. 서글픈 것이란, 내가 그들의 시선에 비친 나를 이해하여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은 스스로 그대들과 같이 바라보고 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음이다. 당기고 붙잡을 무엇도 없노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음이다. 그것은 자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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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아름답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하였다. 그대들은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 선량함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의 하나라 하였지. 나아가서는 어떤 아름다움을 미워하기도 하였다, 그 안에 아무런 온유함이 없어 누군가 거기서 상처 입어 버리는 것이라면은. 사랑스러움, 사람의 마음에서 사랑을 쟁취하는 모든 것, 허나 아름다움 그 자체로는 사랑스러움이란 이름 받을 수 없노라 말하려는 듯하였다. 진정한 사랑스러움은 내면에 있으며, 그것은 누구나 꾀해봄 직한 것이며, 그 연후에야 아름다움은 가치로워질 수 있노라 말하려는 듯하였다.

 

전편 아름다움이 사랑스러움의 첫 번째 동기라고 하였지. 나는 이것을 이해한다. 아름다움만으로 열띤 사랑을 받는 사람, 그리고 그에게로 다가가는 눈동자들을 이해한다. 더러는 동의하지 않는다 말해올 것이다. 자신은 그렇지 않노라고, 혹은 자신은 그것을 고이 인정해줄 수 없노라고.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 예컨대 그대는 지독히 아름답되 오만하거나 추악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노라고, 두 번째의, 아니 진정한 사랑스러움을 지니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노라 말해올 것이고, 그것은 진실할 것이며, 그렇다면 이때의 아름다움은 무엇 한 줌 사랑스러움이 될 수 있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것은 이제의 나 바라고 지키는 바이기도 하다.

 

진정한 것, 가치 있는 것이자 쟁취할 수 있는 것이자 좇을 만한 것이란 또 다른 사랑스러움, 아름다움에 말미암지 않는 것, 예컨대는 활발함과 명랑함, 선량함과 다정함, 순수함과 귀여움, 과하지 않은 진지함과 명쾌함, 겸허한 담백함, 유쾌함과 유머러스함, 그 앞에 어떠한 투정을 부려보아도 다 담아 안아줄 것만 같은 너른 가슴과 어떠한 슬픔을 흘리더라도 의미와 응원으로 돌려줄 것만 같은 지혜로움, 단단하면서도 무해한 기색, 스스로 으뜸이 뿌리박아 우뚝 솟아있으나 자칫 교만하지 않으려는 늘 신중함, 사철 그늘 없는 사람의 말간 얼굴로 흐르는 높다란 생명의 기운과 밤의 한 가운데에도 식지 않는 자의 가변으로는 군불 같이 오래가는 따스함, 즉 매력 魅力이요, 그것은 말뜻 그대로 매혹하고 끌어당기는 힘이며, 본질은 성격과 성정 性情에 대함이다.

 

이러한 것들은 스스로 꾀해 봄 직한 것이다. 성취할 만한 것이다. 없었다 하여 영영 그러하지 않고, 있었다 한들 마찬가지 영영 그러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렇지, 분명 누구나 꾀해 봄 직한 것이라 공평무사한 것이다, 아름다움과는 달리. 마치 본질과 같이 생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 아닌 누구나 애써 가꾸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란, 그러한 것들은 기꺼이 찬미해도 좋을 것이다, 마치 기회의 평등이라는 낱말에 그러하듯이. 하물며 누구나 그리하여 마땅한 이것은 적이 찬미하고 고민 없이 구함 직한 것이겠지?

 

성인이 되고서야 어떤 이는 내게 말해주었다, 너는 얼마든지 사랑스러워질 수 있노라고, 네가 마음을 굳게 먹기만 한다면,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정다운 심장으로 거듭나겠노라 마음먹는 대로 될 수 있으리라고. 아, 이 앞의 내 심경, 길었던 간절함과 끝내 무력감을 알까. 내게는 온유함이 어려웠다. 고로 다정함으로써 사랑스러워지는 것은 얼핏 손쉽게 보이기도 하였으나,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타고난 성정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을 혐오하면서 타인에게 너그럽고 정다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가 이런 나를 참작해줄 이유는 없었기에 침묵했고, 그런 중에도 언제나 나를 스치는 뭇 사람들은 사랑을 위하여 둘 중 어느 한 가지 사랑스러움을 택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외적인 아름다움과 달리 내적인 아름다움은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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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일전은 오래 곤혹스럽더구나. 이편도 저편도 곧 사랑스러울 수 없던 나로서는 말이야. 그러면서도 사랑을 꿈꾼다니,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모순이었을 것이다. 나는 추하고 사납고도 하필 과민하게 태어났기로서니 나를 혐오하였음에, 그것은 더욱 사나움이 되고 거칠음이 되고 증오와 표독이 되고 날카로움이자 발톱이, 너와 내 아픔이 되어갔다. 지어먹는 아픔, 더러 이것을 깊이 알지 못하는 복되고 상냥한 사람들은 그 독을 짓지 마오, 당신이 자신을 미워하고 질시하여 때리는 것이 아니더냐 말하였으나, 나는 이것의 불가항력을 이해한다. 왜 스스로 증오하고 못마땅히 여기어 노예를 다그치는 듯이 부리고 두들기느냐, 당신의 아픔을 슬피 여긴다, 상냥한 그대는 내가 이것을 그만두기를, 서둘러 상냥해지고 바삐 행복하기를 바란다 말하였으나, 나는 그대보다 먼저 또 일찍이 그리고 지극히 그것을 바랐다. 왜 아니겠느냐, 아픈 것은 나였기 때문이다. 그대는 나를 볼 때마다 이따금, 멀리서 아파해 줄 만큼 상냥하고 훌륭하였으나 그 아픔은 오로지 나의 몸이요 매 순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만둘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나의 이해키 어려운 사정과 애석함은 마침내, 어설프게나마 그대에게마저 닿아버린 것이요, 그러나 그것이 무력과 낭패로써 이 안에 오래 남아있었다는 것까지는 그대가 알아차릴 수 없었음이다.

 

오히려 그대들이 언제나 분홍 보자기에 싼 채로 넌지시 건네는, 온유함의 가치란 당시의 내게 오히려 더욱 커다란 낭패였다는 것을, 예나 제나 이해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은 차라리 내 갖지 못하는 것이로되 그저 주어지는 것이었다면, 온유함은 누구나 꾀해봄 직한 것이라 누구나 사랑스러워질 수 있노라는 그 말, 온유함은 사람을 위하는 선함이니 온유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온유함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그 보드라운 강박, 그것은 나를 낭패케 하였다. 그 의의를 깊이 이해하였으나, 당시 나에게는 불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에 굶주려, 혹은 고독을 몸서리치매 나 또한 거짓 친절을 베풀어도 보았으나, 선한 기만을 가장해보았으나, 그것은 끝내 나의 것이 될 수 없었음이다.

 

이 모든 것이 정말이지 나의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의 불신과 자괴가, 그 이전에 나의 천성 天性과 성정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켜켜이 쌓아 올린 인과의 끝 어딘가 비뚤어져 버린 나의 성격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란 그리 많지 않다고. 만약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고, 대부분 것이 우리 선택의 소산이라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었다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그토록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택, 내가 나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전능하노라 말할 수 없다면, 또한 내가 나의 슬픔을 마치 기쁨을 대하는 것과 같이하여, 진실로 또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그것을 바라노라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이 나의 선택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불행과 슬픔이 불가피함으로부터 오노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사소하고 손쉬운 것처럼 보인다 한들, 그 사람이 그것을 바라지도 고로 택하지도 않았을 값이라면, 또한 그 사람이 고통 속에 오래 몸부림치고 있노라면, 나는 그 안에 필연처럼 깃들여 있을 불가피함을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사정을 그대가 이해하고 더욱 너비 안아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라, 그저 언젠가부터 내가 바랬던 것은 그대가 차라리 나를 무시하고 지나쳐주기를, 언제나 그대의 상냥함은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그대는 피 흘리는 짐생을 두고 지나칠 수 없도록 친절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우리에게로 다가왔으나, 언제나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덩그러니 남겨져 버리는 것은 더 큰 상실감뿐이었다. 사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그대가 나를 구원해주는 것이었지만, 그러기엔 그대 또한 너무 연약했다, 보드라왔다. 한때는 다가오는 그대를 안고 심연의 바닥을 향해 익사하려는 듯이, 그 손을 꼭 붙잡아 끝없이 범람하는 우울 속으로 끌어내렸고 그런 여느 때마다 소스라치고 난처해하는 그대의 공황하는 표정이 나의 광기 어린 집착의 꿈을 깨면, 나는 도망쳐 어차피 정해진 결론이었다는 듯 홀로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조금 더 슬퍼져, 눈물은 이윽고 창을 비집어 흘러나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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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불신과 혐오, 그것은 스스로 곧잘 그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는 것을 몸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에고가 있어,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고 시종 긍정하려는 본능이 먼저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있고 나에게 하필 없던 것, 이러한 본능을 찢고 반대 방향으로 태어나 자라나려는 것은 얼마나 거친 생명력일 것인가, 검불을 이룬 잡초와 같이, 대지의 양력을 빨아대고 작물의 생장을 막아대는, 그렇게나 독한 생명력일 것인가. 나는 무식하고 우직한 방식으로 해득한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사랑과 사랑스러움에 대한 본능의 비뚤어진 소산, 부패하는 사랑이자 그림자,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은 모조리 그을음이 되듯이, 그것은 그 좋은 사랑이 떠안긴 것이다. 그 좋은 사랑이 비밀리에 내걸어둔 대가 중 하나이다. 내가 사랑을 그토록 원하고 바라지 않았더라면 그리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요, 이리 오래 아플 바에는 차라리 사랑받기를 포기할 수 있었더라면 수이 그리하였을 것이다. 것보다 앞서, 내가 사랑을 구하고 바람에 그 옳게 된 방법을 일찍이 소취할 수 있었더라면 그 어떠한 것보다 빨리, 그 무엇보다 먼저 그리하였을 것이다. 이 중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사람을 찾는 것 중에 자괴와 혐오와 체념, 그리고 내가 아직 떠올리지 못하는 여러 슬픔들이 미리 자리하고 있었을 뿐.

 

그대야, 상냥한 사람아, 그대도 어떤 조용한 밤에는 나를 궁금해 보았겠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더러 자신의 의식과 사상이 그것을 멀리하려 애쓴다 하더라도,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본능은 의식의 귀에다 불어넣는 새살거림과 속삭임으로 명한다, 피하고 밀치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왜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까. 왜 사랑받기 위하여, 혹 쟁취하기 위하여 그리하지 않았을까. 늘 그대가 이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것은 그다지 간단하지 않다고, 누군가의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빌리자면, "쉽지 않다"고. 그리고, 그리고 실은 궁금해 주기를 바랐다, 어느 순간 속에 잡히어 갇혀 있는 것이냐고, 그건 아주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터라 그대에게 바라기 송구스러운 일인 테지만, 가만 들어주기를, 심지어 그대가 나를 온통 이해하여 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돌려주었으면 바라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너무 지나친 기대라는 생각의 꼬리를 꽉 붙잡으며. 그러나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나는 그대의 귀를 붙잡지 못하였고 오래도록 혼란 속에 있던 나의 이지는 나를 적이 알리어 이해시키기는커녕 스스로 이해되기조차 어려웠으며, 여하 속들이 나를 알아내지 못한 그대가 갸우뚱한 눈썹으로 이내 말없이, 이렇게 이야기할밖에.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당신의 마음이자 마지못함이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당신의 진정 바람이자 해야 할 일이라면, 여전히 당신이 그것을 행하려 하지 않음은 아니인가.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던가, 친절히 대하고 상냥히 하고 미소 짓고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고 놀라 하고 궁금해하고 묻고 말하고 웃고 떠드는 것. 그대에게는 바람이 창을 들이치듯이 자연스러웠거나, 하다못해 약간의 쓰라린 경험 속에서 늠름히 개발해낸 것을 생각하겠지. 그대의 젊은 고뇌와 그 끝에 개발해낸 것을 손쉽게 말하는 내가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쓰라림이었을 것이다, 그대가 맛본 것을 나 또한 맛보았을 것이니. 젊은 날 공황하고 고뇌하던 그대의 밤을 그린다, 타인들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의의를 부정당하는, 그 일말의 뉘앙스에조차 섬세하게 그이고 전율하는 나날, 그것은 내가 지낸 밤과도 닿아있을 것이다. 다만 나의 시간은 조금 더 오래되어 눅눅하게 썩고 있었기에, 이리 말할밖에.

 

묻겠다, 온유함으로 기름 부이지 않은 사람과 상냥함으로 세례받지 않은 사람에게, 늘 불안과 우울 속에 담금질 되어 온 사람에게, 다정하고 쾌활하라 말하는 것은 그 얼마나 명쾌하고 손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 되어줄 텐가. 아직 정신이 유약했을 때, 나는 그만하라 청했다, 그대들은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대들은 이 당연한 명제, 당위와 선한 의도로 구성된 보드라운 명령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하는 나를 이해치 못하였거니와 그런 나의 외침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전 아름다움에 대함과 달리, 이것은 너무도 타당하였기 때문이다, 선의와 당위를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아무런 도덕적 리스크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의 말 속에 뉘어 있는 생각들이 나를 겨누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그대를 위하는 말이 아닌가, 나는 그대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에게 사랑스러움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또는 그대가 아름답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을 때 내가 어찌 그대를 사랑하여 찾겠는가.

 

젊은 나는 드물게 다가오는 온순한 사람들을 밀치고 소리 질렀다. 내가 밀친 것은 그대들이 건네는 동정과 구휼이요, 오해였으나 언제나 밀치이는 것은 그대이지. 그렇게 간단히 말하지 좀 마, 그렇게 해서 될 값이었다면 내가 지금 아직도 이러고 있었겠느냐, 그건 표독과 오독이다. 온순한 사람들은 나의 독기 어린 분노를 이해치 못했으며, 딱히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대가 쥐고 돌아가는 것은 더욱 깊어진 오해와 약간의 분노였을 뿐, 언제나 틀린 건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틀렸다고 일컬어졌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늘 그랬으나, 그것이 내 선택이 아니었음을, 그러나 어찌해야 하는가, 누구도 이에 답해줄 수 없다. 차라리 그대가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다정한 무관심 속에 궁싯거리며 쌉싸롬할 뿐이었을 테나, 분노를 쥐고 돌아간 그대가 이따금 경멸을 감싸 쥔 채로 나를 스치듯 비켜나면 통탄스러워지곤 했다, 우울은 이내 울고 싶은 감정이 되어 떨어진다. 이렇듯 그대의 다정한 말들 속에서조차 나는 한 줌의 답도 위안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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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단단하지 못한 나는 아무래도 그대들과 이별해야만 했다. 그리고 방황 끝에 그대들과 성공적으로 이별한 것 같다. 나는 그대들의 이해를 사기 어려운 존재, 나를 적이 알리기에 나의 언어는 늘 부족했고, 그 기나긴 서사와 연유를 충분히 언어로 만들어 띄운들 그대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웠기에. 나는 그대들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그대들 곁에서 더욱 최악으로 전락하리라는 것을 예기한 까닭이다. 그대들의 순수함을 떠밀고 격분하고 할퀴는 나를 멈출 수 없었으며, 그것은 나의 고통이었으나, 그것을 스스로 굽어보다간 더욱더 깊은 혐오로 빠져 돌아오지 못하리라 느낀 까닭이다. 실은 애초에 내가 전락 이전에,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지.

 

그러니 차라리 나는 이해한다, 아직 온유하지 못하되, 선량하지 못하되 그것이 자신의 의지나 선택이 아닌 사람을. 그런 선택지마저 주어지지 않은 사람, 그 반대편의 운명을 지고 태어난 사람의 무력과 낭패를, 심지어는 대상 없는 억하심과 운명과 세계에 대한 반감을. 어떤 사람의 지나친 우울을. 아무런 용기와 응원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는 일 점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도록 삼켜버리는 냉소의 시퍼런 혓바닥을. 시종 심각하며,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불안을 전전하는 마음을, 제 이지의 손이 지어 손수 삼켜 먹는 불안과 아무것도 없는 빈방, 흰 바람벽 위로 온갖 두려움의 환영에 파르르 떠는 이의 불온한 마음을. 울면서 제 손으로 고통을 빚어 스스로 먹이는 자의 마음과 그래 모순과 그 불가항력을, 부서지는 마음, 일체 양 陽의 믿음이란 무너진 채로 다시 서려 하지 않고, 음 陰의 믿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 그 사람의 내면은 모래로 된 마음의 대지, 그 유약한 지반을. 이제 그런 것은 그만두라고 말한들 되지 않는 것, 누구보다 눈물로 간청하였고 스스로 간절하였으나 되지 않는 것, 그것은 항거할 수 없음이고 어찌할 수 없음이라는 것을. 낭패와 무력감, 심연을, 아, 범람하는 그 사람의 심연을. 온 마음을 다 해 이해한다.

 

그러나, 그러나 나의 사람들아, 지금까지 고한 지루할 정도로 기나긴 낭패와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사랑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었다는 것을 또 한편으로 안다. 이것은 느리게 알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자포자기함에, 영영 구하지도 원하지도 않으리라 다짐해보았던들 오래도록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드러날 수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야기해보기에 이르지만, 그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진정으로 사랑을 놓아버리기를 원하야 눈물로 청하였던들, 그 본능이 항상성의 궤도를 이루어 있었고 또 그에 나를 단단히 속박한 채로 수이 놓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을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고 또 유지하는, 아마 단 한 가지 힘이었다는 것은 언제나 뒤늦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이 아주 기나긴 어드메서야. 그러니 그것을 이해하기 전에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은, 복된 일이되 언제나 뒤늦을 일이다.

 

그러나 그것 참 써놓고 다시 보아도 고운 말이나, 실은 아픔과 혼란 속에서, 낭패감과 체념의 부산물로써 온다는 것이란. 거절할 수 없어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마치 고지서와 빨간색 가압류 딱지처럼. 사랑은 또한 고통의 근원이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랑, 그것은 욕망 중에 으뜸이고, 언제나 고통이란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숨어 있던 이면으로부터 서서히 고개를 드는 것이므로. 그러니 사랑을 구하지 못함에도 영영 사랑을 바라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파산신청이 불가한 가압류처럼 오리라. 그대가 그것을 저버리지 못한다는 명령이 그처럼 붉은 딱지에 얹히어서 온다.

 

사람아, 그러므로 사정이 어땠든 그대는 사랑스러우라, 우리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값이라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로써 그대가 사랑을 구하고 그대에게 사랑이 찾으리라, 그것만이 사람의 구원이다. 어쩌면 그토록 자주 들리오던 이 말은 참되고 아마 유일한 답이었을 테이나, 우리가 품어 꼭 쥐고, 마침내 가져보기에는 너무 고되고 일렀던 것일지도. 그러나 또 한편 나의 그대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지, 나는 사랑을 버렸다, 정확히는 사랑받고자 하는 그 마음을 마침내 포기했다. 나의 검은 방은 한때 사위를 짓누르는 우울, 그 샘이요 전당이었으나 얼마간 지나 그것은 나의 있을 곳이 되었다. 이 독안개가 핀 샘을, 눅눅한 어둠을 보아라, 이것은 나의 얼굴이고 몸이요, 나는 이것과 하나가 되었다. 나는 그 안에서 자라나고 숨 쉬는 여느 뱀과 같이 되었다.

 

은둔자들아, 근래에는 그대들의 소식이 이따금 뉴스의 메마른 소식을 타고 내게로 흘리온다. 더이상 통계가 그대들을 좇지 못한다지.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그대들 낱낱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쩜 불가하다지만, 나를 기억 속에 끄집어 내는 것으로 그대를 생각한다. 나는 그대를 모르지만, 그대가 느끼고 있을 익숙한 고독과 친숙한 체념을 알 것도 같다. 이 글의 이전 11년간 홀로 걸어지난 길 위에도, 이 글을 써온 지금껏 2년여 간 스스로 가둔 서재에도, 진득한 내음은 얼마든지 베여 있어, 우리가 느끼온 것은 닮아 있겠지. 나는 그대가 고독을 버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서 사람들에게로 나아가라 말하지 않는다. 그건 아직의 우리에게는 섣부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가 고독 속에서 충분히 일어나, 보다 온전해지기를 먼저 고대한다. 곧이어 일컫겠지만, 그 이전에 고독은 우리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되어 마땅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대가 고독 속에 눈 감아 잠드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소유하기를. 황무지의 주민이 아니라, 주인이 되길 원한다. 그곳은 우리가 밀리듯 쫓기어나 당도한 유배지이나, 나는 그대가 거기서부터 일어나, 툭, 툭, 흙먼지를 털고선 오래도록 걸었으면 좋겠다. 끝없는 허무의 지평을 향하여, 스스로 구도 求道하는 긴 걸음에 올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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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상처에 저항하고 꿋꿋이 버티어 서 있기에는 오래도록 파르라니 헤졌고, 강렬하고도 묵묵한 한 발을 내딛어가기에는 믿음이 약하다. 그러나 한편 믿음이 약한 자, 우리들아. 우리는 어쩜 다른 방향으로 비대해진 믿음을 지닌 채로, 거기에 길이 묶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신이란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기에. 나는 믿지 않는다, 나의 사랑스러움을, 나의 다정함이 언젠가 그대에게 사랑의 눈길을 틔우리라는 것을, 나의 매력, 나의 아름다움, 나의 찬란함을. 우리는 믿지 않는다 말하였으나, 이 모든 것이 당치 않으며, 결코 오지 않으리라 믿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장차 대낮처럼 창연히 빛나거나, 안개 낀 고요한 삼림의 깊이감과 같이 흔들리되 우지 않는 담숙함을 성숙하리라는 것을. 가슴은 밤의 창공처럼 아득하니 비대해지고 공활한 공간 안으로는 낱낱이 슬픔을 저기 높이 수 놓인 별처럼 달고도 씁씁한 비감으로 바꾸어내리라는 것을 믿지 아니한다. 우리의 불신이 그 얼마나 강대한가, 마치 저기 진실로 신을 믿는 사람의 신념 어린 눈빛처럼.

 

나는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다. 일단 그리 태어나지는 않은 것이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간에 말이야. 그것은 아주 오랜 저항 끝에 받아들인 사실이다. 사람이라면 이 저항을 몸부림치게 마련이나, 끝내 도망갈 수 없다면은 언젠가 받아들이게 되는 사실이다. 다만 도망칠 수 없다면은, 또 도망치지 않는다면 말이지. 아마 그대들 중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그대가 도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도망쳐 눈감은 자는 영영 구원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일찍이 느낀 분노와 같이, 그대 중 어떤 이가 이런 나의 섣부름을 욕하고 밀치어 댈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대에게 내가 느낀 것과 유사한, 그런 아픔이 되겠구나.

 

나는 아무런 매력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노라 말하지 않는다. 이제 시간은 충분히 익었고, 나 또한 그대들에게 일찍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거듭나 있고나. 그러나 과감히 이야기해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아픔일지언정 거짓 하지 아니 하리라는 것과 그로써 그대에게 더 큰 상처가 되지 아니하리라는 것과 우리가 만약에 지독한 부분에 있어 닮아있더라면,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에 대해 장차 말해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마침내 스스로 소박하게나마 느끼는 사랑에 대함이요, 나로 말미암아 그대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리다. 그것은 더없이 진실될 것이다.

 

손 쉬운 말 속에 담기지 못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지나치게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상냥하고 다정하더라도 말이지. 말 속에 위안도 답도 없다면은 스스로 구할밖에, 답을 찾기 위한 13년의 여정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그렇게 떠밀듯 주어지는 것이었고, 별안간 지나온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그것만이 유일한 바른 택지였다. 


답을 구하기 위해 언제나 내 잊지 않으려던 것은 사람들이 이런 나를 이해해줄 하등 이유가 없다는 사실뿐이다. 그런 날카로운 현실감이다. 그대에게 한 줌 사랑스럽지 않은 나를 마주하고, 다가오고, 듣고, 이해하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만은 언제나 잊지 않으려 꼭 붙잡았다. 정말이지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그런 누군가를 찾아 다가가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이해했다. 나 또한 아무런 매력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노라 말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대에게 숨겨진 사랑스러움을 발견하여 그를 낱낱이 고해볼 수 없을 값이라면, 그것은 상냥한들 거짓이거나 기만이거나, 외로움의 임시방편이거나 또는 일시적인 고양감에 기인하는 착각일 터이니. 사랑과 관심에 굶주린 나는 이런 섣부른 사랑 고백에 지나치게 기대하였고, 의지하려 들었고, 찬찬히 의심하고 검증하는 과정도 없이 덜컥 믿어버렸고, 숱하게 실망하고 초라해왔다. 그리고 수치심에 더 깊이 숨어들게 되던, 마음의 말캉한 나약함을 기억한다. 나는 그대와 나를 위하여 거짓 상냥함을 고하지 않으련다. 그건 내가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이다. 나는 나를 대하는 방식으로 나와 같은 그대를 대하고 생각하고 위할 것이요, 그리하여 내 언어가 그대에게 아직 가혹함이자 아픔이라면, 그대와 내게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내가 차차 스스로 보드라이 대하매 그로부터 자연스레 상냥함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거나, 그대가 자기 자신을 지엄하게 대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해져야지.

 

나 또한 아무런 매력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노라 말하지 않는다! 그 아픈 현실감을 져버리는 순간, 도망치는 순간, 우리는 자기연민에 빠져 답을 구하지 못하리라. 내가 앓던 지독한 환상통보다도 더, 참으로 두려워한 것은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시간이 지나버리는 것, 답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은 아마 기한이 정해져 있을 것임에. 말하자면 아직 젊을 때, 희망과 행복을 미래에 유보하고 그를 기다림으로써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미생 未生의 시절 안에 나는 찾아야만 한다. 누군가는 반발하리라,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 무엇 희망을 우리가 기대해볼 수나 있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대의 고통을 그대로 둘 것인가. 나는 운 없이 내 글을 마주친 그대에게 고한다. 저항해야지, 반항해야지, 향방 向方을 찾아야지, 지금에 젊음이 가혹한 시기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비하는 것, 외적 환경과는 또 무관한 방향으로 나의 시간선은 고유하게 흘러날 것이고, 언젠가 더 이상 담보 없는 미래에로 희망의 상환 유예를 하지 못하는 때, 그때가 기한의 끝일 것이다. 나는 그대가 차라리 지금 더 아프길 바란다, 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후회를 평생토록 앓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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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는 그대가 서두르기 바란다. 나아가길 바란다. 그러므로 지금 자포자기 한 채로 삐뚤게 앉아 있을 그대의 냉소에는 혹한의 바람이요, 너무 뜨거운 심장을 괴로워하는 자에게는 더욱 불꽃을 이는 풀무의 바람으로써. 그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 사랑이 그대를 위함이 아니라, 그대가 사랑을 위하리라. 이것은 스스로 새긴 소박한 한 줄이다. 나는 스스로 사랑받으리라는 것, 사랑스러움을 믿지 못하였으나, 스스로 사랑을 바라는 것을 그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찌 해야 하는가, 그것만이 오랜 질문이 되어 남는다. 


나는 언젠가부터 믿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꾀하고 찾는다.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을 찾아 헤매이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진리이나 스스로 구하노라, 또 언젠가 닿았노라, 가졌노라 말해보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과장되다. 내 거친 생각과 나약한 심장이 저항하고 부정하고 밀어낸들, 언젠가 끝내 항거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것은 운명에 대함이요, 그것은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허무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너머 나의 희망과 믿음 또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과연 그 순간순간 소기 과정들을 나는 담아낼 수 있는가. 그리하여,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대들에게도 비슷한 것들을 드밀어 넣어볼 수 있는가. 나의 사람들, 웬만한 친절과 상냥함은 냉소로 뒤바뀌어버리는 그 차갑게 얼어붙은 심장, 불신자들아, 나는 그대에게 진정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쥐여 보일 수 있을까. 믿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것들을, 울력하듯이 다짐하듯이 강요하듯이, 벅차오르게 떠다밀 수 있을까. 나의 과격한 사랑을.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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