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언어가 또 다른 언어로 도착하기까지 –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글 입력 2023.06.2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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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아름다움을 좇아

마침내 시에 도착하는 이들의 이야기


한국 시 번역가들이 전하는 사랑과 감탄의 언어

 


‘한 편의 시는 “네가 세상에 무엇을 더하였는가?”라는 엄혹한 질문에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저 엄정한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의 노동은 세상에 무엇을 더하고 있나. 나는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나. 한국문학 불모지를 개척하는 젊은 번역가들이 사는 법과 직업의 긍지를 조심스레 내놓는다. 문학의 시대는 끝났고 첨단기술이 소설을 쓰고 번역가를 대체하리란 전망이 우세한 시절에 시가, 문학이, 번역이 사람을 살리는 현장 이야기를 얹고 싶었다. - p.11



르포 작가 은유의 신작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가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시’와 ‘사람’을 글쓰기의 두 축으로 삼는 저자가 그 교집합에 있는 존재, 한영, 한일, 한독 시 번역가 7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산문이다. 저자는 읽는 사람으로서 시를 통해 삶의 굴곡을 응시했던 첫 산문 《올드걸의 시집》 이후, 이번에는 묻고 듣는 사람으로서 시 곁에 기꺼이 머무는 이들의 얼굴을 조명한다. - 출판사 서평


 

인터뷰는 꽤 섬세한 작업이다.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적절한 언어로 재편집해 풀어내는 일련의 작업은 각 단계마다 성실함과 섬세함을 요한다.


가장 먼저 기획하고 인터뷰할 대상을 컨택하는 과정에서부터 만남까지는 대상이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꺼내놓을 마음이 되도록 설득적이어야 하고 인터뷰이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연락부터 사전에 질문지 전달, 사전 전화인터뷰, 인터뷰 방식 및 공간선정과 같은 과정이 포함된다.


만나서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할 때에는 인터뷰어의 다양한 역량을 동원해서 대화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인터뷰이가 연예인이 아닌 이상 아마도 익숙하지 않을 상대(인터뷰어)에게 자신(혹은 작품)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적절한 사전 질문 선정과 현장에서의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 수단을 활용한 라포형성은 인터뷰어의 역량에 달렸다. 다시 말해 인터뷰이가 긴장하지 않고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꺼내놓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진실한 관심과 경청하는 태도, 적절한 리액션 등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재편집할 시간이다. 이 과정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동시에 특별히 섬세함을 요한다. 아마도 동의를 얻어 녹음 또는 영상촬영을 했거나 상대와의 대화를 열심히 받아적었을 텐데, 내용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인사이트를 발굴해 주제에 맞게 편집해내야 한다.


이때 인터뷰이의 어감을 살려 대화체로 넣을지 혹은 서술형으로 편집하거나 간접인용해 정돈된 형태로 만들지 선택해야 하고, 어느 타이밍에 어느 정도 분량으로 서술자가 개입해 그에 대한 각주(또는 해설)을 넣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인터뷰를 정리해 하나의 글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은 모두 선택과 편집의 결과이다.


은유 작가의 인터뷰 기록은 다음에 내가 인터뷰를 하게 될 일이 있다면 참고하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 인터뷰어로써도 인터뷰이로써도 경험이 적은 편이라 ‘인터뷰 글쓰기의 정석’같은 표현은 달기 어렵지만, 어느 쪽의 입장에서든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뷰와 산문의 경계에서 그 두 가지 역할에 모두 충실해 그야말로 표지에 적혀있는 “한국 시 번역가 인터뷰 산문”이라는 분류가 어울리는 작업물이다.


본인이 설정한 소제목과 주제에 맞춰 인터뷰 내용을 적절히 편집하면서도 인터뷰이의 의도가 왜곡되거나 뉘앙스가 희석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직접인용을 사용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게다가 서술과 직접인용의 분량을 적절히 균형 맞춰 단순한 서술이라거나 스크립트처럼 대화를 그대로 옮겨놨다는 인상도 주지 않는다.


인터뷰 산문을 펴내는 능숙한 실력은 은유 작가가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낸 경험치가 쌓여서일까. 스스로를 르포작가라고 소개하는 은유 작가는 2012년 시를 곁들인 산문집 《올드걸의 시집》을 첫 책으로, 세 권의 글쓰기 책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두 권의 산문집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다가오는 말들》, 다섯 권의 인터뷰집 《폭력과 존엄 사이》 《출판하는 마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있지만 없는 아이들》 《크게 그린 사람》을 썼다.


책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에서 각각 ‘시에 도착하는 사람들(은유) - 즐거운 오해(호영) - 하지만 저는 해요(안톤 허) - 초와 선언(소제) - 동화가 잘되는 편(승미) - 반짝반짝 한국어(알차나) - 엄마 이상 스피릿(새벽) - 아름다움 교섭하기(박술)’로 이어지는 기록들은 저마다 출발어(작가가 작품을 쓴 원어)에서 도착어(다른 나라 언어로 옮긴 번역어)로 가기까지의 과정(다시 말해 ‘번역’이라는 과정)을 함께 통과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평소에는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번역노동자들의 삶과 일상, 단순히 글자 뜻뿐만 아니라 그에 담긴 문화적 요소까지 고려해야하는 고충, 번역을 통해 발견하는 시와 언어의 아름다움, 그리고 번역가의 삶까지. 이 책 한권에서 전부 찾아볼 수 있다.



돈에 삶을 내어주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바치라는 시대의 명령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기 힘을 동원하여 좋아하는 것을 남들과 나누며 살아가는 번역가들의 꼿꼿한 열정에 매번 감탄했다.


“우리는 순수한 것들을 생각했다”라는 폴 발레리의 시구를 보자마자 “이건 제목이야!”라고 외친 이유다. - p.10


 

 

출판사 서평



‘AI가 대체할 직업 1순위, 번역가’라는 통계에는 어떤 맥락이 생략되어 있을까. 작가가 작품을 쓴 원어를 ‘출발어’, 이를 다른 나라 언어로 옮긴 번역어를 ‘도착어’라고 부른다. 7인의 한국 시 번역가들은 한국어로 쓰인 작품들을 각각 영어, 일본어, 독일어로 옮긴다(때로는 그 반대의 일도 한다).


이들이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간극을 면밀히 살피고 단어를 골라 배치하여 문체와 문맥을 살린 문장들이 독자에게 도착한다. 작품을 깊이 읽고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일이기에 애정이 없다면 지속하기 힘들고, 잘할수록 투명해지는 노동이다.


효율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고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들, 이미 존재했지만 낯을 몰랐던 애정과 노동의 면면을 톺아보기 위해 은유 작가는 질문한다. 시도 번역이 가능한가요? 그 일을 왜 하시나요? 그리고 모든 질문은 결국 당신은 시를 어떻게, 왜 읽냐는 질문에 다름이 없기에 인터뷰이들의 답은 늘 삶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비로소 우리에게 도착한 문장들이 한 번역가가 생을 통과하며 체화한 감각으로써 읽는 이를 상상하며 건네는 대화임을 상상하게 되었다면, 번역가의 일이 기계로 대체된다는 전망은 이제 독자에게 드리운다. 당신은 시를 어떻게, 왜 읽는지. 미래에는 어떤 대화가 우리에게 남을지.


은유 작가의 문장으로 오해의 자리를 비워두며 자신의 해석을 믿고 나아가는 호영의 단단한 시선을, ‘번역 판’을 만들고 키우는 안톤과 소제가 관료화된 시스템에 던지는 질문들을, 한국어를 사랑해서 시 번역가가 되었다는 알차나의 넉넉한 사랑을, 일상과 번역일을 함께 운용하며 겪은 실패의 경험을 풀어놓는 승미의 소탈함을,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완결되지 않을 질문을 품고 시를 번역하는 새벽과 술의 혼란을 모두 읽은 후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번역가의 상은 사뭇 달라져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기어코 시에 도착하는 사람들, 그들의 꼿꼿한 문학에의 사랑은 우리가 잊고 지낸 시적 사유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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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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