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유지인스러움을 만나다: 유지인 첼로 리사이틀

글 입력 2023.06.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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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유지인 첼로 리사이틀 포스터.jpg



오랜만에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날씨는 화창하지만 조금씩 더워지고 점점 더 습해지는 요즘, 음악회를 찾지 않고서는 찌들어버린 일상을 환기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런 시기에 첼리스트 유지인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는 무대가 예술의전당에 있어서 무대를 기대하게 되었다. 한국 나이로 15세(만 13세)였던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7년 간 음악을 배우며 견문을 넓혔던 첼리스트 유지인이 이번에 예술의전당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산 인생의 시기의 약 1/3 가량을 보낸 프랑스에서 만난 현지의 음악들은 그에게 어땠을까. 마침 프랑스에 매력을 느끼는 나에게는 더더욱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프랑스 음악이 가진 그 아름다움과 오묘함이 첼리스트 유지인의 손끝에서는 어떻게 피어날까. 무엇보다 그의 연주는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해나가게 될까. 그 모든 것들이 궁금해지는 자리였다. 비단 나만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자리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를 기다리고 궁금해하는 수많은 관객들로 IBK챔버홀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 PROGRAM >


클로드 드뷔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라단조

C. DEBUSSY, Cello Sonata, L. 135

I. Prologue: Lent, sostenuto e molto

II. Serenade: Moderement anime

III. Finale: Anime, leger et nerveux


조르주 비제, 카르멘 판타지(오르 편곡)

G. BIZET – B. ORR, «Carmen Fantasy»


INTERMISSION


프란시스 풀랑,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FP143

F. POULENC, Cello Sonata, FP 143

I. Allegro Tempo Di Marcia

II. Cavatine

III. Balabile

IV. Finale


귀욤 코네숑, 아가르타의 노래

G. CONNESSON, «Les chants de l’Agartha»

I. Sous le desert de Mongolie

II. La bibliotheque des Savoirs Perdus

III. Danse devan le Roi du Monde

 




이번 유지인 첼로 리사이틀의 첫 곡은 바로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 L.135였다. 노년의 드뷔시가 담아낸 노련하고도 풍부한 이 작품으로 데뷔의 서막을 연 것이 아주 인상적이기도 했다. 드뷔시 첼로 소나타 1악장의 도입부는 사무엘 페어런트가 강렬하게 환기해주었다. 하지만 드뷔시가 피아노는 첼로와 동행하는 동반자로서 반주의 역할을 주문한 대로, 사무엘 페어런트는 도입부 이후에는 오롯이 유지인의 첼로와 동행하며 이와 어울리는 곡 전반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래서 더욱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이 잘 부각되었다.


유지인의 첼로는 1악장에서 부드럽고 심지가 굳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2악장부터는 훨씬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템포가 변화무쌍하고 테크닉도 종횡무진하는 이 재지한 세레나데 악장을 유지인은 아주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그야말로 프랑스 음악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마지막 3악장에서 유지인은 사무엘 페어런트와 호흡을 맞추며 다시금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드러내었다. 그의 예술의전당 데뷔 첫 곡으로 가히 운명적인 작품이었다.


*


이어지는 두 번째 곡은 카르멘 판타지였다. 19세기에 작곡된 비제의 원작을 20세기에 이르러 벅스튼 오르가 편곡하여 완성된 이 작품은 상당히 현대적인 시점에 편곡이 이루어졌는데 그래서인지 편곡이 평범하지 않다. 누구나 카르멘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선율들이 이어지다가도 자연스러운 전환이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선율들이 다 나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그렇게 말미 즈음까지도 왜 안나오나 싶던 선율들은 그제야 아주 짤막하게,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사이의 어드메를 건드리며 나왔다 불꽃이 타오르듯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연주하는 유지인은 드뷔시를 연주할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소 현대에 가까운 드뷔시를 연주했던 모습이 2부의 코네숑을 기대하게 만든 것과는 다르게, 카르멘 판타지를 연주하는 유지인은 그가 낭만을 다루는 법을 상상해보게끔 만들었으니 말이다. 순간순간 카덴차마냥 솔로 첼로 선율이 온전히 홀을 가득 채우는 순간마다 유지인은 깊은 보잉으로 심장을 저며드는 듯한 선율을 연주하며 관객의 몰입감을 높였다. 그래서인지 카르멘 판타지가 끝나자 첫 곡 드뷔시 때보다 더 큰 환호가 터져나왔다.



1.jpg



2부의 첫 곡은 풀랑의 첼로 소나타 FP143이었다. 사무엘 페어런트의 첫 타건에 곧바로 얽혀드는 유지인의 첼로 선율로 아름다운 풀랑의 음악 심상이 IBK챔버홀을 가득 채웠다. 혼자 따로 듣기만 했던 것보다 풀랑의 음악은 훨씬 더 활기차고 아름다웠다. 이 작품은 2차대전을 거쳤음에도 오히려 벨에포크를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이번 유지인 첼로 리사이틀에서 연주된 작품 중에 가장 매력적인 생동감이 가득했던 악장이었다.


2악장 카바티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무대를 가장 고대하게 만든 악장이었다. 이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면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악장을 유지인은 어떻게 전해줄 것인가가 가장 개인적인 관건이었다. 첼리스트 유지인은 약음기를 끼고 둥글고 부드러운 소리로 서문을 열었다. 그는 약음기를 뺀 채로도 마치 끼고 있는 듯한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전해주었다. 심장에 와 닿는 이 감동어린 선율을 어떻게 더 표현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번 유지인 첼로 리사이틀의 백미였다.


3악장 발라빌레는 스케르초 악장이면서 스케르초의 익살스러움과 프랑스 음악 특유의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유지인은 사무엘 페어런트와 한 호흡으로 이 생동감 넘치는 악장을 발랄하게 그려냈다. 마지막 피날레는 유지인의 첼로 화음 선율이 수미상관을 이루는 악장이다. 어떤 의미에선 피날레답지 않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악장이다. 피날레다운 화려함이 가득하기보다, 풀랑은 이 마지막 악장을 마치 파리지앵의 변덕스러움마냥 변덕스러운 느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소 느리다가도 빠르게 변화하고, 강렬한 더블 스토핑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 유지인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괄목하게 되는 그의 연주에 마음을 빼앗겼다.


*


마지막 작품은 귀욤 코네숑의 현대 작품, '아가르타의 노래'였다. 15년 전인 2008년 작품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프로그램 중 나머지 세 작품이 1900년대에 완성된 것을 고려해도 가장 현대적인 작품인 것이다. 아가르타의 노래는 완전히 현대음악적인 면모만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현대음악의 그 난해함이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굉장히 묘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첼리스트 유지인이 이를 어떻게 전해줄 지 너무나 궁금했다.


1악장인 몽골 사막 아래는 작곡가의 의도대로라면 몽골 사막에서부터 음악적으로 하는 세계여행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에게 아마도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 큰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인지 다소 차분하게 시작하는 1악장은 어딘가 모르게 이국적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사무엘 페어런트의 피아노는 마치 사막의 모래 아래를 파고 들듯이 침잠하고, 유지인의 첼로는 그 사막의 세계를 유영하며 도시와 사막을 우리에게 그려주었다.


2악장은 프로그램 북의 설명에 따르면 간주곡 역할을 하는 악장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스케르초적인 면이 더 부각되는 악장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유지인과 사무엘 페어런트의 선율이 경쾌하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며 서로 얽혀들었다. 짤막한 악장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 악장의 경쾌한 매력이 더욱 각인되는 듯했다.


마지막 3악장은 프랑스 춤곡 두 주제가 제시되었다. 처음에 제시된 것은 바카날리아 춤곡, 이후에는 민속적인 주제가 제시되는데 여기서 변함이 없는 것은 딱 한 가지다. 바로 시종일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듯 전개가 된다는 것이다. 격렬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러는 와중에도 완급은 조절해야 하니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게 참 많은 피날레였다. 그러나 유지인과 사무엘 페어런트는 마치 한 사람이 호흡하듯 어우러지는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그 비르투오소 듀오에게 끝내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진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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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유지인은 앵콜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프로그램 북에서도 인삿말이 담겨있기는 했지만, 유지인은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지 7년이 되도록 자신을 응원하고 기다려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또한 첼리스트 유지인에게 이번 무대는 예술의전당 데뷔 무대이기도 했는데, 이를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비록 한국말을 몰라 프랑스어로 하긴 했지만, 피아니스트 사무엘 페어런트 역시 처음 방문하는 한국에 대한 기대감과 따뜻한 관객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놀랍게도 그는 공연 당일이었던 6월 16일에, 지하철을 타고 가서 경복궁을 관광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에 처음 방문한 것이어서 연주회 전에 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던 것일까. 공연 당일에 관광을 다녀오는 그 대범함과 여유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두 연주자는 관객들에게 총 두 곡의 앵콜을 들려주었다. 먼저 아가르타의 노래 이후 한숨 돌릴 수 있는 포레의 시실리엔느를 들려주었다. 유지인의 포레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내 마음을 어찌 알고 딱 앵콜로 포레를 들려주는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다음으로는 다시금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하는 마누엘 데 파야-모리스 장 드롱의 오페라 <허무한 인생> 중 스페인 춤곡 1번이었다.


*


이번 유지인 첼로 리사이틀은 첼리스트 유지인과 피아니스트 사무엘 페어런트의 환상적인 호흡 덕분에 마치 프랑스 음악으로 디너 정찬을 음미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저 아무즈 부쉬(Amuse Bouche)처럼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로 프랑스 음악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들려주고, 오르되브르(Hors D'oeuvre)로 오르가 편곡한 비제의 카르멘 판타지를 통해 메인에 가까워지는 순간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앙트레(Entree)로 연주해준 풀랑의 첼로 소나타는 그야말로 프랑스 음악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으며 메인 요리(Plat Principal)로 만난 코네숑의 아가르타의 노래는 프랑스 음악의 미래까지 엿보게 만들었다.


이 아름답고도 즐거웠던 음악의 순간들을 다양한 얼굴로 연주해 준 첼리스트 유지인은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연주자였다. 한없이 여리고 부드러워 꿈 속을 거니는 것 같은 순간을 전해주다가도 순식간에 그는 폭풍우 속을 헤쳐나가는 것 같은 장면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손이 쉼 없이 활을 켜고 현을 뜯으면서 들려준 그 음악들에는 프랑스 음악의 과거와 현재, 미래만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첼리스트 유지인이라는 비르투오소도 녹아있었다.


앞으로 유지인은 어떤 레퍼토리들을 연구해갈까. 유럽을 주 무대로 하되 그가 한국에서도 자주 연주회를 열어주길 고대하게 된다. 지금에서 더 많은 경험이 더해진 미래의 그가 들려줄 또 다른 인상적인 레퍼토리, 그가 전해 줄 비범한 연주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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