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존을 보존하다 - 연극 '보존과학자'

글 입력 2023.06.0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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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 소멸, 연극 "보존과학자"



보존의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선택이 수반된다.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보존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이며 따라서 부자연스러움을 감내하는 행위이다.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감내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대상의 물성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 물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이며, 보존은 그런 시각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차례 지구의 파괴를 겪으면서도, 보존과학자들은 창고 깊숙이 숨겨져 있던 텔레비전을 보존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보존과학자 본인조차도 그것을 왜 보존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전원이 켜지거나 작동하지도 않고, 예술가가 남긴 작품도 아니며, 낡고 오래되었을 뿐인 고철을 왜 보존해야 했는가.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보존의 고리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시간은 세 딸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로 거꾸로 흘러 들어간다.

 

 

[크기변환][국립극단]보존과학자_홍보사진05.jpg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텔레비전으로 녹화된 영상만을 무한 반복 재생하며 하루를 보내는 남자.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면서 리모컨을 뺏어도 보고 닦달도 해 보지만 그는 '이 안에 우주가 있다'는 엉뚱한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다.

 

 

 

보존을 보존하다



극을 감상하면서, 왜 하필 텔레비전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떠올랐다. 아무리 오래된 물건이라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고, 당장 오늘날만 해도 사람 키만 한 번쩍거리는 텔레비전도 많은데 왜 박물관이나 고물상에나 있을 법한 구식 텔레비전이었을까.

 

딸들은 아버지에게 이제 고장이 나서 잘 나오지도 않는 건 버리고 차라리 새 텔레비전을 사자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요즘 나오는 새 텔레비전은 구식 모델과는 달리 녹화된 비디오를 재생할 수 없다면서 한사코 거부한다.

 

실제로 아버지가 반복해서 보고 있던 영상은 뉴스나 예능 프로가 아닌, 과거에 그가 했던 인터뷰 장면이다. 그 인터뷰 장면에는 '얘들아 보고 있지?'라며 아이들을 부르는 자신과, 뒤편에서 작게 아내의 모습도 등장한다. 그가 텔레비전 안에 있다고 한 우주는 다름 아닌 소중한 가족의 녹화된 추억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텔레비전의 의미는 어쩌면 보존 그 자체이며, 텔레비전의 보존은 보존의 보존일 것이다.

 

 

[크기변환][국립극단]보존과학자_홍보사진06.jpg

 

 

나는 어릴 적에 매우 열정적인 보존가였다. 땅바닥에 떨어진 새의 깃털도, 비비탄 총알도, 우표도, 구슬도, 장난감 반지도, 스티커도.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모아서 상자에 넣어 수집하고 보존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최근 집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중 오래전 모아 뒀던 새 깃털 상자를 발견했었다.

 

어릴 적의 나는 매일 집-학교-놀이터, 똑같은 곳만 돌아다녔으니, 종류도 그다지 다양하지 않아 상자는 비둘기나 참새의 깃털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참 쓸데없는 데 관심이 많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쓸데없는 상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릴 적 깃털을 줍겠다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기억이 마치 비눗방울처럼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건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행복과 그리움의 중간 즈음에 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크기변환][국립극단]보존과학자_홍보사진03.jpg

 

 

이제는 웬만하면 모으지 않는다. 이사할 때 다 짐이 될 뿐이다. 어쩌면 먼 미래에는, 나와 같이 모두가 보존의 취미를 잃어버리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극 중 세상처럼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 지구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 무언가를 보존할 여유 같은 건 없어지고 오로지 실용주의적인 용도에 몰두하게 될지도 모른다. '보존과학자'라는 직업을 만들며 애써야지만 겨우 보존의 흉내라도 낼 수 있는 무의미의 세상이다.


하지만 무언가 오래된 물건을 남기고, 그로부터 흘러가 버린 시간의 자취를 쫓아 과거의 장면을 마주하는 행위는, 보존은, 인간의 영혼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의미'라는 건 해석하기 나름이다. 누군가는 실용주의적인 측면에서 보존을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부르겠지만, 보존이 주는 행복감은 오직 무언가를 기억하고 소중히 여길 때만 입장할 수 있는 '무의미의 축제'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연극은, 보존 그 자체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보존을 보존하자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며


 

내용과는 별개로, 조명과 음향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는 연극이었다. 특히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신비하고 환상적인 배경을 자주 연출했는데, 그 덕분에 연극을 보는 동안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 온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배우분들의 재치 있는 입담, 깜짝 놀랄 만큼 환상적이었던 노래와 춤도 모두 기억에 남는다. 또한 그런 몰입감은 종종 이유도 모른 채 뭉클한 감정이 들게 했는데, 그건 그리움과 애틋함이라는, 보존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던 덕분이 아닌가 싶다.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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