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요, ‘보존과학자’ [공연]

-국립극단, <보존과학자>
글 입력 2023.06.0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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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공연 [보존과학자] 관람일, 나는 유월의 푸르른 하늘을 벗 삼아 발걸음을 나섰다. 저 멀리 강렬한 붉은색으로 맞이하는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백성희장민호극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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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의 박수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인생을 살아온 것이 60년인데 내 이름의 극장과 연극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행복한 배우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 2011년 인터뷰 중, (故장민호, 192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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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창작극 [보존과학자]가 열리는 백성희장민호극장은 2011년 3월 연극 [3월의 눈] 개막과 함께 세상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1950년 창단된 국립극단의 주역인 故백성희, 故장민호 두 배우의 뜻을 기리는 취지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따 헌정한 극장으로 연극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거나 완성도가 빼어난 작품들을 엄선하여 무대에 올리고 있다.

 

백성희장민호극장은 16m x 11m 규모의 기본 무대를 중심으로 200석부터 400석까지 변화가 가능한 객석 운영으로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자유로운 공간 활용이 가능한 실험적 극장이다.

 

특히 1자 개념을 30cm로 적용, 무대 바닥 기본 사이즈를 90cm x 180cm로 하여 무대 바닥 그 자체를 평면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관람 예정인 국립극단의 공연 [보존과학자]는 벌써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공연장 무대에는 객관적인 성격의 ‘ㅁ’자 구조 안에 다양한 물성의 대도구들이 오브제로 존재한다. 중앙 무대에는 흙과 같은 원초적인 물성이, 후 무대에는 수많은 박스가 수장고를 형성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보존과학자1’의 연구실이며, 수많은 시간과 공간이 지나가는 교차점이다.

 

지금까지 발굴하고 보존된 물건이 고유의 넘버와 코드를 가지고 존재하고 있으며, 수장고 안 박스의 수만큼 다양한 흔적들과 이야기가 모여 [보존과학자]의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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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는 보존하는 것이에요!"


 

내 귓가에 들린 대사 중 하나다. 대부분의 옛것이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었거나 우주의 먼지로 변해 버린 미래. 쓸모없는 것들은 인제 그만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를 두고 전문가들이 논의하는 가운데, 보존과학자1은 아주 낡고 보잘것없는 물건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애쓴다.


현재 이곳에는 한 가족이 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는 아버지, 사업에 실패한 후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첫째, 꿈에 가닿지 못해 포기 직전인 둘째, 돈을 벌기 위해 전공과 다른 일을 하는 셋째가 각자의 문과 싸우고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어떤 문 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문은 자꾸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한다.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뒤섞이며 서로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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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이 어떻게 살아요? 도대체 의미가 뭔가요?"


 

이 역시 내 귓가에 들린 대사 중 하나다.

 

분명 우리 각자의 인생길에도 ‘문’이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어떤 이의 문은 견고할 것이며, 다른 어떤 사람의 것은 매우 낡았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문을 마주했을 때, 어떤 의미를 두고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을 것이다.

 

내가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 때서라야 가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만약 보존과학자1이 나에게 보존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매 순간 맞이하는 나의 소중한 일상을 보존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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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국립극단(예술감독 김광보)은 창작 신작 [보존과학자]를 5월 25일부터 6월 18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인다.


[보존과학자]는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 공감: 작가]를 통해 개발된 윤미희 작가의 희곡으로, 올해 관객과 처음 만난다. 윤미희 작가는 2020년,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산실 대본 공모, 2021년 서울연극제 단막 희곡 공모 등에 선정되며 고유한 자신만의 세계를 증명해 오고 있다. 윤미희는 이번 작품에서 소멸과 영원, 보존과 복원에 대해 추상적이고 우화적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보편적인 서사를 들려준다.


대부분의 옛것이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었거나 먼지로 변해 버린 미래,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여 보존과 복원에 관해 결정하는 '보존과학자'가 있다. 오랜 시간 쌓여있던 물건 중 예술작품이라고 여겨지는 텔레비전을 발견하곤 물건에 담긴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복원의 과정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한 가족의 이야기와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어떤 문 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뒤섞이며 어느 순간 서로 이야기가 되어간다. 폐허가 된 세상에 홀로 남은 보존과학자가 지키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만약 극 중 '보존과학자1'이 나에게 보존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매 순간 맞이하는 나의 소중한 일상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굳이 보존하지 않아도 좋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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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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