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정한 배움이 있는 학교 [도서/문학]

조봉수, 「미래의 교육, 올린」
글 입력 2023.06.0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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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때 좋은 성적을 받으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학점을 받으면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삶을 성공한 삶이나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는 수능 성적의 비중을 낮추고 있고, 진로를 향한 다양한 활동 기록을 토대로 학생을 선발한다. 특성화 고등학교도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교육 시스템은 아직 옛날 방식에 머물러 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점수가 아니라 배움을 목적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있는가? 지금의 교육은 삶의 전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점수를 내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는 좋은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실험을 멈추지 않는 올린 공대(Franklin W. Olin College of Enginnering)라는 학교가 있다. 올린은 2002년에 개교하여 엔지니어링 교육에 중점을 둔 4년제 대학으로, 전교생이 350명 정도인 작은 학교이다.

 

이 학교의 교육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한 책 <미래의 교육, 올린>의 저자는 올린 공대가 '현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학교'라고 말했다. 전 세계의 교육자들을 초청해 올린의 교육 철학과 방식을 전파하는 'I2E2'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학교에서 생활하며 올린의 학생들과 교수들을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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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회에 필요한 교육



우리 모두가 경험한 교육 시스템은 산업 혁명 이후 만들어졌다. 당시의 교육은 산업과 사회를 더 효과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교육 방식은 21세기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미 우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떤 지식이든 단숨에 찾아낼 수 있고, 복잡한 계산도 컴퓨터가 순식간에 해 주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공 지능이 글도 대신 써 주고 그림도 그려 주는 시대에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통찰력이다.

 

인도의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개개인은 모두가 다른 잠재 능력과 성격,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모두에게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런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기관을 찾아 전 세계를 다니다 올린 공대를 발견했다. 올린의 사명 선언문에서 혁신적이고 이상적인 철학을 볼 수 있다.

 

 

올린 공대는 세계의 이익을 위해 필요를 인식하고, 솔루션을 디자인하며, 창의적인 기업에 참여하는 모범적인 엔지니어링 혁신가가 되는 학생을 키웁니다.

 

 

 

배움에 집중하는 교육


 

올린에서는 '교육의 본질인 배움에 집중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배움이란 교수가 강의를 잘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 스스로가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하고 학교와 교수는 그 과정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점수는 그저 학생의 배움에서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역할이며, 점수가 배움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올린에서는 파격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입학 후 첫 학기의 모든 수업에서 학점을 매기지 않는 것이다. 평가는 패스와 논패스로 구분되며 논패스가 되더라도 기록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신입생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초반의 참여도는 예상보다도 낮다고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의 우수한 학생들도 자신의 성장이 아니라 점수를 목표로 공부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학생들은 점수가 아닌 배움의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하고 배우는 것이 점점 재미있게 느껴졌다. 생각한 것을 실제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넓게만 배워 온 이론이나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깊이 있게 배우고 경험하면서 배움이 즐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재학생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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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주도적인 교육



올린에서는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 외의 과목도 자유롭게 개설할 수 있어 새롭고 실험적인 수업이 만들어진다. 그중 하나로 융합형 수업이 있는데, 두 분야의 교수들이 하나의 융합형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역사의 물건' 수업은 재료공학 교수와 역사학 교수가 개설했다. 일상적인 물건들 중 하나를 골라 팀을 구성하고, 선택한 물건의 특성을 공학, 인문학, 사회학 등 여러 관점에서 탐구하는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비슷한 용도로 사용했던 과거의 물건을 찾아 현재의 형태로 발전해 온 과정을 알아보고, 물건을 만드는 데 사용된 과거와 현재의 재료를 구해서 직접 물건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재료공학과 역사학 강의를 듣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각 과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효과적으로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자기 주도적으로 주제에 대해 연구할 수 있다. '주도적 학습 권리' 또한 올린에서 중시하는 가치 중 하나이다. 학생들은 원하는 재료와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교수는 코치 역할만 한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방식은 연결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내용이 책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고, 여러 사람과 집단을 넘어 삶 전체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것은 공부에 대한 내적 동기를 만들어준다.

 

"학생들이 많은 지식을 얻지는 못할 것 같다."라는 저자의 질문에, 해당 교수는 "학생들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식의 양'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문제 해결 역량'은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팀 프로젝트



올린에서는 팀 프로젝트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협력과 소통 능력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조별 과제는 한국 대학교에서도 일상적으로 진행되지만, 여기에 있어서 한국 대학과 올린의 차이점은 교수의 역할이다. 교수는 평가하거나 성공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이 아니라 개개인과 상호작용하며 학생들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학생과 함께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지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실패를 하더라도 점수로 평가하는 대신 그 안에서 무언가 배우고 문제 해결 방안을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다. 이런 방식은 성공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한다. 실패하더라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은 공부의 원동력이 된다.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라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수업에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프로젝트 수업은 과정 중심의 수업이므로 교수들은 학생의 성장을 토대로 평가를 한다.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학생이 피드백을 얼마나 잘 흡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또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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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본질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본질적인 고민은 바로 깨달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달음이 있어야 본질적인 고민을 할 수 있고, 본질적인 고민을 거쳐야만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무언가를 깊이 깨닫는다는 것은 책이 아니라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리처드 밀러(Richard Miller) 올린 공대 총장 인터뷰 中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기보다는 온전한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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