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다린다는 것에 관하여 [사람]

글 입력 2023.06.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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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

 


셍텍쥐페리의 명작 <어린왕자>의 명대사 중 하나다. 어린왕자를 2년도 더 전에 읽어, 이 명대사의 배경이 온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작품 속 등장하는 여우의 말이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어린왕자를 읽을 당시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좋아서 약속 시간에 일부러 30분이 넘게 일찍 나가고 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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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의 약속이나 회의 시간을 잡아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가령 시간을 세 시로 잡았다고 치면, 그 시간에 미리 도착하거나 딱 맞춰 도착하는 사람이 드물다. 현실적으로 일이 돌아가는 회사라면 그것들이 정확히 맞춰 돌아갈 테지만, 아직 학생인 나의 일, 나의 주변 사람들은 그렇다. 나는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해 여유롭게 준비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그곳에 도착해 있는다. 다른 사람들이 예정 시간보다 늦어지면서 나는 일찍 도착한 시간에 그들이 늦은 시간까지 더해진 만큼을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이러한 기다림은 처음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조금 늦을 수도 있지, 일이 있으니 늦을 수도 있는 거지 등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의 지각은 크게 나를 흔들 일이 아니었고, 늦게 도착하면 늦게 도착한 대로 서둘러 시작하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나처럼 일찍 도착한 사람들도 그들의 지각에 대해 크게 화를 낼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런 줄 알았다.

 

최근에 항상 나와 같이 일찍 도착해 있는 사람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저렇게 똑같은 사람이 매번 지각하는데 그냥 둬도 돼? 좀 뭐라고 좀 해. 지각비를 걷든, 큰소리를 내든 해야지. 지각하는 사람 많아지니까 회의도 길어지지.”

 

그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우리가 진행하는 회의는 회의 내용상 길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한편, 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더 길어지는 것도 틀림없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각할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잘못 쌓여 버린 나의 배려가 시간을 잘 지키고 정확히 해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나는 그들의 ‘지각’이라는 것에 대해 꽤나 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에는 회의 시간을 더 이르게 정하면 우리가 원래 진행하던 시간에 맞춰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원래 진행하던 시간에 문제가 있던 것일까? 이번에는 회의를 평소보다 늦게 진행해 보았으나 그들의 지각은 여전했다. 그렇다. 그들은 그냥 습관처럼 지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지각을 하는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을 현명하게 계산하지 못하거나, 개인적인 일과 함께해야 하는 일에 투여하는 시간 조절을 못하거나, 순간의 즐거움과 가벼운 생각에 빠져 중요한 것을 잊었기 때문이리라.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게 나쁜 일이 아니라면) 항상 설렘을 안겨 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순간까지 행복해할 정도로 그를 좋아한 것처럼, 나도 내가 기다리는 이들을 아주 많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기다림들을 마냥 즐겁게 보아도 되는 것일까 의문을 품게 되었다. ‘즐길 수 있는 기다림과 즐겨서는 안 될 기다림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비로소 했다.


누군가에 대한 기다림이 즐거우려면 혹은 아무렇지 않으려면 그것은 정말 늦어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듯하다. 나의 기다림은 회의가 끝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중간에 사람들이 오다 보니 회의 내용이 흐지부지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처럼 그들에 대한 기다림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지각을 하는 사람들은 좀 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늦는 사람은 항상 늦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늘상 늦는 사람이라면 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하기 전에 시간 계산을 착실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는 나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일에서도 기다린다는 것까지도 즐거울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어릴 적 소풍 하루 전 밤이면 그 설렘에 잠 못 이루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 아닌)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기다리는 이를 지치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자주 지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기다리고 있을 사람을 조금만 생각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당신을 좋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그것은 때때로는 그들을 조금은 고달프게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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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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