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취향으로 판단하지 말아요 [영화]

<타인의 취향>, 취향이라는 장막을 걷어내면 보이는 것들
글 입력 2023.05.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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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곁눈질과 시행착오로 끝내 가까스로 얻게 된 한 줌의 취향.'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큐티클>에 나오는 이 문장은 취향의 속성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취향은 마치 DNA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짓지만, 그렇다고 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특정 시기가 되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듯이,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나만의 취향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기도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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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취향을 지닌 사람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외부의 자극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이 능력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이것은 자신만의 것을 찾기 위해 다분히 노력해 왔던 그들의 지난 세월에 대한 보답이다.

 

하지만 너무 견고한 취향은 때로는 독이 된다. 뼛속 깊이 새겨진 취향은 우리가 누군가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날카로운 가위 날이 되어 타인과 연결된 끈을 가차 없이 잘라내기도 한다.

 

아그네스 자우이 감독의 2001년 작 <타인의 취향>을 보면, 사람들은 서로 다른 취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갈등한다.

 

재미있는 TV 코미디를 선호하는 남자와 관객이 많지 않음에도 연극 무대에 오르는 여자, 집을 공주의 방처럼 화려하게 장식하는 걸 좋아하는 여자와 그녀의 조언에도 자기 마음대로 집을 꾸미는 여자, 마약은 불법이라 용납할 수 없다는 남자와 마약보다 술과 담배가 훨씬 해롭다고 생각하는 여자.

 

이러한 취향과 생각의 차이로 인해 인물들은 서로를 향한 색안경을 쉽게 벗어 던지지 못한다. 이들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서로에 대한 편견을 키워나가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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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취향만으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과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을 판단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발을 맞추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 것이다. 

 

예술에 조예가 깊고 매사에 진지한 연극배우 클라라는 처음에 공장 사장 카스텔라의 사랑 고백을 거절한다. 자기가 지닌 취향에 비해 그의 취향은 저급하고 유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자신과 카스텔라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클라라는 자주 가는 술집의 사장이었던 프레드와 데이트를 하게 된 친구 발레리의 이야기를 듣고 카스텔라를 자신의 다음 연극에 초대한다. 그리고 그는 커튼콜 때 객석에 앉아 자신을 향해 힘껏 손뼉을 치는 카스텔라를 보고 무대 위에서 활짝 웃어 보인다. 

 

 

“신기하지. 우리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나랑 전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말 잘못 생각했지. 놓칠 뻔했잖아.”

 

 

이름과 생일을 가지고 대화도 한번 제대로 나눠보지 않은 두 사람의 궁합을 재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취향은 알고 보면 아주 얇은 한 겹의 장막에 불과하다. 그 장막을 걷어내고 타인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비로소 다름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끈을 연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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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인의 취향> 속에는 변화를 통해 상대와 화해를 이루는 인물도 있지만, 끝까지 상대와의 간극을 줄이지 못한 채 떠나게 되는 인물도 있다. 이들에겐 ‘타인의 취향’이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것 같겠지만, 사실 사람들 사이에 균열을 만드는 것은 타인의 취향이 아닌 ‘자신의 취향’이다.

 

새로운 인연을 찾고 있는가? 자신의 취향을 기준으로 타인의 취향의 가치를 평가하지 말고, 아집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라. 그러면 자기가 찾고 있던 사람이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게 될지도 모른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문제는 항상 당신의 손에 달려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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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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