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하재영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도서/문학]

우리가 우리로 존재하기 위한 작업
글 입력 2023.05.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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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어디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엄마”라고 말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는가?

 

‘엄마’, ‘어머니’는 어디에 있었고 어디에 있는가. 나는 말하고 싶다. 어머니, 엄마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고. 누군가가 자애로운 어머니를, 엄격한 어머니를 떠올릴 때, 어딘가에서는 ‘맘충’과 ‘느검’을 연상한다. 그들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어머니를 모른다고. 내 삶의 어떤 순간에서, 엄마는 낯선 얼굴을 한 타자였다. 엄마는, 그는 내가 아는 ‘어머니’와는 달랐다. 여성은 오래도록 여성 이전에 ‘모성’으로서 존재해 왔다. 엄마는 어머니 이전에 나와 같지만 다른 누군가였다. 그런데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걸 잊고 있었다.

 

 

 

모름을 앎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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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재영의 책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엄마에 대한 모름을 앎으로 바꾸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책은 엄마의 삶을 경청하고 해석하고 감응하려는 작업이었다.”(9쪽) 작가는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엄마의 감정으로 느끼려고 그녀의 내적 논리와 존재 방식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같은 쪽) 

 

책은 두 사람의 삶의 대목을 여섯 개의 앨범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앨범의 앞부분에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그의 삶을 담고, 작가 자신의 삶을 그 뒤편에 달아 어머니의 구술에 주석을 달듯 공동회고록을 써냈다. 

 

어머니가 이해 불가능한 타자라는 점에서, 그 긴 역사를 온전히 책 속에 재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작가는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한계를 알면서 그는 이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말한다. “성공적으로 실패하고 싶었다.”(10쪽) 그리고 나는 장담한다. 이 작업은 성공적으로 의미 있게 실패했노라고.


책의 제목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에밀리 디킨슨이 편지에 썼던 문장이다. 작가는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한다. 이 선언은 모계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자신 안의 ‘여성적 힘’을 선포하는 것이며 어머니의 시대를 넘어서는 것이며, 나를 낳은 여자의 분신으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한계와 애증 속에서 하재영은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필경사가 되어 엄마와 나의 공동의 회고록을 쓰는 일이 엄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못했던 다수의 여성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되기를 소망했다. 이야기는 단지 우리의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거나 해방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 내가 엄마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엄마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나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엄마가 자기 삶의 저자가 되는 ‘사건’이었다. (14~15쪽)

 

 

 

연결과 확장


 

하재영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연결’과 ‘확장’ 두 단어를 떠올렸다. 하재영의 산문에서는 개별적인 것이 전체적으로 확장되는 부분들이 많다. 어머니의 회고는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이며 특수성을 지닌다. 작가 하재영이 후술하는 개인 경험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하재영의 작업이 특별한 것은 어머니의 내보임과 딸이 어머니의 구술 회고를 받아적는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는 어머니와 딸의 개별 경험을 이데올로기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우리는 세계의 실패를 직시하는 대신 그 실패를 어머니라는 개인에게 떠넘김으로써 근본적 원인을 은폐한다.“ (125쪽)

 


하재영은 어머니의 노동 경험에 대해 어머니의 노동이 언제나 ‘스위트홈’에 복무하는 것이었음을 간파해 낸다. 가부장제 아래 애증과 애착이 뒤엉킨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같은 이데올로기 아래 살아가는 독자에게서 공감과 연결감을 이끌어낸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인정받고 싶어 목을 메고, 어떻게든 상처입히고 싶어서 애를 쓰던 딸의 모습에서 내가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다, 말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엄마와 내가 이 책에 있었다. 힘겹게 책을 펼쳤다가 덮기를 반복하면서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이 책은 하재영 작가와 그의 어머니 고선희님의 이야기이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이야기는 개인적이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다.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전히 제삼자의 입장에서 서술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목소리는, 작업은 무엇보다 의미있다. 어떤 경험과 관계는 이렇게 발화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야기들은 이렇게 발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적인 일이라고 외면당하고 무시당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삶이다. 모든 이들의 삶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으며 비단 이것은 개인적이기만 한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단지 개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이 이야기는 그것을 밝혀내는 작업이며, 이것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엄마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일, 가족일 ‘우리’를 이야기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작업이다.

 

온 힘을 다해 썼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글이었다. 힘든 마음에 외면하고 싶다가도 필사적인 노력이 엿보여 꼼꼼히 문장을 곱씹어 읽었다. 어렵고 힘겨운 작업을 해낸 두 여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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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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