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 그리고 1920년대 미국

글 입력 2023.05.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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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뮤지컬 시카고 오리지널 내한 공연_포스터.jpg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뮤지컬 <시카고>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연도만으로 풍경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와 영화 <바빌론>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뉴욕에서 개츠비가 매일같이 파티를 열고 할리우드에서 넬리가 스타를 꿈꾸는 동안, 시카고에서 록시는 살인죄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시카고>에서 풍자하는 현실은 오늘날의 관객에게도 공감을 살 만큼 유효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1920년대’라는 시간과 ‘미국’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기에 만날 수 있는 <시카고>만의 독특한 정서 역시 존재한다. ‘광란의 20년대’, ‘재즈시대’ 등의 별칭으로 불리며 다른 나라,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도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1920년대 미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카고>의 넘버와 함께 그 면면을 살펴보자.

 

 

 

All That Jazz: 향락과 유흥의 시대


 

ChicagoTour25th_8190_KatieFriedenAndCompany Credit Jeremy Daniel.jpg

photo by JEREMY DANIEL

 

 

Come on babe

Why don’t we paint the town?

And all that jazz


I’m gonna rouge my knees

And roll my stockings down

And all that jazz


Start the car

I know a whoopee spot

Where the gin is gold

But the piano’s hot

 

  

뮤지컬의 시작을 알리는 넘버 ‘All That Jazz’는 <시카고>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의 분위기를 5분으로 압축해서 들려준다.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댄서들과 자유분방하게 흐르는 재즈 선율, 그 한가운데 보드빌 스타 ‘벨마’가 있다. 누군가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술과 음악으로 가득 찬 이 시끄러운 순간에 존재하는 게 자신의 삶이며, 그걸 사랑한다고(No, I’m no one’s wife/But, Oh, I love my life) 노래한다. 반복되는 구절 ‘All that jazz’는 한국 공연에서도 원어 그대로 나와 재즈라는 장르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관능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All That Jazz’의 분위기처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미국에서는 비통하거나 가난한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4년간의 전쟁이 승전국과 패전국을 가리지 않고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동안 다른 대륙에 있었던 미국은 오히려 전쟁을 발판 삼아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도약한다. 포드사에서 시작되어 ‘포디즘’이라 불리는 분업생산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자동차가 대중화되었고, 농업부터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각종 산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높아진다. 

 

 

131.jpg

1920년대 플래퍼의 모습(출처: publicdomainpictures)

 

 

경제 성장과 기술의 발달은 대중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특히 영화와 프로 스포츠가 인기를 누렸다. 같은 시기 퍼진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은 당시 미국인들의 성(性) 문화가 개방적으로 바뀌는 데 영향을 주었고, 이는 여성해방운동과 맞물려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다리를 드러내는 옷을 입은 ‘플래퍼’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천박하다고 외면받던 재즈 음악이 대중화되었으며 빠른 템포로 추는 춤인 찰스턴이 유행하기도 한다. <시카고>의 넘버가 모두 재즈풍인 것 역시 당대 유행을 반영한 셈이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와 발전한 대중문화가 마음까지 채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은 전쟁의 후유증인 허무주의와 공허함으로부터 도망쳐 지금 당장 열광할 수 있는 자극을 찾아 헤맸다. 비슷한 시기 일회용 면도기와 자동판매기, 인스턴트커피가 대중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미국이 추구하던 가치가 무엇이었으며 그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Roxie: 스타가 되는 꿈


 

ChicagoTour25th_8738_KatieFrieden Credit Jeremy Dnaiel.jpg

photo by JEREMY DANIEL

 

 

The name on everybody‘s lips

Is gonna be Roxie


The lady rakin' in the chips

Is gonna be Roxie


I'm gonna be a celebrity

That means somebody everyone knows

 

  

언론과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된 록시가 자아도취 속에서 부르는 넘버 ‘Roxie’는 록시가 가진 날것의 욕망을 보여준다. 모두가 부르게 될 이름, 돈을 긁어모으게 될 사람이 될 것이며 살인을 했지만 그것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가사는 백치미 뒤에 가려진 록시의 과시욕과 야심을 보여준다. 록시는 처음부터 보드빌 스타가 되기를 꿈꿨고, 수감자 신세로 재판을 앞두고도 그 꿈은 바뀌지 않는다. 

 

그 당시 스타의 꿈을 꾸는 게 록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920년대는 할리우드에서 스타 배우의 존재가 중요해지며 이른바 ‘스타시스템’이 등장해 정착해가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영화사들은 잠재력 있는 배우를 발굴해 스타로 만들고자 했고, 영화 산업은 그 스타를 담보로 굴러가곤 했다. 사람들은 유명 배우의 스타일을 모방했으며 ‘Roxie’ 의 가사처럼 그를 숭배했다. 스타의 자리에 선 배우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스타의 삶을 꿈꾸는 사람 역시 자연스레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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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스타 영화배우였던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

 

 

할리우드가 스타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철저한 계산하에 있었다. 영화사는 스타로 성장시킬 배우에게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이름을 붙이고,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해 말투에서부터 옷차림과 걷는 방식까지 거기에 맞추고자 했다. 공적인 영역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우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면 사적인 영역에 개입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스타시스템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동시에 <시카고>에서 록시가 빌리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과도 겹쳐 보인다.

 

외도를 하던 중 내연 관계이던 남자를 총으로 살해한 록시는 어떻게 봐도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록시는 빌리라는 탁월한 ‘연출가’를 만나 교도소의 스타로 거듭난다. 그는 록시의 출생부터 성장배경, 남자를 죽이게 된 상황까지 대중의 입맛에 맞게 바꾼다. 그렇게 탄생한 가련하고 비참한, 그러나 아름답고 순진한 여성 범죄자 록시는 자신의 바람대로 스타에 가까워진다. 내연 관계이던 남자가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충동적으로 벌인 살인으로 오히려 스타가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Razzle Dazzle: 엔터테인먼트가 된 범죄 


 

ChicagoTour25th_7044_JeffBrooks as Billy Flynn Credit Jeremy Daniel.jpg

photo by JEREMY DANIEL

 

 

Give ’em the old razzle dazzle

Razzle Dazzle ’em


Give ’em an act with lots of flash in it

And the reaction will be passionate


Give ’em the old hocus pocus

Bead and feather ’em


How can they see with sequins in their eyes?

What if your hinges all are rusting?

What if, in fact, you're just disgusting?


Razzle dazzle ’em

And they’ll never catch wise!

 

 

<시카고>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범죄가 또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된 현실이다. 무죄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사실관계보다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하고,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높은 수임료를 자랑하는 변호사 빌리는 이 분야의 전문가다. ‘We Both Reached For The Gun’에서 대중이 사랑하는 ‘가련한 록시’를 만드는 데 성공한 빌리의 역량은 ‘Razzle Dazzle’에서도 또 한 번 발휘된다.


빌리는 재판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록시에게 자신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패소할 리가 없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인다. 가장 신성해야 할 법정은 빌리의 노래와 함께 ‘Razzle Dazzle’, 즉 난잡하고 정신없는 한 편의 쇼 현장이 된다. 사전에 맞춘 대로 감정을 쏟아내며 자신의 가여운 처지를 호소하는 록시에게 배심원과 법정은 휘둘리고, 쇼는 빌리의 각본대로 흘러간다. 현실에서 쇼가 펼쳐지는 게 아니라 쇼가 곧 현실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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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마이애미 경찰서에서 촬영된 알 카포네(출처: Wikimedia Commons)

 

 

범죄가 또 하나의 가십거리로 전락한 데에는 금주법을 배경으로 세력을 키워간 갱들의 영향도 있다. 1919년 금주법이 시행되며 미국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제조하고 소유하는 것도 불법이 되자 갱에 뿌리를 둔 밀주업자들이 성행한다. 그 결과 미국 곳곳에서 갱 조직이 성장해 기세를 부리고 공권력과 맞먹는 힘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시카고는 당대 가장 악명 높던 마피아 두목인 알 카포네의 주 무대였으니, 1920년대 시카고에서 총성과 살인은 그렇게까지 낯선 것이 아니었음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언론도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광고시장 역시 커졌고, 신문은 광고를 위한 지면을 내어주며 점점 상업화된다. ‘타블로이드’라 불리는, 원래 신문보다 작은 크기에 사진 비중이 크고 가십과 사건 사고를 주로 다루는 신문이 인기를 끌었다. 독자를 확보해야 하는 신문사의 입장에서 각종 범죄 사건은 훌륭한 콘텐츠였을 것이다. 사건이 자극적일수록, 범죄자에게 사연이 있을수록 좋았다. <시카고>의 록시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범죄자였으리라.

 

*

 

<시카고>는 스타를 꿈꾸던 여자와 엔터테인먼트의 현장이 된 법정, 이를 부추기는 언론과 즐기는 대중이 만나 탄생한 한 편의 풍자극이다. 이 작품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크게 사랑받는 까닭은 공감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색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다음주 첫 공연을 앞둔 <시카고> 오리지널팀의 내한 공연은 이 작품에 담긴 정서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공연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5월 27일부터 8월 6일까지 열린다.

 

 

*공연사진 제공: 신시컴퍼니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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