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도 덕질할 수 있어요 -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

글 입력 2023.05.1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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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어렵다’라는 말이 편견이라는 사실은 진작에 깨우쳤지만, 그렇다고 클래식과의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지지는 않았다. 내가 클래식에 호기심을 느낀 가장 큰 요소는 클래식이 비언어적이라는 사실이었다. 평생을 언어에 천착해 세상을 이해하는 나에게 악기의 연주만으로 사상과 감정 등을 표현하는 클래식의 특징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문제는 내가 거리를 느끼는 요소 역시 클래식의 비언어적인 면이었다. 노래는 가사, 소설은 문장, 영화나 연극은 대사, 뮤지컬은 넘버. 언어는 내가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창구였다.

 

물론 모든 예술을 애써 이해할 필요는 없다. 느낌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나만의 해석으로 채워도 된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클래식이 너무 좋다. 악보에 그려진 음표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도, 똑같은 악보를 가지고 연주하면서도 연주자의 해석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공연이 완성되는 것도, 언어의 공백을 연주자(혹은 지휘자)의 해석과 청자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나는 좋아하면 그만큼 더 알고 싶은 사람이다. 그 대상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니까 이해하고 싶다. 나에게 클래식은 그런 존재다.

 

그렇다 보니 클래식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역시 언어는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창구고, 나보다 클래식을 잘 아는 이가 언어로써 그에 대해 해석한 것을 읽으면 클래식과 나 사이에 놓인 뿌연 안개가 걷히고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므로 타인의 해석이 온전히 와닿을 수는 없다. 그래도 배경지식이 쌓여 해석의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 내가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이라는 책에 기대한 역할도 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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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연주자를 알아가다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은 클래식 음반 칼럼니스트 최지환이 클래식 입문자와 애호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명곡 28곡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동안 접해 본 클래식 관련 책들은 대부분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등 유명 작곡가들 위주로 그들의 음악을 소개했었다. 이 책이 나에게 유독 흥미롭게 다가온 이유는 작곡가만큼이나 연주자들에 관한 내용도 자세하게 다뤄줬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오래 클래식을 좋아하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부분 좋아하는 특정 연주자가 있다. 좋아하는 작곡가에 따라 그 작곡가의 음악에 어울리는 연주자를 선호했다. 어떤 클래식 명곡이 있는지조차 겨우겨우 알아가는 단계인 내가 연주자의 스타일까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설령 어떤 차이를 느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어떤 차이인지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매번 ‘경쾌한 느낌’, ‘웅장한 느낌’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표현의 한계와 맞닥뜨려야 했고, 내가 느낀 차이가 맞는지도 의문스러웠다.

 

이 책은 하나의 클래식 명곡을 소개할 때마다 연주자가 음악을 해석한 방향과 연주자별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다. 거기에 해당 연주자가 당시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은 덤이다. 물론 저자의 해석도 주관적이다. 저자가 특정 연주에서 비애를 느꼈어도 나는 환희를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저자의 방대한 해설이 없었다면 내가 이만큼 클래식 연주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도 영화 평론가의 해설을 참고하는 것처럼 저자의 깊이 있는 분석 덕분에 클래식을 더욱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클래식을 더 폭넓게 즐기기 위해 같은 곡을 연주자별로 비교하며 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주 흥미로웠다. 모든 장의 끝부분에 삽입된 QR코드를 통해 연주 영상을 보며 정말 저자가 묘사한 그 느낌이 맞는지 고민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클래식, 재밌는 놀이가 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이 편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맘 편히 즐길 수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책이 제시되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반적으로 언어가 있는 시나 소설이 상황의 설명이나 감정을 전달하기에 가장 빠르고 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놀랍거나 슬프다는 감정을 표현할 때는 단어들이 가진 모호성 때문에 놀람과 슬픔의 형태와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오히려 미술과 음악을 통하면 어떤 종류의 놀람인지 얼마만큼의 슬픔인지가 더 잘 전달되기도 합니다.

 

-p. 188

 

 

그동안 언어가 세상을 명확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막상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진심이 언어에 다 담기지 않아 막막했던 순간도 많았다. 클래식이 비언어적 예술이라 이해하기 어렵다고 자주 말해왔는데, 그것도 나의 편견이었다. 오히려 비언어적이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감정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언어와 관련된 편견이 깨지자 클래식이 한층 더 친근해졌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소개하는 챕터도 흥미로웠다. 클래식 공연을 처음 들었을 때,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이 떠오르거나 졸음이 밀려오면 귀중한 공연 관람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다며 자책했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음악이 철저히 배경음악으로만 쓰이기를 원했던 에릭 사티의 신념이 몹시 파격적으로 들렸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고상하고 지적인 활동이라 그에 걸맞은 품격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음악은 법전처럼 이해하기보다는 시처럼 느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악을 들으며 꾸벅꾸벅 조는 것이 음악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럭셔리하게 음악을 즐기는 법입니다. 연주회에 가서 몸이 조금 피곤하다 느끼지만 밀려오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잠시 졸아보는 경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p. 202

 

 

생각해 보니 내가 클래식을 더 자주 찾게 된 이유도 클래식 음악이 책 읽을 때 배경음악으로 활용하기 유용해서였다. 일상생활에서 음원으로 들을 때는 맘 편하게 즐기곤 했지만, 오히려 공연장에 가면 그에 맞는 예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경직된 태도로 클래식의 진짜 즐거움을 놓치기 마련이었다. 클래식을 어렵게 만든 건 어려워하는 나의 태도였다.

 

클래식을 더욱 친근하게 만들어 준 또 하나의 챕터가 있다. 저자 최지환이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집을 읽고 작가가 보스턴에서 들은 하이든 교향곡이 정확히 어떤 곡인지 맞히기 위해 고군분투한 일화가 담겨 있었다. 저자의 집요한 추리를 보며 ‘이게 바로 저자의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방식이구나.’ 생각이 들어 재밌었다. 대상이 무엇이든 열과 성을 다해 좋아하는 이를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흐뭇하다. 그 일화가 소개되고 나의 마음을 읽은 것만 같은 내용이 이어졌다.

 

 

클래식은 어렵고 지루하고 졸린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클래식으로 놀기를 접해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수필에 등장하는 보스턴 클래식이 연주한 교향곡을 찾던 날 우리는 노 수필가의 추억을 따라 다녀보기도 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풋풋한 짝사랑을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찾은 범인이 확실하다고 우기면서 진지하지만 유쾌하고 따뜻한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들의 주장 중 맞는 답이 있고 틀린 답도 있었지요. 그러나 각자가 주장하는 이유와 감동 포인트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분명 클래식에 더 가까워졌을 겁니다.

 

-p.292

 

 

저자는 독자들이 즐길 여지를 남겨두었다. 정답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책에 삽입된 QR 코드로 하이든 교향곡을 들으며 무엇이 맞을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영화, 아이돌,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한다고 말해왔지만, 이상하게 클래식만은 ‘관심이 생겼다’. ‘자주 듣는다’라는 식으로 완곡하게 표현하게 되었다. 굳이 다른 분야와 구분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클래식, 분명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이 책을 재밌게 읽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2주간의 콩쿠르 경연을 묘사한 온다 리쿠의 장편 소설 <꿀벌과 천둥>이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피아노 유망주들이 콩쿠르가 진행되는 동안 클래식과 소통하는 과정을 자극적인 사건 없이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묘사한다. 

 

클래식과 소설은 언어라는 기준에서 보면 정반대에 위치한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클래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의 섬세한 묘사는 음악이 언어가 되는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을 보며 <꿀벌과 천둥>을 떠올렸다는 것은 이 책이 내게 <꿀벌과 천둥>처럼 클래식에 대한 애정이 샘솟게 했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이보다 알맞은 제목이 더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을 때만큼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이 없었다. 책에 소개된 모든 명곡이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얼마 남지 않은 봄을 이 노래를 들으며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순간을 클래식과 함께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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