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알의 약 뒤에 숨겨진 치열한 고민 - 분자 조각가들 [도서]

글 입력 2023.05.12 13: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네? 뭐를 조각하신다고요? 책 제목을 읽자마자 분명 내가 급하게 스크롤 내리다가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아는 조각가조차 없고 명칭도 낯설게 느껴지는 나에게 '분자 조각가'라는 말이 한 번에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이 책의 저자 백승만 약학대학 교수는 자신을 '분자 조각가'라고 소개한다. 책에서 말하는 분자 조각가는 약을 만드는 화학자다. 보통은 의약화학자(medicinal chemist)라고 부른다.


화학자. 구체적으로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작가는 화학자들은 화합물을 조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기존에 주어진 물질 구조에 적당한 화학반응을 수행하여 원하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질은 적당한 단백질에 결합하여 단백질의 활성을 떨어뜨리고, 약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의약화학의 본질이다. 의약화학자들은 우연으로, 자연에서, 합리적인 설계를 통하는 등 여러 가지 경로로 약을 개발한다.


그는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인 것이다. 이 책은 새로운 약이 창조되는 과정을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러 상세하게 소개한다. 6장으로 구성된 글 속에는 당연하게도 화학 용어들이 등장한다. 나열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그 이름들은 독자에 따라 책을 계속하여 읽어 내려가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관련 전공자들이 관심 있게 볼 전문적인 지식 전달은 기본적으로 뛰어난데, 비전공자들도 접근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해놓았다. 역시 <어쩌다 어른>에서 강의하고, 약의 역사를 다루는 인기 교양 강의를 진행하는 강의 실력자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먼저 2023년 신작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최근 키워드가 사용되어 읽으면서 반가운 웃음이 터진다. 예를 들면 '구글 번역도 chatGPT도 없던 1940년대'라는 표현이다.


앞에서 어려운 표현들에 기죽어 알아보지 못했던, 혹은 저자가 뒤로 갈수록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보이기 시작하는 유머들도 있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사람과 핸드폰처럼 심각하게 다른 존재다.' '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바이러스를 보면 본능적으로 죽이고 싶어 한다. 그냥 길 가다가도 바이러스 비슷하게 생긴 문양을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사실 좋은 용도로 쓰이는 바이러스도 많건만 그냥 그렇다.' 잠시 웃을 수 있다.

 

 

분자 조각가들_표지.jpg


 

① 우리가 처방받는 약은 여러 사람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느낀 부분은 하나의 약이 완성되는데 어마하고 유능한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약을 처방받던 과거의 나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의 빗장을 연 것 같았다. 약이 개발되는데 필요한 인력으로는 먼저 앞서 소개하고 이 책의 저자가 속한 화학자(유기화학, 의약화학 등 화학 안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협업하지만 크게 '화학'으로만 작성하겠다)와 생물학자가 있다. 


약은 화학적인 성격이 강해서 인지하지 못했는데 책을 읽으면 생물학자의 역할도 중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확히 말하면 약은 크게 합성 의약품과 생물 의약품(바이오 의약품)으로 나뉘기 때문에 생물학이 주로 요구되는 약 개발도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역은 화학자들이 열심히 조각해서 만든 물질인 합성 의약품이다. 하지만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시작으로 약을 개발하는 경우에 생물학자의 역할도 크다.


책에서 핵심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몹시 중요한 존재들이 있다. 그들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더 조심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환자이다. '지금은 기전부터 연구하고 이 기전을 조절할 수 있는 약을 만드는 게 정석인데, 100년 전에 그런 게 어디 있었겠는가. (...) 일단 만들어 놓은 다음에, 적당히 안전하고 효과가 있으면 약으로 팔고, 그러다 사람이 죽으면 회수하는 것이 의약품 개발의 평범한 사이클이던 때였다. 지금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시스템이지만 그때는 달랐다.'


자연에서 사람에게 도움되는 물질을 발견하더라도 실제로 사람에게 처방할 수 있는 약으로 개발하는 과정에는 많은 데이터들이 필요하다. 고대부터 전해진 약들로 초기 물질로 개발된 약은 사람에게 투여한 경험이 있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대상에게 어떤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을지 모두 확인한 후 처방하기 어렵기 때문에 '탈리도마이드'와 같은 큰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scientist-g3fa29fbc1_1280.jpg

 

 

 

② 자연은 위대하다



과학자들의 질병에 효과 있는 물질을 찾는 노력과 분자식을 파악하고, 순수 화학물질로 파악한 분자식의 물질을 생성하는 연구과정에 감탄했다.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타이레놀 개발의 계기가 되었던 '세렌디피티' 소식에 같이 환호했다. 사람들의 업적에 감탄하던 나는 점차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사람이 살아있는 생물들 중에 유일하게 '조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가 도움을 받는 건 다른 자연물이다.


사람이 아무리 정밀하게 염증과 통증을 줄이도록 분자를 조각한들 한계가 존재한다. 화합물은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자연을 거스르는 건 몹시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사람에게 투여된 약은 고지식할 정도로 공정하게 의도치 않은 정상적인 단백질에 작동하고 결합한다. 우주여행도 가능한 2023년에도 여전히 원하는 부위에 약을 보내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대하며 무서운 자연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자연에서 추출한 물질로 약을 만들기도 한다. 활성이 좋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복용해오며 독성 문제도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대량으로 약을 생산하는데 추출물을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천연물의 구조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복잡한 구조의 물질들이 많다. 특히 바다 깊은 곳에서 서식하는 해조류에서 추출되는 물질들이 그렇다. 자연은 어떻게 복잡한 구조로 물질을 생성하는 것인지 경이로움을 느낀다. 


약초에서 신약의 성분을 얻기도 하는데 생각해보면 어떻게 식물은 약효를 지닌 물질을 만들어내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작가는 식물의 면역체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데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독성 화합물을 다량 배치한 식물의 생존 전략이 사람의 질병에도 효과적이다. 식물에서 치료의 가능성을 발견한 부분 중에 '탁솔'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는데 '거의 탁솔'이라는 표현을 등장시켜 비전공자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작가의 시도가 기억에 남는다.

 

 

pharmacy-g1f25ad955_1280.jpg

 

 

 

③ 사람 일은 다 비슷하다



과학자를 떠올리면 세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이미지가 있다. 의약화학자는 '약'과 관련된 실용적인 위치지만 다른 과학자들도 현실에 닿아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작가가 연금술을 이야기하며 '싼 것을 비싼 것으로 바꾸는 일, 즉 가치를 창조하는 일은 언제나 모든 직업의 기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약 개발 전방에 나와 있는 과학자들에게도 가치 창조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그들도 사람이다.


이들이 사람을 살리는 약을 개발하기 때문에 비상한 존재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채 우선 도전하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A. 빌헬름 호프만이 윌리엄 퍼킨에게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을 합성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했을 리가 없다. 처음에는 잘 몰라도 하면서 알게 되는 건 전 세계를 주름잡는 화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살면서 한순간도 의약화학자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알지 못했던 마음을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1장에서 4장까지가 의약의 역사를 주로 다루었다면 5장과 6장은 현재를 이야기한다. 작가도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분자 조각가이기 때문에 현재를 다뤄지는 뒷부분에서 그의 솔직함과 흥분을 느낄 수 있다. 물질의 최종 구조를 효율적으로 합성하기 위해서는 합성 단계가 짧아야 한다고 한다. 

 

앞 장들에서도 단계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이미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렇구나'하면서 읽어내려가다가, 다음 문장에서 그가 합성 단계를 줄이고 싶은 확실한 마음이 전해졌다. '화학자들도 합성 단계가 길어져서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렇게 비용이 늘어나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그러면 안 팔린다. 간단한 진리다. 비싸면 안 산다.' 약을 개발하는 것만큼 파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pills-ge57a7d1c2_1280.jpg

 

 

책을 시작하기 전, 학창시절 과학을 좋아하고 관련 활동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나는 기대하는 마음과 과학 용어와 멀어진지 오래되었기에 읽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결론적으로 두 마음 모두 맞았다. 분자식을 그림으로 표현해줘서 간신히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용어들이 어려우니 책이 생각보다 더디게 넘어갔다. 사용하는 언어에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감안하고 읽어야 하는 부분이다.


기대했던 만큼 생생하게 과학 이모저모를 알게 되었다는 수확도 분명 존재한다. 살면서 한 번쯤 궁금증을 품었거나 전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부담스럽지 않고 유려한 문체로 들을 수 있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백승만 교수처럼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저자가 아니었으면 끝까지 읽기를 포기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어려운 전문 지식을 가볍지만은 않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풀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며 얻은 과학 이모저모 몇 가지를 소개하며 마친다. 전문적인 책을 읽었으니 이제 사람들에게 내가 책을 통해 배운 것을 자랑할 시간이다. 생물학, 화학, 의약학 전공생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고 감상을 남길지 궁금한 마음이 든다. 

 

 

37쪽 | 독일의 화학자들은 출발 물질의 조성이나 첨가제를 조금만 바꾼다면 다른 색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 이들 회사는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는 거대 화학회사이자 제약회사이다. 현대 화학기업의 출발은 대부분 염료 회사였다.


117쪽 |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암이라는 질병은 특이하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세포가 분열하고 조직으로 분화하여 알맞은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암세포는 오로지 분열만 한다. 분열하고 증식하면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으므로 우리 몸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고 각종 에너지를 모조리 빼앗아가며 결국은 죽게 만든다.

 

 

[정서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3.12.0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3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