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중한 건 재활용이 안 돼요! – 유리별 프로젝트 [공연]

연극 [유리별 프로젝트]와 함께하면...
글 입력 2023.05.1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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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각보다 예민한 동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동체 내 구성원의 표정, 눈짓, 행동 하나하나 신경 써야만 한다. 흔히 말해 ‘눈치'라는 것을 기를 정도로 우린 예민한 동물인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런 예민한 사람들이 천 만명 넘게 모여 살며 우리는 그곳을 도시라 부른다. <유리별 프로젝트>는 과밀화된 도시 속에서 심리에 금 간 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극중 인물 ‘김요한’은 약과 술에 찌든 불행한 사람이다. 그는 과거 동생에게 행복을 저장하라고 무심코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몇 년 후 그가 동생과 다시 만났을 때, 동생은 수많은 유리병에 작고 소소한 행복을 담아 그것을 유리별이라 부르고 있었다.그는 동생에게 받은 유리별을 통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러나 직면해야만 하는 과거를 마주하게 된다. 연극 <유리별 프로젝트>는 ‘외로움’이라는 주제에 주목해온 작/연출가 김우림이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느꼈던 감정을 담아 만든 작품이다. <유리별 프로젝트>는 지난해 10월 연희예술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오는 5월 여행자극장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에게 찾아간다.

 

 

 

# 소중한 것을 지키기에는 버거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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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고 싶다면 어떤 행동으로 그 욕구가 표방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우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돈을 투자할 것이다. 사람이라면 먹을 것을 사줄 것이고 사물이라면 깔끔하게 관리하기 위한 물질적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말을 해줄 것이다. “넌 참 예쁘고, 아름답고, 나에게 힘을 주는 존재야”라고 말이다.

 

가 연극에서 형과 같이 만든 유리별을 소중히 여기는 바울이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많이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얘기했다. 사람들에게 유리별을 만들어 보라고, 그리고 유리별 안에 담긴 다양한 소리들을 들려주었다. 그 안에 담긴 추억들은 참 따뜻했다. 우연히 들린 가게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는 향기, 엄마와 같이 춤을 춘 행복한 기억, 형이 처음으로 독립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 그리고 형과 엄마와 함께 여행을 갔던...즐거운 기억. 마지막 기억을 형에게 들려주자. 형 요한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너의 유리별은 소중할지 몰라도 나에겐 아니야”라고 외치며 방을 뛰쳐나간다.

 

연극 유리별 프로젝트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화 작가인 형 요한과 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그의 동생 바울. 그리고 요한의 여자친구 주미와 그녀를 짝사랑하지만 곁에서 지켜만 보았던 자욱. 이 네 명의 간절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극은 흐름에 따라 이동한다. 가장 주목할 점은 바로 ‘유리별’이다.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아무 유리병만 있으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유리별을 만들 수 있다. 시작은 간단하다. 혹시 살아가면서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는가? 바로 그 순간을 유리병 속에 저장하고 담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담을 수 있냐고, 그런 질문은 연극 속 바울이에게 직접 하는 것이 좋겠다. 유리별을 만드는 데 도사이기 때문이다.

 

‘유리별’은 놀라운 효과가 있다. 마약 중독자인 요한이에게 마약 없이도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바울이 돌아가신 엄마를 보고 싶을 때 유리별을 꺼내어 마주 볼 수 있다. 주미와 자욱이에게는 이 유리별이 또 다른 마약처럼 보이지만 요한과 바울은 안다. 이 유리별이 그들의 불행하고 어두운 삶을 유일하게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장치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유리별만으로 그들의 세상을 밝게 만들긴 쉽지 않다. 요한은 이미 마약에 중독돼 일상생활을 피폐하게 살아가고, 그런 형으로 인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혼자 상주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바울이의 삶을 보며 아직 세상은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요소가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관객에게 알려주는 듯했다.

 

또한 유리별 안에 담긴 추억이 똑같을지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연극에서는 똑같은 유리별이 바울과 요한에게 다른 세상을 선사함을 보여준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간 가족여행이 바울이에게는 즐거운 가족 여행으로 기억되었지만, 요한이에게는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끔찍한 자살여행으로 기억되듯이 말이다. 그런 기억이 어떻게 요한이에게 소중하게 기억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요한이는 그 병을 깨뜨리지 않았다. 너무나도 깨고 싶은 추억이지만 그도 사실은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 자체를 영원히 깨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소중한 건 그대로 소중하게 남아있지만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삶의 밝은 조각이 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했다.

 

슬프다. 아직도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없다는 것이. 요한의 여자친구 주미 또한 갑작스럽게 생긴 병을 이겨내려고 하지 않고 담담히 죽음으로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 소중한 그들의 생명을 이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그녀 또한 소중함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기엔 이 현실이 너무나도 벅찼을 것이다. 약에 중독된 남자친구와 자신을 무시하는 상사 가운데, 그녀가 가진 소중함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의 친구인 자욱 또한 그녀의 생각을 바꾸려고만 했다. 그의 생각 내에서 말이다. 주미, 요한, 자욱, 바울 그리고 어머니까지. 사람은 존재하기에 소중하다. 쉽게 버릴 수 있고, 넘길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자신을 쉽게 버리는지 연극을 통해 시사한 것 같아 마음속 한 부분이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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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감상하기 전, 티켓을 나누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그 티켓은 종이가 아닌 한 유리병이었다. 이곳에 무엇을 담아야 할까. 연극을 보기 전부터 고민했다. 내가 느낀 감정을 담을까. 배우들의 대사를 담을까. 아님 연극 무대에 흘러내리는 저 모래를 담아야 할까. 연극을 다 감상하고 난 뒤 생각했다. “난 내 유리병에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을 담아야지”라고 말이다.

 

소중한 것은 재활용 불가이다. 버린다고 다시 나에게 다른 형태로 되돌아거나 회복되지 않는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알고 그 무언가를 잡는다면 절대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을 것이며 내 인생에서 어두움이 찾아올 때마다 금방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소중한 것조차 뒤로 미루지 말자.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소중한 것도 미루게 되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겠는가. 요한과 바울이의 끝엔 소중한 ‘유리별’들만 남아있길 간절히 바란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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