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전쟁처럼 치열한 삶, 잃지 않아야 하는 인간다움 - 뮤지컬 98퍼센트

글 입력 2023.05.09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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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퍼센트] 메인 포스터.jpg

 

 

<98퍼센트>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상을 구원할 완벽한 존재를 찾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뮤지컬이다. 크고 작은 폭동과 전쟁으로 평범한 일상이 사라진 어느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을 끝낼 특별한 존재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쏟아부은 과학자 ‘주피터’는 누구보다 우월한 힘을 가진 ‘엑스’를 만들어낸다. 큰 기대를 받으며 엑스의 최종 승인 테스트가 시작되지만, 엑스가 알 수 없는 잔상을 보며 테스트는 실패하게 된다. 연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주피터를 본부로 데리고 가기 위해 군인 ‘이든’이 연구소에 찾아오게 되는데…

 

잔상의 진실을 파헤쳐 완벽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엑스’, 더이상 소중한 존재를 잃고 싶지 않은 ‘이든’, 치열한 연구의 성공적인 결말을 갈망하는 ‘주피터’. 각자의 것을 지키기 위해 달려나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잔상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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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무대 위,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와 깜빡이는 조명이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묘한 긴장감을 느낄 때쯤, 한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과학자 '주피터'다.

 

주피터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적을 무찌르고 전쟁을 끝낼 새로운 존재 '엑스'가 완성도 98퍼센트에 다다랐지만, 최종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2퍼센트에서 실패의 연속을 거듭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약한 인간을 대신할 엑스가 하루빨리 완성돼야 할 시점에서 답답함은 도통 풀리지 않는다.

 

고민이 이어지는 동안 전쟁은 점점 악화되고, 연구소마저 폭격당할 위기에 놓인다. 정부는 주피터에게 엑스를 포함한 연구소의 모든 데이터를 파기하고 3일 이내에 본부로 집결할 것을 명령한다.

 

정부의 명령을 받고 오랜 시간 주피터와 친동생처럼 지내온 군인 이든은 외부의 상황을 뚫고 연구소로 찾아온다. 그 과정에서 안전한 본부로 대피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이든과 연구소를 지키겠다는 주피터의 의견은 대립하고,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폭격 소리와 함께 격렬해지는 둘의 몸싸움은 마치 혼돈의 시대를 마주한 인간들의 몸부림 같았다. 나약한 인간들이 각자의 사명감을 가진 채 살아내기 위해 요동치는 몸짓처럼 보였다. 현실감 있는 액션과 씬의 끝에서 시작되는 넘버는 극의 흐름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치로 자연스러운 몰입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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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98퍼센트> 무대 | 출처 = 공식 인스타그램

 

 

한편, 주피터의 창조물 '엑스'는 어두운 연구실에서 깨어나 지난 일을 상기한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 자신이 보았던 공통된 잔상을 따라가 보지만 기억은 중간에서 끊기고 만다. 잔상을 떠올리면 알 수 없는 이명이 들려 귀를 막고 괴로워한다. 그 잔상은 무엇이었을까, 답을 찾지 못하자 엑스는 혼란해진 틈을 타 연구실에서 탈출한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엑스는 이든을 마주친다. 쫓고 쫓기는 시간 속, 엑스는 풀리지 않던 잔상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실마리를 풀어나가면서 예상치도 못한 진실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실험의 실패 요인으로만 생각됐던 '잔상'은 사실, 극의 전체적인 흐름과 메시지와 맞닿아 있었다.

 

그렇기에, 잔상의 실마리는 엑스뿐만 아니라 관객인 나 역시 풀어나가야만 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봤어"

 

쫓고 쫓기는 시간 속에서 엑스와 이든은 거대한 폭격을 맞닥뜨리고, 잠시 휴전상태를 갖게 된다. 폭격을 피하기 위해 다다른 한 장소에서 엑스는 잔상에서 마주한 이미지를 두 눈으로 보게 된다.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 잔상에서 그가 마주했던 모습이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봤어"

 

잔상의 모습이 뚜렷해지면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던 이명도 서서히 선명해진다. 그 모습과 이명 속에서 들리던 대화를 천천히 읊조린다. 자신이 서 있는 장소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엑스의 읊조림이 시작되자, 이든의 얼굴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뒤섞인다. 그리고선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왜 당신에게서 나의 어린 시절이 보이는지, 엑스의 실마리가 풀림과 동시에 이든은 혼란스러워진다.

 

무엇이든 접을 수 있는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던 기억, 그 기억을 심어준 나의 형 에버. 하지만 지금은 세상에 없는 형의 기억을 엑스가 가지고 있다니,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든은 그 순간 형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누군가 집 문을 쉴 새 없이 두드리고, 에버는 안전한 옷장에서 절대 나오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건넸다. 옷장 속은 괜찮다고, 안전하게 너를 지켜줄 거라고. 그게 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형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부르는 넘버 '술래잡기'는 이든의 슬픔과 형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담겨있다. "숨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형을 떠나보낸 후 깊게 자리한 죄책감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할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 98퍼센트, 그리고 나머지 2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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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답답함을 안고 이든은 연구실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주피터가 지난 15년간 써왔던 연구일지를 읽게 된다. 그리고 주피터가 사명감이 아닌, 잔혹한 생체실험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든의 떨리는 목소리, 믿기 힘든 표정과 안절부절못하며 연구일지를 읽어 내려가는 모습은 뮤지컬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 어두운 무대에서 지난 연구일지를 빠르게 넘기며 숨 가쁘게 읽는 이든의 목소리는 저절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는 전쟁을 끝내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연구에 몰두해 온, 형 에버의 연구 동료이자 형을 떠나보내고 자신을 친동생처럼 돌보아 주었던 주피터가 이런 짓을 해왔다는 것을 도저히 믿지 못한다. 심지어 생체실험의 피해자 중 한 명이 사랑하는 형 에버였고, 그의 심장이 엑스의 몸에 이식된 상태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면서, 이성을 잃게 된다.

 

이성을 잃었을 때, 주피터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이든에게 대항한다. 어느새 엑스도 연구실에 도착해 주피터에게 함께 맞서 싸운다. 한 인간의 잘못된 판단과 그로 인한 행동은 세상을 희망이 아닌, 절망으로 내몰고 있었다.

 

주피터는 그 순간에서도 야욕을 버리지 못한다. 98퍼센트에서 마지막 2퍼센트를 채우기 위해 이든에게 약물을 투입하고, 그를 죽이려 한다. 거짓된 삶에 눈이 멀어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주피터의 인생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다운 삶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의 악이 되어버린 한 사람의 허송세월이 두드러졌다. 씁쓸하기도, 안타깝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이 내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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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퍼센트>의 결말은 새드엔딩도, 해피엔딩도 아니다. 엔딩은 스스로가 느끼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극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 메시지는 '인간다움'을 키워드로 두고 있다. 극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극중 인물이 풀어내는 서사는 우리 모두의 삶과 맞닿아 있다.

 

주피터, 이든, 엑스의 갈등과 극복을 통해 우리는 인간다운 삶이 과연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찰하게 된다. 그 서사의 끝에는 '전쟁처럼 치열한 삶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말자'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무대에서 보여준 98퍼센트의 서사는 마지막 2퍼센트의 메시지를 향한 힘찬 내달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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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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