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정한 '우정', 좋은 '죽음' - 도서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재치 있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
글 입력 2023.05.0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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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기에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늙고 난 다음엔 어떻게 될까. 21세기인 지금도 아직 불멸을 막을 수 있는 묘약은 없기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죽음'이라고 하면 기쁨보다는 슬픔이라는 정서가 떠오른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기만 할 뿐, 깊게 사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 속 흘러가는 이야기들은 모두 '삶' 자체에 관한 것들이 더 많으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필자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크게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 친구들과 툭 터놓고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혼자서 꽤나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장송곡은 어떤 음악이 좋을지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한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으면, 후회가 남을 행동은 지양했으면,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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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면의 고민이 닿았을까, 때마침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만났다.

 

인상적이었고,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약간 울컥이는 감정이 일어 하마터면 카페에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유도라, 로즈 


  

똑같은 일상의 반복,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 재미없는 토크쇼 프로그램, 어딜 가나 성가시고 정신없는 사람들. 로즈가 유도라의 삶에 등장하기 전까지, 유도라의 세상은 흑백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멋지게 살아가는 85살 할머니처럼 보일지 몰라도, 유도라는 사실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삶으로부터의 영원한 자유. 자신을 속박하는 현실의 올가미를 벗어던질 수 있는 그런 '자유' 말이다. 그 자유는 곧 '조력 자살'을 의미한다.

 

그런 유도라의 앞에 어린 숙녀인 '로즈'가 등장한 이후로 그녀의 삶은 조금, 아니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로즈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수다쟁이 아가씨이자 귀여운 참견쟁이다. 처음부터 로즈가 유도라의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성가시고 시끄러운 옆집 이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직설적이고 솔직한 이 소녀는 꽤나 깊은 내면을 지녔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성숙했다. 로즈는 천진난만했지만 눈치가 빨랐고, 명랑하지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유도라와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로즈의 성격 덕분일 것이다.

 

책 속의 어린 인물에게 이토록 애정이 갔던 건 오랜만이라 로즈가 재잘거릴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유도라, 스탠리 


 

스탠리는 유도라와 같은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이다. 아내 에이다를 여의고 몇 마리의 개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우연치 않게 유도라에게 뜻밖의 도움을 주게 되고, 로즈의 제안에 차를 마시며 어느새 가까워지게 된다.

 

스탠리의 생일날, 개들과 산책을 나오지 않은 그의 상태를 로즈는 의아하게 여긴다. 집에 찾아가 보니, 에이다가 나오는 꿈을 꾼 그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로즈와 유도라는 그를 따뜻하고 재치 있는 언어로 위로해 준다. 어쩌면 유도라는 그때쯤 그의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키우던 고양이 몽고메리가 불운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유도라는 스탠리와 로즈에게 여행을 떠난다는 거짓말을 하고는 스위스로 떠나 생을 마감하려 했다. 하지만 어쩐지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스탠리는 유도라에게 터미널까지 데려다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유도라는 그 제안을 가까스로 받아들인다.

 

비행기를 타기 전 들른 카페에서, 스탠리는 유도라에게 질문한다. "왜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왜 우리를 밀어내는 거예요?" 미묘하게 달라진 유도라의 태도를 그가 모를 리 없었기 때문이다. 유도라는 그 질문을 받자마자 숨이 가빠 왔다.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이 왔다는 걸 깨달았기에.

 

유도라는 이제껏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토하듯이 꺼내놓는다.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듣던 스탠리는 말한다.

 

 
"어머니와 동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잖아요. 그 두 분의 삶에도, 그들이 삶을 어떻게 살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해서도 유도라 책임은 전혀 없어요."
 

 

유도라는 그 말을 듣고는 어린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왠지 머릿속에 그 모습이 그려져 더 울컥했다. 유도라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다는 걸, 그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의 삶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걸 독자인 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위로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 한 장면이었다.

 

스탠리의 위로에 내가 유도라가 된 듯 가슴속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 든 건 과연 착각일까?

 

 

 

'좋은 죽음'이란? 


 

책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이 하나 있다. "두렵다고 생각하는 걸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는 로즈의 말이었다. 어리다고 해서 생각이 얕다는 편견을 버려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이었다.

 

엄밀히 따져보자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고, 정말 황천길이 있는건지, 저승사자가 영혼을 어디론가 데려가는 건지 우리는 모른다. 그렇기에 죽음은 두려운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 것이다.

 

확실한 건 하나다. 죽음 그 자체가 두려울 수는 있어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과정 자체가 두려울 필요는 없다는 것. 생이 다할 때까지, 그저 무엇이라도 하며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는 게 산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만사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수록 삶은 무채색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다정함에 감사하는 게 인생이라는 흰 캔버스에 형형색색의 붓칠을 더해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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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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