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난 내가 더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지 [음악]

성인이 되고 노래를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글 입력 2023.04.2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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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렸을 때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지 않은가. ‘나는 커서 대단한 사람이 돼야지’라는 생각. 그리고 이 ‘대단함’의 기준은 위인전에 실린다던가, 내가 이룬 업적이 온 매스컴에 보도된다던가, 이것보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기본 SKY는 졸업하고 억대 연봉을 버는 직업을 갖는… 뭐 지금 생각했을 땐 다소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바람이 무조건 이루어질 거라는 어이없는 확신까지.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런 믿음을 상당히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어릴 때의 나는 꽤 맹랑한 학생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 소망의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끝내 이뤄내는 경우가 있고, 현실적인 관문에 가로막혀 그대로 좌절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완전히 후자인 편.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평가는 곤두박질쳤다. 세상에, 어떤 분야건 날고 기는 친구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그들에 비하면 나는 완전 대체품, 아니면 그보다 못한 존재였다. 나 한 명쯤 없다고 해서 세상은 딱히 큰일이 나지 않는다.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말이다.


갓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이 사실을 몸소 깨닫느라 마음고생을 자주 했다. 좀 더 단단해지기 시작한 것은 몇 년 후가 지나서였다. 뭐 지금도 가슴이 저린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강인한 사람이 됐다는 건 자부할 수 있다.


서론이 길어졌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것은, 한때 이런 좌절을 다독여 주었던 노래들. 그리고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위안과 이해, 깨달음을 주는 노래들을 공유하고 싶다. 크게 ‘청춘을 위한 노래들’이라고 여기고 감상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같은 감정을 느끼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체리필터 – Happy day


 

   

 

난 내가 말야 스무 살쯤엔

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고

어릴 땐 말야 모든 게

다 간단하다 믿었지

이제 나는 딸기향 해열제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징그러운 일상에 불을 지르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첫 소절부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쩜 과거에 했던 생각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대변하는 노래가 있나 싶었다.


이어서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내가 생각했던 체리필터의 노래 분위기와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체리필터’하면 바로 떠오르는 곡이 있었는데, 바로 ‘낭만고양이’와 ‘오리날다’였다.


체리필터는 상당히 동화 같은 소재를 사용했는데, 위 두 곡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또 다른 곡 ‘달빛소년’에도 알 수 있는 부분. 또한 주로 희망적인 가사나 그런 종류의 분위기를 유도한 곡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리날다와 낭만고양이는 물론이고 ‘피아니시모’에도 이러한 색깔이 보인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체리필터는 꿈을 실어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마치 애니메이션 오프닝 같은 밴드라는 이미지가 강했었다.


이에 비하면 Happy Day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씁쓸한 기분까지 든다. 선율은 밝은데 가사는 우울하다. 희망과 꿈에 대한 의지를 노래하는 아티스트라고만 여겼던 내게 이 곡은 꽤 충격적이고, 생소했다.


그래서일까, 소망을 꿈꾸는 가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지만, 이상하리만치 위안이 되었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공감되었다. 어릴 적 활기찬 멜로디와 낭만적인 가사로 환상을 심어주었던 아티스트가 동심적인 ‘딸기맛 해열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곡을 만든 건 내게 다소 어색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큰 공감과 애정을 가지도록 해주었다.


한창 불안한 시기였던 20살 때, 새벽에 이 곡을 들으면서 울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마 그 경험이 절망을 이겨내는 노래로 남게 해줬나 싶다. 우울을 배설하면 공허만이 남고, 그 공허함은 또 다른 무언가로 채우기를 원하니까. 그리고 나한테는 그게 ‘그래도 해야지’와 같은 의지였다.

 

 

 

자우림 – 이카루스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여름과 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줄 알았어

 


Happy day가 공감의 역할을 했다면, 이카루스는 내게 각성의 역할을 해주었던 노래다. 하늘을 날아보려고 했으나, 날개가 태양에 녹아 추락한 이카루스를 모티브로 한 곡인데, 이 소재를 통해서 청자로부터 격려와 투지를 북돋아 준다.


이카루스 역시 현실에 대한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다다라서는 곡의 양상이 다소 달라지는데,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자우림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듣는 이에게 경각심을 심어준다.


 

가만히 숨을 죽인 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자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

 


스무 살이 되어서도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삶은 전혀 드라마틱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도 않고, 축제와 같이 벅차오르지도 않고, 별들처럼 높은 곳에서 반짝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찬란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이 노래는 말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주어진다. 세상의 찬란함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이카루스와 같다면, 그렇다면 잠깐이나마 눈부시게 빛날 도약을 스스로 만들어 보라는 듯 일종의 결의를 하게끔 해준다.

 

 

 

자우림 – 팬이야


 


 

 

상대적으로 앞 두 곡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밝은 노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위안을 받았던 곡인데, 아마 스스로 자신의 팬이 된다는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게 크게 작용한 듯싶다.


 

내보일 것 하나 없는

나의 인생에도 용기는 필요해

지지 않고 매일 살아남아

내일 다시 걷기 위해서

 

 

I’m my fan

I’m mad about me

I love myself

매일 거울 안의 내게 말하곤 해

 


나에 대해 제일 큰 실망과 상심을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많은 애정과 기대를 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니.


그래서 내가 나의 팬이라는 말은 낯선 표현이면서도,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를 믿고, 언젠가 빛날 순간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면 된다. 좌절 후에는 기쁨이 찾아오므로. 행복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절망 역시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런 나를 스스로 응원하자. 나를 가장 열심히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열성 팬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니 말이다. 노래가 나에게 이렇게 전하는 것 같았다.

 

*


아직 내 청춘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 또다시 절망과 슬픔을 숱하게 겪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그 시기가 도래했을 때 분명 다시 흔들리고 불안해하고, 어쩌면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존재할 것이다.


그럴 때 다시 이 노래들을 찾아 듣고, 다시 삶에 대한 의지를 이어 나가고 또다시 단단해질 것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삶에서도 찬란함은 존재할 것이 분명하기에. 그리고 당장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도 분명히 나와 같은 경험을 가졌을 것이고, 또 반복할 것이다. 그럴 때 이 노래들이 당신에게 위안이 되어주길 바란다. 내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이 노래들이 당신의 절망을 조금이나마 감화시켜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부디 상처투성이인 청춘의 시기를 잘 버텨낼 수 있기를. 나도, 여러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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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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