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체 움직임과 연극이 만나면, [공연]

행위가 하나의 스토리 텔링이 될 때
글 입력 2023.04.2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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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씨어터 <보이첵>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수요일이었지만 나에게는 휴일이라는 특별한 날이었던 4월 12일, 공연을 보기 위해 1시간 20분간 발길을 옮겼다. 평소, 관객과 배우의 교류, 여러 장르의 결합, 활용하는 극을 좋아하여 기존 연극, 뮤지컬 외에도 피지컬 씨어터라는 극 형식에 관심도가 높았다. 마침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보이첵>의 마지막 공연이 나루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망설임 없이 예매했다.

 

공연을 관람하기 전, <보이첵>의 원작 전체를 읽기보다 시놉시스만 간단하게 파악하고 들어갔던지라 공연 정보와 함께 덧붙여 기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보이체크>는 독일의 극작가 게로그 뷔히너의 미완성 시민 비극으로, 무대공연 최초 자본주의 사회 속 귀족, 고위층이 아닌 무산계급이 주인공으로 작품을 이끈다. 2000년 초연으로 시작해 2023년까지 관객들에게 보이고 있는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보이첵>은 앞서 이야기한 원작을 기반으로 진행되지만, 구두 표현 방식보다 몸짓, 움직임을 중점으로 표현하는 피지컬 씨어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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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일등병 제2연대 2대대 4중대 소총수 프란츠 보이첵은 그의 연인 마리와 아이의 생계를 위해 의사의 실험에 자원하여 매일 완두 콩을 먹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받는 생활을 통해 돈을 받는다.

 

돈이 없어 식도 올리지 못한 보이첵이 자신의 몸을 시험체로 제공하며 돈을 버는 동안, 군악대장은 그의 연인 마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군악대장과 외도 사실을 알아챈 보이첵은 마리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다.


 


새로운 무대언어


 

보이첵이 공연에서 보여준 움직임 언어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일반적인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리는 발신자와 수신자 그 사이의 메세지를 매개함으로써 대화의 형식으로 보이는 상호작용을 이루고, 어떤 방식으로 메세지를 전달할 것인가 결정하는 채널과 피드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이루는 개념을 파악할 수 있다. 해당 개념을 기존의 연극에 대입해 볼 때, 우리는 배우 혹은 해설자 등 발신자의 메세지를 부호화된 언어적 표현으로 전달받는다.

 

이 과정에서 피지컬 씨어터는 움직임의 언어를 통해서도 관객이 극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보이첵의 경우, 비언어적 표현 (몸짓, 제스처, 표정)과 더불어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인 '의자'라는 사물을 활용해 극의 서사와 인물의 세밀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는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극의 모든 것을 구두로 설명해 주기보다, 움직임, 몸짓 등의 함축적, 압축적 의미로 관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피지컬 씨어터에 나타나는 몸짓 언어는 에크먼과 프리슨의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 대체 몸짓-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구체적 의미를 내포한 손가락, 손, 고갯짓, 몸의 움직임이다. 일상 속 경찰, 군인의 수신호와 신호등이 이에 해당한다. 명확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대체 몸짓은 설명 없이 그 의미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2) 설명 몸짓 - 언어적 표현의 부가적인 설명을 위해 행하는 몸짓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화가 났을 때 보이는 특징들이 설명 몸짓에 해당한다.


3) 조절 몸짓-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것에서 신체 긴장을 이완하는 것에 도움을 주는 움직임으로 목 긁기, 머리 끄덕임, 자세 바꾸기 등 다양한 몸짓이 이에 해당한다. 즉,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에 있어 필요한 도움을 주는 행위를 조절 몸짓이라고 일컫는다.


4) 감정 표현 몸짓- 느낌과 감정의 강도를 반영하는 행위로서, 육체적, 심리적 욕구 충족과 만족을 위한 몸짓이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보고 악수만 하는 것이 아닌 포옹을 하는 행위,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어떠한 사물이 가지고 있는 용도와 반대되는 행위로 볼펜을 입에 물거나, 부러뜨리는 등 부정적 감정 표현과 관련해 사용되기도 한다.


위 개념들은 보이첵의 장면 속에서 적용되어 나타나고 있다. 군악대장과 중대장의 손짓으로 보이첵이 안절부절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관계성을(대체 몸짓) 보여주고, 의자에 위태롭게 누워있는 보이첵의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배를 긁으며 자고 있는 중대장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상반된 모습을 더욱 부각시킨다(설명 몸짓). 


또, 보이첵이 마리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의자를 든 행위자들이 곧 살인도구로서 표현되고 있으며(조절 몸짓), 의자 속에 갇혀 누워있는 보이첵의 몸짓으로 그의 무력감을 나타낸다(감정 표현 몸짓). 이처럼 앞서 이야기한 몸짓언어의 개념을 <보이첵>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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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과 의자로 보여지는 스토리


 

개인적인 취향으로 피지컬 씨어터 <보이첵>은 고전 연극을 새로운 무대 언어, 오브제인 의자를 함께 활용한 점에서 가히 매력적이었다. 기존 원작의 줄거리를 알지 못한 채 관람했음에도, 보이첵의 감정 변화와 이야기의 전개를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었을뿐더러, 연극 내 의자의 상징성과 위치를 통해 인물들의 관계성, 지위, 계급 간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을 효과적으로 이루었다.


포스터와 공연정보에서 강조되었던 11개의 의자가 그 사물의 의미를 지키며 극의 주요 오브제로 작용하기보다, 해당 오브제의 활용이 극의 어떤 부분을 내포하고자 하였는지, 움직임과 결합되어 장면에 따라 의자를 해체하기도, 구조를 바꾸기도 하며 다른 사물로 변하는 것을 파악해 보는 재미 또한 존재했다.


화려한 무대장치도, 의상도 갖추어진 연극은 아니지만, 기존 고전 연극에 의자와 움직임의 활용, 빛의 연출이 결합된 보이첵의 강점들이<보이첵>만의 매력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비록, 마지막 공연까지 성황리에 마무리된 공연이지만, 얼마의 시간 후 다시 찾아오게 된다면, 피지컬 씨어터의 매력을 확인해 보길 바란다.


 

참고문헌- 양은숙 [피지컬 씨어터 작품에 나타난 몸짓언어 분석] (2016)

 

 

[윤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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