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림이라는 그릇에 담아낸 각자의 감상 - 내가 읽는 그림

글 입력 2023.04.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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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평소 그림과 관련된 무언가에는 늘 관심이 간다. '그림'이라는 단어만 봐도 달뜨는 기분이다. 그래서 쉼 없이 그림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는 모양이다. 이렇게라도 그림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 <내가 읽는 그림> 역시, 책으로나마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겠노라는 마음이었다. 그림이라고 하니까 막연하게 고전 회화를 다루는 책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쳐보니 그 안엔 현대의 그림들, 말 그대로 요즘 시대 화가들의 그림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라 이건? 오히려 좋아!

 

그간 내가 전시회 등을 통해 접했던 그림들은 대개 외국의 화가들의 것이었다. 국내로 초정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머나먼 서울로 향하곤 했었다. 그저 그림을 좋아하는, 애호가라 하기엔 많이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제공되는 콘텐츠를 즐기는 일뿐이었으니까.

 

따라서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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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읽는 그림>은 제목처럼, 각자가 그림을 읽는 방식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책의 저자가 여럿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선택한 몇 점의 그림과 각 그림에 따른 감상이 하나의 챕터를 이룬다. 따라서 마치 여러 갤러리의 북플렛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 질릴 틈이 없다.

 

저마다의 취향이 담긴 그림, 그리고 그 저자가 그림을 해석하는 방식을 방구석에서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꽤 짜릿한 경험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자극을 받을 때마다 너무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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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2019, 캔버스에 유화, 37.9 x 37.9 cm

 

 

위 그림은 정이지 작가의 <터미널>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소개한 사람은 양윤화 작가이다. 양 작가는 위 그림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그림을 그린 사람이 저 순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너무 잘 다가온다. 사실, 작가는 그 순간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기에 그림으로 그려낸 것일 것이다.

 

<터미널>이라는 작품명과 달리 그림 속에는 한 사람이 담배 비스름한 것을 물고 있는 장면이 담겨 있다. 아마 터미널 속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을 클로즈업한 것일 테다.

 

이 사람은 작가와 어떤 관계의 사람일까?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모호한 가운데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정보는 이 사람이 터미널에 있었다는 것.

 

아무래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같다.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타기 전,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눈빛을 보니, 영 좋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쓸쓸하고 공허한 눈빛은 초점마저 없다. 왠지 뭔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 이 사람의 옆모습은 어째서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양 작가가 말했듯 만일 그림이 작가가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라 한다면, 정 작가는 터미널을 지나가다 문득 담배를 물어든 사람을 발견했을 것이다. 어딘가 비어있는 옆얼굴에서 나름의 이야기를 상상했던 것은 아닐까? 그 순간의 감상을 잊고 싶지 않아 그림으로 옮겨 담은 것은 아니었을지. 혹은 자신의 감상을 공유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책 <내가 읽는 그림>에서 소개하는 그림들은 대개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도 그림을 매개로 어떠한 일면을 담아낸다. 그 일면은 직접 본 것이기도, 생각이기도, 나아가 상상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해낸 그림이 실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것. 진정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도슨트와 작가의 시선만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다.

 

아직 아마추어 감상자인 나에게는 꽤나 어려운 미션이지만, 이제는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나만의 감상을 담아내는 연습을 해보겠노라 다짐한다. 그동안 어렵고 귀찮다는 이유로 도슨트 선생님들 뒤만 졸졸 쫓아다녔는데, 독립을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무리 추상적인 그림이라도 그 안에 나름의 감상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았으니.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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