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에 이름이 없도록 – 클로즈 [영화]

오늘도 전달되지 못한 마음들을 위해
글 입력 2023.04.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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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작품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정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해결될 수 없는 삶의 절대 난제인 것처럼 두 문장은 끝없이 우리를 심문한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협소한 인식을 보여주는 말이라 코웃음을 치지만, 그것을 마냥 무시하고 행동할 수 있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말은 굉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도 잘 모르는 어린이일 때 우리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누구든 팔짱을 끼고 손을 잡으며 길을 걷고, 실없는 장난을 치며 웃음을 주고받고, 서로의 볼과 입술에 조그만 입맞춤을 한다. 활기차게 놀다가 서로를 베개 삼아 낮잠을 자고, 끌어오르는 마음에 서로를 부둥켜안기도 한다. 대상과 방식에 막힘이 없던 마음은 점차 이름을 얻으며 제약을 받는다, 


많은 경우 이름은 성별에 따라 지어진다. 흔히 같은 성별이라고 생각되는 아이들의 마음엔 우정이라는 이름이, 다른 성별이라고 생각되는 아이들의 마음엔 사랑이라는 이름이 주어진다. 우정과 사랑엔 각각 다른 함의가 얽혀있다. 아무 가치 없이 동일했던 마음은 이름이 부여되면서 어느새 상이한 의미와 효과를 갖게 된다. 그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할 행동, 갖지 말아야 할 마음들이 늘어간다. 동의 없이 붙여진 이름들에 외면하고 억눌러야 했던 마음을 우리는 다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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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는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나 잡음 속에 부정당했던 마음들을 눈앞에 꺼내놓는다. 그리고 묻는다. 복잡한 이름 뒤에 감추어진 당신의 깨끗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레오와 레미는 어릴 때부터 같이 성장하며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사이다. 오직 서로만이 존재했을 때 그들은 수없는 마음을 가감 없이 나누며 주위를 꽃으로 물들일 수 있었다. 그들이 뿌린 마음의 씨앗을 서술해본다.


둘만이 참여하는 유치한 역할 놀이에 흠뻑 몰입하는 마음. 서툰 악기 연주를 기꺼이 들려주고, 들어주는 마음. 우스꽝스럽게라도 내 눈에 비친 모습을 그려주고 싶은 마음. 잠 못 이루는 이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 편안한 잠을 위해 고요한 숨을 붙여주는 마음. 살을 맞대고 싶은 마음. 상대의 배에 머리를 베고 가벼운 낮잠에 들고 싶은 마음. 같은 침대에서 서로의 존재에 기대 잠들고 싶은 마음. 미워도 끝내 자존심을 내려놓는 마음.


서로를 향한 막힘없는 응시와 웃음만이 존재했던 그들의 마음은 이름을 얻기 시작한 순간부터 상실되기 시작한다. 누구는 그들의 마음을 ‘호모’라고 불렀다. 사랑, 그중에서도 동성 간의 사랑을 뜻하는 호모라는 이름에 레오는 자기 마음을 처음으로 의심한다. 호모에 담긴 경멸의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그는 한 번도 자기 마음을 사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그의 마음은 사랑이란 아름다운 언어조차 어울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사랑의 의미가 지나치게 협소한 것일지도.


이게 사랑일까? 사랑이라고 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레미를 사랑해도 될까? 동성을 사랑해도 될까? 의심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폭력이 된다. 그렇게 그들의 꽃밭은 생기를 잃는다. 


레미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여전히 좋으면서도 사랑과 호모란 이름 앞에 그를 밀어낼 수밖에 없는 레오. 본인도 알 수 없고, 레미도 알 수 없는 마음의 꼬리표에 혼란은 늘어난다. 서로를 향한 응시와 웃음 사이엔 굳게 닫힌 문이 드리운다.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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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와 레미를 보며 그들처럼 혼란 속에 갇혀 있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한껏 안고 싶고 어깨동무하고 싶었던 다른 성별의 친구, 팔짱을 끼고 머리를 맞대고 얼굴을 부비고 멋쩍은 애정을 전하고 싶었던 같은 성별의 친구, 사랑도 우정도 아닌 깊은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다른 성별의 친구, 안온한 재미로 동거까지 하고 싶었던 다른 성별의 친구. 존재와 존재로서 나누고 싶었던 많은 마음들은 무참히 여과되었다. 전하지 못한 마음에 우린 얼마나 많은 서로를 잃었을까. 


이것이 한 시절 놓쳐버린 안타까움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흔들리는 거대한 사건이 된다. 사랑이란 이름을 얻어도 누군가의 사랑은 부정당한다. 존재해서는 안 될 불순한 마음이 된다. 있어서는 안 될 불순한 존재가 된다. 


정말 그러한가. 


사랑, 우정,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범성애 등의 이름은 우리 마음에 다양한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준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저마다의 결을 인식하는 확장적인 태도이지만, 마음의 투명함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점에서 동시에 제한적이다. 이름의 가치를 잘 알고 있지만 이제부턴 그 너머의 마음을 온전하게 포착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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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와 레미가 서로를 안고 싶은 마음은 레오의 형이 레오를 안아주는 마음과 다를 게 없다. 레오의 엄마가 레오를 안아주는 마음과 다를 게 없다. 레미의 엄마가 레오를 안아주는 마음과 다를 게 없다. 그 어떤 마음과 다르지 않다. 마음의 본질을 어렴풋이 알게 된 레오는 그제야 시들어진 꽃밭에 새로운 모종을 심을 수 있게 된다.  


레오와 레미의 마음을 사랑이라고 볼 것인가 우정이라고 볼 것인가. 이제 그 구분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오히려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본질은 같으므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마음이므로.

 

젠더를 중점으로 바라보았지만, <클로즈>는 단순히 젠더만을 논하는 퀴어 영화도, 사랑 영화도, 가족 영화도 아니다. 결국 우리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여러 '마음들'에 대한 영화다. 이를 보며 어지러운 잡음 속 드러내지 못한 마음을 환히 빛내 보길, 용기 내어 표현할 수 있길 바란다. 무엇보다 마주한 그 마음들을 투명하게 받아주시길. 


전하지 못한 마음은 그 끝을 후회로 물들일 뿐이니까. 


보통의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보통의 존재들에게 용기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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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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