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래를 올려다보는 사람 [사람]

작음을 담당한다는 것
글 입력 2023.04.1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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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키가 작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포츠물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내가 키가 작기 때문이다.


키가 작은 사람으로 사는 건 사실 살 만 하다. 옷을 살 때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갇혀 있어야 할 때 정도만 빼면 매일매일이 그렇게 엄청나게 절망적이지는 않다. 나의 키는 152센티미터. 어쩌면 151.x일지도 모른다. 사실 정확히 알 필요가 없는 것이, 대외적으로는 150cm라고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굳이 1-2cm를 늘려서 작은 키에 열등감을 느끼는, 그런 것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내 키를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 이후로는 너 키 진짜 작다, 하는 말도 거의 들어본 적 없다. 아마도 그게 예의이기 때문일 것이다.


키가 작다는 건 평생을 옷이나 신발 따위에 신경쓰도록 자라난다는 말과 같다. 키높이 구두, 다리가 길어 보이는 바지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노력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곁에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아직도 친구들과 바짝 붙어 서면 우리가 이렇게 눈높이가 차이났었나, 하고 놀란다. 그리고 유난히 키가 큰 친구에게는, 그것이 그이에겐 전혀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알면서도, 너 키가 정말 크구나 좋겠다 하면서 오로지 나만이 그 의미를 아는 칭찬을 한다.

 

그것과 별개로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아무리 좋게 마음을 먹으려 해도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따라붙는다. 찬장이 높아서 의자를 꺼내야 하거나 세면대가 높아서 언제나 반 샤워 상태가 되는 세수보다는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본능적인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반대로 말하자면 언제나 누군가를 올려다보는 기분은 그다지 기쁘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잔잔하고 고요한 열등감에 발목을 적신 채로 평소엔 그다지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열등감은 익숙한 것들에는 찾아오지 않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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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키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침대 사이즈에 맞춰 나를 늘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난 누가 날 내려다보는 느낌이 싫고, 키와 덩치 차이가 나는 사람들의 옆에 서면 귀여워 보이겠다는 생각 대신 짜증이 먼저 난다. 그렇다고 또 매일같이 키높이 신발을 신을 수도, 신고 싶지도 않다.

 

시선의 차이에서 오는 암묵적인 권력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눈빛을 바꾸는 편이었다. 내려간 입꼬리나 위로 치켜뜬 눈 같은, 작은 사람에게 흔히 기대하는 귀여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표정들로 무장했다. 만만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열등감을 어찌 보면 대놓고 표출했던 셈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물리적인 위험을 상쇄시켜 주지는 못했다. 사람들 속에 있다간 죽을 수도 있다라는 걸 유독 자주 느꼈다. 그럴 때는 불편함이 아니라 위협이었다. 내가 이겨내지 못하는 종류의 위협 앞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최소한 스스로의 정신을 방어할 수 있을지 자주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커다란 일을 이루어낼 때 나는 대리 희열을 느꼈다. 작지만 큰 사람, 아무도 그 사람의 키나 덩치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를 만만하게 보지 않으며 오히려 정말 큰 사람으로 인정해줄 때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임을 깨닫곤 했었다. 나에게는 물리적인 크기를 이겨내는 아우라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아우라를 얻기에 나는 자주 무너졌고, 과거를 살면서 현재를 흘려보내고 미래를 비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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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점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을 할 줄 안다는 건 상황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신적 능력을 동원해 미래에 생길 모든 일들을-전혀 상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점쳐 경우의 수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며, 그 경우의 수들이 곧 한계가 되어 자신 없는 일을 포기하고 실패할 백 가지의 핑계를 만들어낸다는 뜻도 된다. 어금니를 무는 것엔 도가 텄다 싶었지만 견디는 데도 여러 방법이 있었고 나는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견디는 편이었다. 

 

해변가를 달리거나 드리블 연습을 하는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심장마비가 오기를 기도했다. 어서 나를 해방시켜주기를. 소리지르는 법도 모르고 우는 법도 모르는 나를 어서 빨리 데려가 주기를. 내가 가장 좋았던 나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고 나는 가끔, 꽤 자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헷갈려 내가 아직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 속으로는 나도 이것이 의미 없는 추억팔이임을 알고 있으니 더이상 이런 부끄러운 생각들을 하지 않게끔.


그렇지만 심장마비는 오지 않았고 나는 하루하루 다음날의 해를 맞이해야 했다. 작은 머리의 몇 배만한 토사물을 출렁거리면서, 세상의 무게만큼 어깨를 굽히고 나보다 큰 사람들 틈에서 내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신경쓰며 대화했다. 즐거운 일이라고는 없었으니 대신 전혀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아주 가볍게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작은 몸과 무거운 머리로 살아가는 건 무서웠다. 그렇지만 그런 걸 바꿀 수는 없었다. 열등감은 수용으로 바뀌었고 수용은 곧 포기와 같은 말이었다. 나는 열등감과 건강한 정신을 함께 버렸고 그렇게 아스팔트 사이의 빗물처럼 고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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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은 사람의 큰 경기들은 나를 자꾸 꿈꾸게 한다. 너 아직 이런 거 좋아하지? 하면서 작지만 큰 사람이 되는 기분을 잊었냐고 눈의 뒤편을 두드린다. 나는 사실, 이제는 나 자신조차 믿지 않지만 스포츠를 하는 걸 좋아했고, 멋진 경기를 잘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자주 꺼내온다. 저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들, 지금은 이미 늦었나 싶은 핑계들, 그렇지만 저 이야기에서는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명징한 사실도 함께 꺼내온다. 

 

모든 캐릭터들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고 그 모든 삶을 적절한 비율로 섞은 것이 독자의, 관객의 삶이다. 어떤 삶은 본보기가 되고 어떤 삶은 아주 개인적인 이유를 대며 껴안고 주저앉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책을 덮고 영화가 끝나면 오로지 한 사람의 삶만이 남는다. 그것을 어떻게 살아내느냐는 무서울 정도로 스스로의 몫이다. 나는 아직 사는 게 무섭다. 내 삶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 나라는 것이 두렵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만 그런 생각만 하면 피부가 욱신거리고 초점이 어지럽다. 잘 해내고 싶은데 초반의 그 애매한 시간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적어도 아직은 좋은 이야기를 좋다고 느낄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상자 속 아주 깊숙한 곳에, 나 아직 이런 거 진짜 좋아해, 하면서. 될 대로 되라지 싶은 마음을 신경 거슬리게 쿡쿡 찌르면서. 삐걱거리는 운동화 소리나 바닥을 울리는 공의 소리처럼 말초적인 것에 집중하면서 더러운 거울 같은 마음을 닦아낼 수 있다면 괜찮을까. 눈 앞의 틈에 집중하면서 앞으로 뚫어나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아래를 올려다보고 위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음을 다시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나는 살면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상공의 높이가 있더라도. 

 

나는 높이 뛰어오르지도, 빠르게 달리지도 못하지만 낮은 곳을 보는 것에는 자신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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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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