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해 줘

미워하는 마음 없이
글 입력 2023.04.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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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보다 빨리 피고 진 벚꽃

 

 

지구를 사랑하는 작가가 쓴 여행 에세이의 제목이다. 정세랑 작가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이며, 드물게도 돈을 주고 산 여행 에세이지만, 해가 갈수록 제목을 말하기에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랑과 아낌은 동의어가 아닌가. 지구인들이 사랑해야 할 지구를 왜 아무도 아끼지 않지. 


계절이 흐려지고 있다. 벚꽃과 매화, 개나리, 산수유가 같은 주에 개화했다. 높은 낮 온도에 일찌감치 반소매 옷에 몸을 꿰었다. 지하철에는 이미 미지근한 냉방이 가동 중이다. 나는 겨우내 끓이던 찻주전자를 조금 높은 찬장에 올려두었다. 주말 저녁에는 길거리를 걸으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4월 3일은 최고 기온 27도를 기록했다. 평년보다 10도 높았다. 그리고 다시 4월 6일 봄비와 함께 기온은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쳤다. 


얼마 전에는 자주 오르던 인왕산에 큰불이 났다. 인왕산 끄트머리에 사는 D가 걱정돼 전화했더니 본가 근처에 난 불은 소식도 없는데 서울 불은 소식이 빠르다며 쓴소리를 했다. 괜히 마음이 찔끔한다.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D는 황급히 “찔리지 마라. 저격 아님”이라며 말을 조금 더 보탰다.


벚꽃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두색 이파리가 뾰족뾰족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꽃잎이 졌다는 뜻인데, 이상하다. 이렇게까지 빨리 벚꽃이 졌었나. 한참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면 바깥에서 하늘하늘 날리는 벚꽃이 미워서 중간고사라는 비공식적 꽃말이 생긴 게 아니었나. 매미가 중간고사의 상징이 되진 않을까 등 아래로 소름이 자잘하게 돋는다. 


작년 강남을 덮친 폭우도, 빈발한 화재도, 땅이 가물어 울던 농민들도, 사람들이 뉴스에 무뎌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무섭다. 기후변화는 가장자리에서부터 온다. 사회가, 제도가 보장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에서부터 온다. 재난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보상해줄 수 없기 때문에 재난이다. 최근에 기사를 쓰며 만난 한 취재원은 “기후변화는 서서히, 조금씩 일상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불편’의 수준에 머물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이전에 누리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경고다. 나는 콜린성 알레르기가 있다. 심하게 추워지거나 더워지는 경우 벌레에 물린 것처럼 동그란 두드러기가 나타난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잦다. 건강 악화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 몸도 지구의 기온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울긋불긋한 두드러기를 두들기면서 나는 내 몸의 체온이 적절한 수준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지구도 자신의 몸 어딘가를 두들기면서 자신을 아프게 하는 인류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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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로 다녀온 한 풍력발전소

 

 

기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치우는 사람 따로,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따로’라는 결론으로 귀결되기 쉽다. 감당하지 못할 어지러움을 맞이하면 그러고 싶지 않아도 기분은 가라앉게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후 관련 기사를 보면 우울하다는 분들이 계신다. 사실은 쓰는 나도 우울하다. 기후변화는 너무 거대하고, 내 영향력은 너무 미미하다는 것이 포인트다. 가끔 기후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는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단호한 사형선고처럼 들린다. 


그래서 기후 우울증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기후 우울증은 기후 위기에 대한 무력감,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생기는 우울감을 의미한다. 주로 기후변화를 직면하는 청년층, 관련 문해력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관찰된다. 실제로 WHO도 기후변화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보건 위협’으로 제시한 바 있다.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공포이므로. 나의 경우 우울감은 나와 인류에 대한 실망감과 미움, 답답함과 무력함 등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마감이 끝나고 독일 출장의 전우들을 만났다. 합정역에서 걸어가는 동안 잠깐은 누군가에게 즐거움이었을, 먹다 버린 페트병과 일회용 컵들이 연석 위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보이는 것만 대충 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한숨과 함께 다른 것들이 입 밖으로 쏟아지려 해 입을 다물고 걸었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깨닫는 순간이다.


선배들을 만나서는 기분이 좀 나아졌다. 화제는 이리저리 튀었지만, 결론은 ‘잘 되고 있는 거야?’라는 물음표였던 것 같다.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음이 조금 건강해진다. 우리는 술집 앞에 모여서 “우리 앞날도 모르는데 지구에 대한 걱정을 더 많이 했다”며 박수까지 치면서 웃었다. 그날 누구도 음식을 남기지 않았다. 한 선배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갔고 나와 다른 선배는 나란히 지하철로 걸어갔다. 우리가 오늘 쓴 탄소는 조금 가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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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 위치한 비건 레스토랑, 몽크스부처

 


집에 오면서 나눈 이야기를 다시 생각했다. 선배는 다른 것은 아니어도 기후 이야기를 하면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모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SUV의 탄소 배출량은 중공업, 해운, 항공보다 많다. 지난해 국내 승용차 판매량 중 SUV 비중이 56%란다. 역시 미워하는 마음을 줄이기 쉽지 않다.


그래도 관련 일을 하며 가장 많이 효과를 봤던 해결책을 소개하자면 ‘아직(YET)’이라는 희망이다. 진부할 수는 있지만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공식은 여기도 적용되는 것 같다. 지구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고 막을 수 있는 시간도 (시나리오 상이지만) 존재한다. 아직이 주는 시간이 얼마나 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은 때때로 무엇보다도 값지다. 


지구인을 탓하고 미워하고 싶은 마음을 이제는 모르는 척하고 싶다. 분명 세상은 바뀌고 있기 때문. 어떠한 목적이든 살며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겠다는 의지는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으니 말이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탄소중립을 고민하고 있다. 착하게 살고 싶어서, 윤리적으로 그것이 맞는 선택이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기에 지속성을 기대하게 된다. 


텀블러를 깜빡하고 나와서 다시 집에 들어가서 가지고 나오는 정도의 정성, 배달음식을 줄이는 불편함, 간헐적으로 채식을 시도해 보는 도전과 호기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귀찮음 등은 전부 대단한 변화다. 환경에는 유별, 유난 등의 단어나 절대적인 윤리를 기대하는 빳빳한 잣대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우리끼리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어느 것 하나 완전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행동할 수 있도록. 80억 지구인들이 마침내 지구를 위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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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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