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른의 시작은 아이로부터 – 비밀의 화원 [공연]

뮤지컬 <비밀의 화원>을 감상한 후
글 입력 2023.03.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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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괜찮아, 우리의 마음속에 비밀의 화원을 가꾸자."

 

1950년대 영국 요크셔의 성 안토니오 보육원. 곧 퇴소를 눈앞에 둔 네 명의 아이 에이미, 비글, 찰리, 데보라가 있다.

 

보육원에서는 반년에 한 번,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어른들이 방문하는 '오픈데이' 가 열린다. 마지막 오픈데이를 하루 앞둔 날. 새로운 가족과 함께 행복해질 미래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찰리는 아무도 우리 같은 아이들을 원하지 않는다며 모두 헛된 일이라 말한다. 에이미는 침울해하는 친구들을 위해 어릴 때처럼 연극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고, 오랫동안 읽어 다 낡고 해진 책 '비밀의 화원'을 집어 든다.

 

직접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책을 읽어보자고 말하는 에이미를 따라 아이들은 모두 한 명씩 배역을 맡고 이야기에 빠져든다.

 

소설 속 메리, 디콘, 콜린, 마사의 이야기와 보육원의 에이미, 비글, 찰리, 데보라의 현실이 이어지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오픈데이 날이 밝아오는데…

 

 

 

# 우리의 시작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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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 때부터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 눈엔 어른들이 너무 멋져 보이고 부러웠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어른에 대한 동경을 잃어버렸다. 누군가와 함께 책임 지던 일들이 온전히 내 몫이 되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해진 대로가 아닌 내가 내 길을 헤쳐나가느라 나를 돌보지 못하는 삶. 요즘 나에게 ‘어른’이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이일 때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그 시절은 떠올려봤자 지금의 상황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이후로 어릴 적 ‘나 자신’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3월 21일 국립정동극장에서 과거의 나를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 보육원의 마지막 오픈데이를 준비하는 네 명의 아이들 찰리, 에이미, 비글, 데보라가 비밀 연극 <비밀의 화원>을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들이 해왔던 놀이 였지만 찰리는 연극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연극에서 찰리를 바라본 순간부터 난 찰리에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릴 적 나와 거리 두기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찰리의 솔직한 심정을 듣기 이전부터 찰리가 현실을 깨닫고,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그 ‘비밀 연극’을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그들을 후원할 어른들은 없고, 또다시 버려질 것이라는 것을 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동심으로 돌아간다고 내 현실이 꿈처럼 아름다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찰리를 보면서 든 또 다른 생각이 있다.

 

“어른은 소원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어른도 아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찰리도 어린 시절 ‘비밀 연극’을 했기에 훌륭한 어른이 되어 대학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이로서 소원을 가졌던 기억마저 부정하려고 한다면 우린 어른이 되어 그 소원을 잊어버리고 이루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 소원은 헛된 희망으로도 비칠 수 있다.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에 절망하고 무모하게 도전하는 과정 또한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그 과정을 겪기 위해서 잠시 아이 시절의 ‘나’와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로부터 시작된 나의 소원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어른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 모든 과정이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나를 마주 볼 때 초라하고 무모하게 생각이 되더라도 마지막 날까지 ‘비밀 연극’을 하는 에이미, 찰리, 비글, 그리고 데보라처럼 자신 속 숨어있던 아이와 마주칠 용기가 있는 ‘어른들’만이 소원을 이룰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넘버, <혼자 서는 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혼자서도 노는 법을 배울 나이

햇빛 아래 혼자 크는 나무들처럼

 

  

데보라가 에이미에게 ‘비밀 연극’을 하면서 불러주는 노래로 아이에게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불러주는 노래이다. 어릴 적 나와 마주한 이후 우리가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언제까지나 아이인 상태로 머물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도 혼자 서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노래, 좋아했던 음식, 좋아했던 사람들 그리고 좋아했던 분위기를 잘 기억하고 홀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야 할 때가 올 때면 그 기억들을 거름 삼아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마치 햇빛 아래 나무가 혼자서 크는 것처럼, 우리만의 나무도 그 어떤 나무보다 크게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이건 나 자신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또한 혼자서 노는 시간을 배우는 것. 극 중 인물들에게도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항상 친구들과 함께 ‘비밀 연극’을 하던 과거에서 멀어져 각자의 자리를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이젠 더 이상 함께 못한다는 것. 그 사실이 네 친구를 슬프게 했지만 그들이 “혼자서도 서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 슬픔을 통해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른이 다 맞고, 아이가 다 틀리고, 어른이 슬프고, 아이가 기쁜 우리만의 착각에서 벗어나 보자! 우리는 다 어른이기 전에 아이였고, 아이는 결국 어른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이 과정을 방해하거나 거꾸로 뒤집을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적절하게 과거와 미래를 조율한다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이 관객들에게 인생의 패러다임을 제시해 준 셈이다.


 

 

# 향이 나는 뮤지컬 


 

정말 깜짝 놀랐다. 비밀의 화원이 열리는 순간에도 감탄을 멈추지 못했는데 실제로 내 코를 가득 채우는 꽃향기는 너무나도 새로운 연출이었다. 정말 내가 비밀의 화원에 들어온 기분. 등장인물들의 비밀 연극에 내가 한 역할로 참여한 기분이 들었다. 향긋하고 포근한 꽃내음은 불안했던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누그러뜨려 주었고 갈등의 최고조에서 불편했던 내 마음을 눈 녹듯이 녹게 해주었다. 비밀의 화원은 누구나 쉽게 열 수 없는 화원이다. 울새의 마음을 얻은 에이미만이 열 수 있었다.

 

에이미의 따뜻한 마음의 향기가 향기로운 비밀의 화원으로 이끌었다고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향이라는 것은 단순히 후각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향긋하고 포근한 냄새는 향긋하고 포근한 사람에게서만 나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포근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 속 <비밀의 화원>이 향긋한 향기를 풍긴 것처럼 많은 이들이 이들의 향기를 느끼고 갔으면 한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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