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할 일은 많은데 하고 싶은 건 하나도 없는 이에게 [음악]

빅뱅 '맨정신' (2015)
글 입력 2023.03.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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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날, 평소와 똑같이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점심을 먹고 난 후 산책을 하는데 한 가사에 꽂히게 되었다.

 

‘할 일은 더럽게 많은데 하고 싶은 건 하나도 없어’

 

‘맨정신’에 이런 가사가 있었나? 몰랐다. 뮤직 앱을 열어 전체 가사를 보니 밝은 분위기의 멜로디와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발랄한 멜로디 때문인지, 뮤직비디오 속 자유로워 보이는 멤버들 때문인지 그동안은 그저 신나는 노래로만 알고 있었다.


‘맨정신’이 발매된 2015년이면 8년 전이고, 내가 학생때다. ‘빅뱅’이라는 그룹 이름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믿고 듣는 정도였을 테니 나 또한 뮤직비디오를 찾아서 봤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들었을 거고,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불렀을 텐데 그동안은 이렇게 외롭고, 처절한 가사인 줄 몰랐다.

 

영화 ‘짱구는 못말려: 어른제국의 역습’에 나온 어른들이 왜 그렇게도 20세기로 가고 싶어 하는지 어느 순간 깨닫게 되고, 영화 속 어른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것처럼 이 노래도 마찬가지로 정말 갑자기, 뜬금없는 순간에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시간은 더럽게 안 가고

나이만 들어 죽은 듯 살아

할 일은 더럽게 많은데

하고 싶은 건 하나도 없어

 

 

‘시간은 더럽게 안 가고 나이만 들어 죽은 듯 살아’의 가사만 보면 앞뒤 내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시간은 안 가는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너무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정말 안 간다고 느껴질 때가 언제인가? 나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 집중이 안 될 때면 시간을 거의 5분에 한 번꼴로 확인한다. 이 정도면 시간이 30분은 지났어야 할 것 같은데도 막상 시계를 확인하면 몇 분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간다.


그러나 한 시간, 두 시간이 아닌 일주일, 한 달, 1년은 정반대다. 딱히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한 달이 지나있고, 1년이 지나있다. 새해가 밝은지 3개월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2023년이라는 연도가 어색하다. 작년엔 20살이 된 후 자기소개를 하며 나이를 말한 횟수가 많았는데 이번 연도에는 그럴 기회가 확 줄었다 보니 내 나이도 아직 스무 살인 것만 같다.


따라서 이 가사의 앞부분에서 ‘시간’은 느리게 가는 시, 혹은 하루 단위의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년 단위로 보면 시간은 빠르게 가기 때문에 나이가 든다는 표현을 쓴 듯하다.


‘할 일은 더럽게 많은데 하고 싶은 건 하나도 없어’는 전체 가사 중 가장 공감이 간다. 나이가 들수록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을 체감한다. 할 일이 많아짐과 동시에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들도 많아진다. 이와 반대로, 하고 싶은 것은 점점 줄게 된다. 초등학생 때,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머릿속에서 줄이고 줄여서 10개 정도 대답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생 때는 하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질문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은데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니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핑계로 하고 싶은 것을 찾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행히 현재는 하고 싶은 진로를 찾게 되어 가고 싶었던 학과에 진학하였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할 일이 많다. 지금의 할 일들은 고등학교 때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할 일이 너무 많아 밤을 새우기도 하고, 벅찰 때도 있지만 모두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활동이기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맨정신이 난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맨정신이 난 제일 싫어

너 없인 잠들 수가 없어

 

 

맨정신이 가장 힘든 순간이 인생에 한 번쯤은 찾아온다. 그럴 때면 현실은 너무 괴롭기 때문에 현실도피를 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마찬가지로, 이 가사에서 ‘너’는 현실도피 수단이다.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는 수단인 것을 알고 현재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괴로운 감정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그 수단에 의지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맨정신을 잊기 위해 알코올의 힘을 빌릴 수도, 게임 속 현실에서 생활할 수도 있듯이 사람마다 현실도피 수단은 다르다. 나에게 현실도피 수단은 ‘유튜브’였다. 생산성 없이 아무 의미가 없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계속해서 시청하다 보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채로 알고리즘 추천으로 뜬 유튜브 영상을 클릭하기만 하다 보면 하루의 모든 시간이 유튜브 영상으로만 채워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이 길수록, 나에게 득이 되는 점은 없다.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빨리 이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도 무너지지 않는 한 결국엔 끝이 있기 마련이다.

 

현재 무기력함의 터널 속에 머물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아트인사이트 태그 송유빈.jpg

 

 

[송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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