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공포감 [영화]

영화 〈랑종〉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3.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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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랑종"은 랑종(무당이라 번역되는)을 대대로 이어온 집안에 외부의 저주로 '악령'이 깃들어 이를 퇴마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에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형태의 귀신이 등장하진 않지만, 사람이 악령에 빙의된 장면이나 다소 잔인하고 기괴한 장면들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종교적, 무속적인 면이 강한 공포영화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더욱 불쾌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아래부턴 영화를 보며 떠올랐던 점들 몇가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밍의 정체성을 찾는 스토리?


 

작품 초반 밍에게 초점이 가기 시작할 때부터 밍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다. 그녀는 무당집안에서 태어나 바얀신을 모시는, 소위 '신내림'을 통해 랑종(무당)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이자 현재 랑종인 '님'의 언니 '노이'가 그랬듯 무당이 되길 거부하고 오히려 성당에 열심히 다닌다. 

 

이는 전통적인 종교관과 관습에 따른 '랑종으로서의 모습'과 성당과 같은 새로운 종교적 안식처를 택한 '현대적인 모습'이 상충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위의 두 가치관이 충돌하는 과정, 영화 속에선 바얀신과 랑종이 되는 걸 거부하는 과정에서 밍이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반쪽 날개가 물에 젖어 퍼덕일 뿐 날지못하는 벌레가 클로즈업되는 장면은 마치 밍이 전통적인 역할의 굴레에 벗어나기 위해 퍼덕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어떻게 보면 정해진 운명(신의 뜻)과 이를 벗어나려는 무력한 인간의 몸부림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영화 중반부로 들어서부터 틀어지게 되는데, 바로 밍의 몸에 들린 '신'이 바얀신이 아닌 다른 '신'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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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개의 중심적인 역할인 '반전'


 

밍의 상태가 악화될수록 현직 랑종이자 밍의 이모인 님을 중심으로 그녀의 가족들은 고군분투한다. 그러던 중, 님은 밍의 고통이 바얀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맥'에 의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맥은 밍의 친오빠로, 작중 시점에선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기에 등장하진 않지만, 님은 밍과 맥이 사랑하는 사이란 사실부터 맥이 자살했다는 사실까지 알아낸다. 


그 사이에 밍은 가출해서 사라져버리게 되고, 님은 밍을 찾기 위해 맥이 밍을 더이상 괴롭히지 않도록 맥이 자살한 곳으로 추측되는 장소에서 기한없는 의식을 치른다. 계속되는 의식에도 아무런 정보도 알 수 없었던 님. 어느날 의식 도중 달걀을 깨다가 알 속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게 되고, 이를 통해 님은 결국 밍의 고통의 원인이 바얀신도 맥도 아닌 다른 무엇임을 깨닫는다. 


이후 밍을 다시 찾고 우여곡절 다양한 일들을 겪어나가는 과정에서 밍의 아버지를 비롯한 야싼티야 일가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이렇게 비참히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저주와 혼이 모여 밍을 괴롭혔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에 님은 동료 퇴마사 싼티와 함께 밍의 할아버지가 보험금을 노리고 방화를 일으킨 공장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퇴마의식을 수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일어났는데, 바로 퇴마 전날 님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때문에 의식은 싼티 혼자서 도맡게 된다. 많은 난항이 있었던 의식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모두가 있었던 공장이 활활 타오르며 다큐멘터리는 끝을 맺는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후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퇴마의식 이전 다큐멘터리 촬영팀과 님의 인터뷰 내용이다. 여기서 님이 했던 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는데, 바로 자신이 랑종, 곧 바얀신이 신내림한 존재인지 확신이 없었으며 당장있을 퇴마의식 또한 성공할지, 아무 소용 없을지 몰랐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본질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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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무엇인가

 

영화의 배경인 태국 북동부의 이산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랑종이라는 일종의 무당을 통해 수호신인 바얀신과 소통하며 지내는 등, 공동체의 생활방식에 종교적인 면이 깊이 배어있다. 때문에 영화 내에서 종교, 더 나아가 믿음이라는 주제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중간중간 성당과 법당이라는 서로 다른 종교적 공간을 짧은 컷으로 연달아 보여주기도 하고 부처님이든 하나님이든 어떤 신이든 자신의 딸을 도와달라 외치는 노이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영화의 마지막에서 자신에게 확신이 없다고 말한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영화 중반부에서 무당이 되길 거부했던 언니 노이와 무당이 된 동생 님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노이는 님에게 실제로 '믿고 있냐'고 묻는다. 이에 님은 자신은 바얀신이 '느껴진다'고, 비록 본적은 없지만 믿고 있다고 하며 언니에게 밍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며 위로를 건넨다.
 
이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드러났던 님의 속마음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후 후반부 공장씬, 싼티마저 죽어버린 상황에서 마치 광기에 휩싸인 듯한 노이가 자신도 '느껴진다'고 한 장면은 이와 연결됩니다. 그럼에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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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님과 노이는 정말 신내림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통해 불안정한 인간의 정신에 기둥을 세워 의지하고자, '느껴졌다고 믿고싶었던' 것일까? 만약 정말 노이가 바얀신을 신내림 받았다면, 왜 밍을 괴롭히는 악령을 무찌를 수 없었을까.

 

이와 관련해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킬박사가 마지막에 결국 하이드에게 사로잡힌 이유는, 지킬박사, 곧 인간이라는 존재가 순수한 선이 아닌 선과 악이 중첩된 존재이기에(절대 선이 아니기에) 절대 악인 하이드를 물리칠 수 없었다는 해석이 있다.

 

어쩌면 랑종 속 주인공들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 존재가 아닌 믿음과 불신이 공존하는 존재였기에 불확실함으로 인한 비극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때, 믿음의 대상이 아닌 믿음의 주체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도 좋은 접근 방법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치는 어땠나 


 

랑종은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서 등장인물들을 관찰하는 카메라맨의 관점으로 그려지며 인터뷰하는 장면들도 종종 등장한다. 랑종의 장르가 공포영화이기에 중심인물들의 생각을 알 수 없는 3자의 입장을 통해 공포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 또한 카메라맨의 시선을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직접 그곳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동안 굉장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관람자 입장에서 불편한 점도 있는 건 사실이다. 일단 카메라맨의 시각으로 보여지기에 카메라가 굉장히 흔들리게 묘사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생동감을 주기 위해 의도한 것일 수 있겠지만, 몇몇 장면은 조금 과하다 싶은 느낌도 있었다.

 

다른 점으로는-이건 플롯 내부에 관한 것이긴 한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온 카메라맨이라서 그런지 영상을 촬영하는데만 몰두하고 의식 등에 개입하지 못하는 게 약간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퇴마의식 중 밍을 방에 가둬놓고 절대 열지 말라고 했지만, 밍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있어서 위협이 된다고 착각한 팡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밍이 갇힌 봉인된 문을 풀고 마는 장면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 카메라맨은 멀뚱멀뚱 영상만 찍고 있었다. 퇴마의식이 실패하는 장면으로 이행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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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면서도 낯선듯한 공포감


 

영화는 랑종을 우리나라 말로 일종의 '무당'이라 번역하며, 신이 빙의하고 깃드는 것을 '신내림'과 같은 단어로 표현하여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다. 이런 점을 비추어 볼 때, 어쩌면 우리는 영화 랑종이 온전히 낯설기만 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마을 주민이 랑종인 님에게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 일종의 굿을 수행하는 장면 등은 태국의 이국적인 종교의 모습으로 낯설기도 하지만,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해왔던 무속신앙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에서 무당에 대한 인식이 사이비 종교이자 대중을 기만하는 부정적인 대상으로서 여겨지지만,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이 굉장히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점과 공동체 일원들이 가졌던 걱정과 불안에 공감, 해소해주면서 결속을 유지시켜 왔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영화 속 랑종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우리의 무속신앙에 대한 이해는 랑종의 관람자로서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보입니다. 랑종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공포감은 마냥 이국적이고 생소한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닌, 익숙하면서도 낯설기에 공포영화로서 우리에게 더욱 큰 자극을 줄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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