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하루를 열고 닫는 데에는 그림이 필요하다 - 도서 ‘하루 한 장, 인생 그림’

미술 작품을 만나는 새로운 국면
글 입력 2023.03.17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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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일상에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시간이 뜰 때마다 계획하지 않았어도 인근의 미술관을 들리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의외로 곳곳에 미술관은 존재하고 있었고, 입장료도 부담스럽지 않아 어느새 미술관 관람은 날을 잡고, 티켓을 미리 예매하고 방문해야 하는 거창한 일이 아닌 나의 하루 중 소소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드는 고민은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원체 한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타입인데, 도슨트 앱이 제공된다면 해설을 듣거나 캡션에 제공되는 설명을 꼼꼼히 읽는 편이고 작품 속 장면과 나의 경험이 맞닿는 국면을 생각해보거나 작가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지 추론해보는 등등의 과정을 거치며 한없이 그 작품 앞에 서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같이 즉흥적으로 미술관을 찾게 되는 날이 많아지자 작품을 마주하는 빈도가 높아졌고, 나의 평소 작품 향유 패턴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조금 강박적으로 거치던 과정들이 피곤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의 저자는 조금은 다르게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의 인생그림을 담으며 그에 대한 조금은 짤막한 코멘트들을 적어 놓았다. 때로 그는 자신이 상상한 화가의 러브레터를 쓰기도 하고, 작품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조금쯤 작품을 완벽히 이해하거나 몰입하려는 부담을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수많은 인생 그림들 중, 작품에 대해, 혹은 작가의 코멘트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가벼운 메모를 작성해 보았고, 이를 조금 다듬어 지금부터 이어 붙여보고자 한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 <관찰하기 좋은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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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타데마의 그림을 보며 느끼는 희열을 나도 종종 경험하곤 한다. 고층의 탁 트인 공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레고 블록으로 조립한 장난감 세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만히 이를 관조하다 보면 내가 아등바등 고민하고 치열하게 싸워왔던 것들이 사실 별 것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생각이 극에 달하면 허무 주의를 경험하거나, 혹은 현실에서의 일에서부터 회피하는 꼴이 될 수 있겠지만,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조금쯤 자신이 몰두하고 있던 자그마한 일에서 멀어져 그것을 관조하는 순간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정리하고 조금 더 멀리 내다보는 시간을 가지면 새로운 해결책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타데마의 작품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를 읽으며 또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미술 작품은 언제나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았다. 타데마는 고전주의 화풍을 지키며 그 시절을 재현하는 데에 몰두하였는데, 사실 나는 이러한 고전주의 작품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며 변화를 반영하는 인상주의, 야수주의 등의 형식들이 올바른 방향을 가고 있다고 은연 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타데마의 작품들은 분명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재현한 장면들은 그 시절 아름다웠던 풍경들을 우리의 시간으로 데리고 왔고, 그 광경을 본 또 다른 예술가, 혹은 창작자들이 끊임 없이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하며 예술의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월터 멕이웬 <위령의 날에 부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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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치매에 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말하길 치매의 가장 비극적인 점은 기억을 잃는 것, 그러니까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모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육체보다도 ‘나’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어제와 오늘을 살아낸, 또 내일을 살아갈 ‘기억들’이다. 그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일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저자가 윌터 멕이웬의 해당 작품을 보며 치매를 앓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는 그래서인지 나로 하여금 이 작품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해보게끔 만들었다. 또 다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기 전 편안한 잠에 빠져 있는 듯한 늙은 노인의 곁에 이제는 ‘부재’하게된 혼령의 여인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인생이 담긴 책을 읽는 젊은 여인의 모습까지. 


작품을 오래 들여다 볼수록 많은 시간대와 많은 기억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았고, 결국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삶과 죽음은 어쩌면 본디 한 몸일지도 모른다. 작품 속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삶’이라는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기에 함께하고 있고 우리는 그 삶의 소중함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브리튼 리비에르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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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 리비에르의 작품들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눈에 들었던 것은 인물과 강아지의 시선 차이 이다. 인물은 모두 각자의 감정, 혹은 할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시선은 때로는 책을, 때로는 바닥과 천장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리비에르의 작품 속 모든 강아지들의 시선을 한 방향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바로 인물, 그들의 주인을 향해 말이다.


<신뢰>라는 작품은 그러한 강아지들의 세계를 온전히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주인이 우울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강아지는 본인의 상황이 어떻든 근심 어린 표정이 되어 주인을 위로해주려 한다. 이 얼마나 온전한 사랑일까? 어쩌면 이는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보다 더 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강아지의 작은 세계는 온통 주인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그들의 깊은 사랑에 보답할 자신이 없기에 나는 반려 동물과 함께할 자신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한편으로 나는 반려 동물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어쩌면 조금은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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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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