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을 열며 “다녀오겠습니다.” [영화]

“다녀왔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아름답게 상기하는 영화
글 입력 2023.03.14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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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

 

 

스즈메_문.jpg

 

 

스즈메는 등굣길에 문을 찾는 ‘소타’를 만나며 일상의 틀을 벗어난다.

 

소타를 쫓아간 스즈메가 문을 열자 그녀는문 너머의 세계를 보게 되고, 놀란 마음에 바닥의 돌도 뽑아버린다. 열린 문과 뽑힌 요석. 마을에 재난의 위기가 닥치는 신호다. 검붉은 힘이 꿈틀거리며 매섭게 문을 넘어 쏟아져 나왔고 스즈메는 소타를 도와 간신히 문을 닫는다.

 

소타는 집안 대대로 지진을 일으키는 검붉은 힘인 ‘미미즈’가 문 안에 머무르도록 문을 단속하는 사람. 의문스러운 고양이 ‘다이진’에 의해 그는 세발 의자가 되고, 스즈메는 소타의 일을 도맡게 된다. 소타의 몸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스즈메는 그와 함께 다이진을 쫓아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하게 된다.

 

<스즈메의 문단속> 속 ‘문’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임과 동시에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가 빠져나오는 통로이다. 스즈메가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지만 지진을 막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닫아버려야만 한다.

 

큰 재난을 막기 위해 곳곳에 있는 폐허의 문을 단속해야 하는 스즈메. 일본 곳곳의 열린 문을 닫기 위해 돌아다니는 스즈메를 따라가며 일본 각 지역의 특색을 아름다운 작화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관객은 문단속이라는 행위를 통해 버려진 공간에서 잊힌 사람들과 일상을 추모한다.

 

 

스즈메_폐허.jpg

 

 

스즈메가 닫아야 하는 문들은 폐허에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잊힌 공간에서 미미즈는 존재를 과시하며 문으로 나온다. 문을 닫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 있었을 사람들을 떠올려야 한다. “공부 많이 했어?”, “우리 다음 기념일에도 여기 오자”와 같은 밋밋한 대화들이 오가는 일상적인 모습이 폐허가 된 공간에 투영된다.

 

재해가 순식간에 앗아간 기나긴 일상과 활력이 깃들었던 공간을 기억하고 추모하자는 감독의 의도가 비친다. 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있었을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을 함께 기억하며 위로하자는 메시지도 전해진다. ‘기억하자’는 메시지는 여러 가정의 일상적인 아침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명료해진다.

 

“맛있겠다”, “잘 먹었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문을 닫은 사람들은 다녀오지 못했다. 자연재해는 큰 의미 없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바꿔버리는 비극이다. 한편 스즈메의 이모가 스즈메에게 그녀를 키워온 세월에 대한 부담감을 우발적이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감정을 해소하는 모습은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일본 곳곳의 문을 닫으러 돌아다니는 사건 중심 진행은 일본의 지역별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지만, 이 연출은 비단 다양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스즈메가 문을 닫으러 다니는 폐허들은 실제로 일본에서 자연재해가 일어난 장소들이다.

 

사라진 마을의 중학교는 2018년 7월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난 에히메, 1995년 1월 대지진이 일어난 고베,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이 난 도쿄, 그리고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이 난 스즈메의 고향 이와타. 재해가 있던 지역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고,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재해에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설정이다.

 

여전히 지진 문자가 오더라도 설마, 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영화 속 사람들의 모습은 안일하다. 그러나 스즈메 또한 재해로 엄마를 잃었다는 설정을 넣어 매우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는 재해 대비에 대한 경각심을 키운다.

 

 

스즈메_다이신.jpg

 

 

설화적 요소도 눈에 띈다.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일본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랑한 방식으로 설화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꿈틀거리는 모습을 한 ‘미미즈’는 일본어로 ‘지렁이’인데, 일본에서는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존재가 날뛰면 지진이 발생한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요석인 ‘다이진’ 또한 한자로 대신(大神)으로 ‘신’의 이름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특징을 가진 고양이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끔찍한 트라우마를 사람들에게 안겨준 자연재해를 소재로 한 영화인만큼, 일본의 정서에 맞춰 지진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과 이를 막아내는 모습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잘 풀어낸 영화이다.

 

<너의이름은>, <날씨의아이>에 이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재난 3부작으로도 불리는 이 영화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추모한다. 그리고 그 상처를 기억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다른 재해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자고 전한다. 그리고 이 진심 어린 메시지는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작화와 어우러져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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