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6번 칸은 사랑을 싣고

6번 칸_유호 쿠오스마넨
글 입력 2023.03.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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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6번 칸’은 우연히 같은 열차 칸에서 함께 하게 된 두 남녀의 세밀한 감정과 관계를 그려낸 작품이다. 칸영화제 수상작만큼이나 다른 영화 시상식에서도 ‘6번 칸’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배우들 역시 많을 상을 수상했다.

 

감정이 넘쳐흐르진 않지만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에 천천히 스며들어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조금은 냉소적이었던 만남과 따뜻했던 만남, 그리고 진한 향수처럼 기억에 머무는 만남이 모여 내가 머물고 있는 칸을 가득 채운다. 만남을 채운 열차는 내 기억 속 터널을 향해 출발하며 창밖을 보듯이 짧았지만 강렬했던 그때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다른 영화와 비교함으로써 공통점을 찾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지만, 영화를 봤을 때 ‘비포 선라이즈’가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진솔한 사랑 이야기라는 형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큰 틀은 이렇게 비슷하지만 ‘비포 선라이즈’는 보다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와 가깝고 ‘6번 칸’은 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와 가깝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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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와 ‘료하’의 첫 만남은 아주 우연적이다. 우연은 사랑이 품기 적당한 장치이지만 ‘6번 칸’은 그 우연으로 발생한 불쾌한 일들을 먼저 보여준다. ‘라우라’에 대한 ‘료하’의 무례한 행동, 좁은 칸에 두 남녀가 함께 지내야 한다는 어려움, 사생활의 보장이 안 되는 공간의 제한 등이 ‘6번 칸’이 지닌 현실이다. 잘 씻지 못해 부스스한 머리와 기름진 얼굴, 오래 입은 옷들이 우연이 주는 낭만을 걷어 차고 보다 현실적인 삶을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 그 현실적인 곤란함과 어려움들이 감정에 변화를 일으킨다. 영화 제목과 같은 ‘6번 칸’의 공간이 주는 메리트가 있다. 이 영화에서 낭만은 우연에 있지 않고 바로 이 공간에 존재한다. 좁은 공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숨길 수 없으며 더 진솔해질 수 있다. 다소 냉랭했던 이들 관계의 전환점은 바로 ‘료하’의 집이다.

 

열차가 잠시 정차하는 동안 이들은 더 넓은 공간으로 이동해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좁은 열차로 이동해 보다 더 진솔해진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나오는 작은 진동과 떨림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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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넘쳐흐르진 않는다. 하지만 냉소적이었던 관계가 점차 나아지듯이 점층적으로 확장하는 감정이 특징이다. 열차가 종착역에 다와 갈수록 이들의 감정도 점점 폭발해간다. 그냥 어린 소년 같던 ‘료하’는 점점 어른스러워지고, 점잖아 보이던 ‘라우라’는 점점 어린 소녀처럼 장난기가 많아진다. ‘료하’는 진실을 전하는 방법을 배웠고 ‘라우라’는 외로움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완벽한 해결은 없지만 점점 확장하는 이들의 관계와 감정에서 하나 둘 배워가는 점이 늘어간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6번 칸’이 실은 이들의 여행에도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 고난이 존재한다. 오고 가는 많은 인연 속에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어쩌면 이들은 많은 장애물을 함께 극복하고 만남에 기뻐했으며 슬픈 이별을 예감했을지 모른다.

 

‘료하’가 다시 투정을 부리고 ‘라우라’가 다시 외로움에 빠지는 건 결국 이별 때문이고 아쉬움 때문이다. ‘비포 선라이즈’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낭만이 느껴지지만 ‘6번 칸’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끌리고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게 다예요."

 

 

종착점에서 헤어진 후 다시 찾은 이들은 ‘라우라’가 열망했던 ‘암각화’를 찾는 또 다른 여정에 함께한다. 눈보라로 겨울엔 접근할 수 없는 장소이지만 그 장애물을 넘어 암각화가 있는 장소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은 다른 바다와 별 차이가 없는 곳이었다. 저게 다냐는 ‘료하’의 물음에 ‘라우라’는 대답한다. ‘저게 다예요.’

 

이 대사가 이들의 만남을, 여정을, 사랑을 잘 설명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엄청나고 화려한 사랑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두 사람이다. 호화스러운 호텔이 아닌 좁은 열차에서 함께 지냈지만 그 자체로 포근했고, 잘 꾸미지 않은 기름진 얼굴이지만 그 자체로 예뻤다. 저게 다라는 말은 부족하다는 민망함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충분함과 만족감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들은 충분하고 넘쳤던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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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아름다운 건 그곳에 3일만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3일이 아닌 매번 그곳에 있다면 파리에 대한 감정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라우라’와 ‘료하’의 만남이 아름답고 충분하다고 느껴진 건 이들의 만남이 짧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별을 암시한 만남은 슬프기 때문에 더 애틋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만으로 이들의 만남을 설명할 수 없다. 시간이 아닌 그들이 직접 여행을 만들어 갔다. 불쾌함, 질투심, 애틋함, 설렘, 실망감, 아쉬움 모두 겪고 보내며 성장한 이들이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지 느낄 수 있으며, 아직 풀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는 덜 매여진 매듭이기에 마지막이란 말이 더 아쉽다.

 

여행을 기억할 때 그때의 온도와 냄새도 같이 떠오른다. 이들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6번 칸을 기억하며 삶을 이어가지 않을까 싶다. ‘비포 선라이즈’는 후속작이 나옴으로써 인물들의 재회가 반갑고 로맨틱하다. 하지만 ‘6번 칸’은 그 자체로 마지막을 남기며 더 짙은 아쉬움을 남기고 더 짙은 아름다움을 풍긴다.

 

여행을 기억하듯이 그 사람을 기억하길, 그곳에 남은 나의 온기를 기억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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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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