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프니까 어른이다

아파보니까요
글 입력 2023.03.04 14: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230304_005420678_03.jpg
직접 찍은 필름 사진.

 

 

어른이 됐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다. 몸의 눈치를 볼 때다. 아플 것 같으면 몸에 신호가 온다. 그리고 그것을 제때 느끼고 얌전히 귀가해 비상약을 먹고 일찍 잠드는 현명한 일을 해내면 나는 또 한층 성장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평소처럼 술을 먹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늦게 자는 등의 방만한 생활을 이어간다면 끝은 강제 휴가로 이어진다.


상경한 후 처음으로 크게 아팠던 날이었다. 병명은 독감. 지독한 여름 독감이었다. 바깥사람들은 모두 드러낼 수 있는 살갗을 맹렬히 드러내는데 나는 때 이른 두꺼운 후드티를 입어야 했다. 뼈마디를 두들기는 한기에 오들오들 떨면서 잊고 살았던 전기장판을 켰다. 아마 시험 기간이었을 것이다. 시험을 치고 간신히 병원으로 가 진찰을 받았다. 단순 감기 같다며 처방받은 약을 들고,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짚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약을 먹어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공 시험 하나를 두고 열은 오르락내리락. 열감기를 앓아본 적이 없으니 열을 어떻게 내리는지 알 리가 없었다. 게다가 한방을 쓰던 룸메와는 사이도 멀어진 상태였다. 도와달라 말을 붙이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시험 하나만 보면 된다는 집념 하에 학교로 향했다. 어떻게 시험을 친지도 모르겠다. 내쉬는 숨은 뜨겁기만 하고 속이 답답해 숨을 크게 들이쉴라치면 기침이 터져 나왔다.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탔다. 아무래도 아까 그 병원은...못 미더웠다. 여름 병원은 한산했다. 접수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간 진찰실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흠... 아무래도 독감 같은데. 그러더니 뒤쪽에서 기다란 면봉 같은 것을 하나 꺼내는 것이다. 그리고 간호사가 뒤로 와 내 머리를 잡았다.


뭐야 이거 뭔데...머리를 뒤로 뺄 수 없도록 내 머리를 안고 있는 간호사의 품 안에서 눈알을 데구르륵 굴리자 의사가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 아파요.’


코로나 검사의 예습이었다. 모르셨죠, 독감 검사도 똑같답니다. 뇌가 얼얼한 것 같아 머리를 문지르는 동안 피도 뽑았다. 살에 닿는 에어컨 바람에 잘잘하게 소름이 돋았다. 엑스레이까지 찍고 나서 받은 결과는 A형 독감.


“탈수에 영양실조까지 있어요. 대학생 아니에요? 몸 상태가 왜 이렇게 안 좋아.”


링거를 연결해 주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귀에서 튕겨져 나갔다. 눈이 뜨끈뜨끈해지면서 안 그래도 까끌거리는 목이 콱 막히기 시작했다. 


아니...처음에 간 병원에서 독감이라고 말해주고...제대로 처방해 줬으면 이 사단도 안 났지...시험 어떻게 보고 온 지도 모르겠는데...


“링거 맞고 집에 갈 때 죽 사 가요. 기침 계속하는데 그럼 목 부어서 그냥 밥은 힘들겠어.”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나에게 꾸준히 말을 걸던 간호사가 내 눈물을 발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머, 왜 울어요. 어머. 이거 바늘 아파서 울어요?”


절레절레.


“그럼, 왜 울어요. 서러워서?”


끄덕끄덕


반대로 얼굴을 돌리고 있어서 그분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필시 웃음을 참으셨을 것이다. 그것도 잠시 의자를 끌고 옆에 잠깐 앉은 뒤에 쏟아내는 이야기는 한참을 더 훌쩍거리게 했다.


울 딸이랑 나이가 비슷해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자기 몸 돌보는 것보다 우선인 일은 없다며. 어머니께 전화는 했는지, 걱정하실 텐데 전화해서 맘껏 어리광 부리라며. 몸 상하는 것도 모르고 제때 못 챙기는 사람들은 암만 나이 먹어도 어른이 아니라면서. 우리 눈엔 다 아기 같은데 다들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면서.


눈물을 멈추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이었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매일 보는 환자에게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어떠한 단단한 마음일까. 선선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마음은 어떠한 따뜻한 공간일까. 


링거가 주는 효능은 대단했다. 약이 반절 정도 줄어들자 몸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옷이 덥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켜주었던 전기장판도 뜨겁게만 느껴져서 결국 못 참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KakaoTalk_20230304_005420678_01.jpg
직접 찍은 부암동의 부빙 필름사진. 코로나 격리가 끝나자마자 달려갔다

 

 

이제 좀 살만하죠?


열이 나서, 울어서 퉁퉁 부은 눈과 얼굴이지만 그래도 웃음은 났다. 밥 챙겨 먹으라는 따뜻한 인사에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계절에 맞는 옷차림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땀에 젖은 후드티는 최대한 멀리 집어 들고 나는 빠르게 기숙사로 돌아갔다. 막상 엄마한테 전화하니 눈물은커녕 웃음이 났다. 난생처음 보는 간호사 앞에서 울었다는 말을 에피소드 겸 떠들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졌다. 엄마, 나 집에는 가고 싶어. 서울 기숙사 말고 진짜 우리 집. 냉큼 짐을 챙겨서 본가로 향했다. 


너무 큰 아픔이 찾아오지 않게 나를 챙겨가면서, 나는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몸살 기운이 돌면 순두부찌개를 끓인다. 볶은 보리를 한 아름 사다가 차를 내리고 전기장판 온도를 살짝 올린다. 따끈한 달걀과 두부로 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소화가 되는 동안은 차를 마신다. 약을 털어 넣고 약 기운이 돌 때쯤이면 전기장판으로 데워진 침대로 몸이 기울어진다. 그렇게 아픈 나를 달래는 간단한 과정이 완성된다. 


간단한 몸살 기운은 이 정도면 되는데 더 아프기 시작하면 덜컥 겁이 난다. 내일 출근 어떻게 하지부터 줄줄이 잡힌 일정들이 생각나기 시작하면 아, 이거 큰일이 났다 싶다. 그러면 망설이지 않고 가까운 내과로 향한다. 코로나 이후로 비대면 진료가 꽤 편리하게 되어있지만 역시나 나는 의사를 붙들고 하소연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저 이렇게 아픈데요. 빨리 낫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요즘은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저러한 일련의 과정이 말을 안 듣기 때문에 곤란하다.)


나는 1인 가구의 가장이다. 아프면 우리 집(1인 가구)이 무너진다는 사실은 독립한 지 9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낯설다. 이른 퇴근을 하고 나서 이어지는 모든 것들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긴다. 짧게 걸린 해가 지기 전까지 밖에 두고 온 모든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뜨끈하게 전기장판도 켜고. 

 

겨울은 몸보다는 마음이 아픈 날이 많아 문제다. 겨울용 우울은 전기장판에 다글다글 끓이고 나면 조금 낫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동의하지 않지만 아파보니까 어른이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지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안 아프면 제일 좋지만 어쨌든 아프면서 날 챙기는 방법도 알고, 달래는 방법도 알고. 아파보니까 어른이 되더라. 

 

 

 

조수빈 (1).jpg

 

 

[조수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