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나치게 매끄러운 심장의 표면 : 지나친 고백 [도서]

글 입력 2023.02.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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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걸맞게 고백 하나 하자면, 에세이인 줄 모르고 읽었다. 그러니까,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읽다가 어느 무렵 책날개를 펼쳤고 그곳에 적힌 저자의 이름 '크리스티 테이트'를 보고 의아함에 빠졌다. 소설 주인공이랑 이름이 같다고? 일부러 그런 건가? 감사의 말까지 다 읽고 나니 일부러가 맞는 것 같다. 사람은 특히나 자신이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고 있던 시기에 겪었던 사건, 들었던 생각을 비롯한 자신의 반응을 숨기고 싶기 마련인데. 특히나 그 반응이 일반적이라고 받아들여지지 못할 행위일수록 말이다.


그러나 저자이면서 에세이의 주인공인 크리스티는 담대하게 자신의 과거를 드러냈다. 개중엔 윤리/도덕적으로 어긋난 행위도 있었고, 읽는 동안 역겨움을 느낄 만큼 비참한 때도, 애달플 정도로 똑같은 생각 굴레에 갇혔던 그가 보이기도 했다. 책이 출간된 후에 비슷한 반응이 몰려왔다고 한다.


이건 크리스티가 8년 동안 그룹 상담을 받으며 나눴던 말과 태도, 행동, 사건의 공유인데 인간사회 내 그 어떤 집단보다 솔직함으로 들끓는 모임이었으니까. 저자 크리스티가 여론의 웅성거림에 이렇게 답했다지. '조율은 가능하지만 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어느 정도 생략할 순 있어도 아예 없었던 일 취급할 순 없다는 강경한 입장. 그가 믿고 따른 로젠 박사의 철칙(비밀은 유독하다)에 완전히 동의하기 때문 아닐까. 그의 유별난 처방에, 그를 기점으로 모인 내담자들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끝내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기까지 이르렀으니.


8년이라는 방대한 시간을 담기엔 턱없이 부족한 페이지이다. 중간중간 1, 2년을 통으로 건너뛰는 대목이 있는데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 속에 또 다른 깨달음과 사건들이 있지 않았을까. 나름 일상적이었다고 한들 로리에게 밤마다 전화해서 오늘 먹은 음식을 보고한다거나 패트리스에게서 긍정적인 말을 듣는다거나 하는 일련의 루틴은 지속했을 테니 말이다. 사람과 친밀한 관계 맺기를 어려워했던 크리스티에게 이들 존재는 그 자체로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을 표상한다.


나 또한 가끔은 크리스티가 자진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위가 보고 있기가 버겁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가치를 깨닫길 끝까지 인내하며 이야기를 따라갔던 것 같다. 세 개의 목차로 구성된 에세이인데, 각 목차의 소제목이 매력적이기도 해서 챕터 별로 기억해두고 싶은 몇 문장들을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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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매끄러운 심장의 표면


 

책을 받고, 목차를 열어보고 가장 먼저 맞닥뜨린 표현. 지나치게 매끄러운 심장의 표면이라니. 매끄럽다는 건 대개 좋은 의미이지 않은가? 과연 무슨 뜻인지 책 속 문장으로 대체할 수 있겠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칼집, 그러니까 타인의 욕망, 요구, 옹졸함, 선호 같은 것들과의 불가피한 충돌, 그리고 관계를 이루는 그 모든 흔하디 흔한 의견 절충 과정 때문에 마음이 손상되는 걸 내가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결합되기 위해서는 칼집이 필요했는데, 내 마음에는 흠이 나있지 않았다. (16)
 

 

로젠 박사가 크리스티에게 처방한 방향은 늘 같았다. 관계에 흠집을 만들어 보도록. 그 때문에 크리스티가 불안해하고 걱정하다 망했다는 생각에 이르러 또 습관처럼 자신을 탓하긴 했지만. 이게 하나의 필터로 작용한 것 같다. 크리스티가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꽤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전혀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고 일방적으로 크리스티가 헌신하고 감내하고 합리화해야 하는 위치였으니까.


그런 말이 있다.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고. 성격은 제각각이라고 해도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부류를 만나곤 한다. 그러니까, 저때의 크리스티는 성실한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아주 하찮게 봤다. 그를 자신이 설정한 낮은 가치의 사람으로 대할 만한 사람을 곁에 둠으로써 자신의 하찮음을 다시금 인지하고. 이 같은 일이 반복되고. 크리스티는 어떤 일이든 잘해보려고 늘 애쓰는데 제대로 망하기만 한다지만, 실은 크리스티 자신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본다. 상황에서 벗어나는 건 나중 일이다. 먼저 자신 안의 응어리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로젠박사는 드러내기를 권한다. 과거의 일을, 현재와 앞으로 벌어질 일들도 낱낱이 말하고 공유하기를. 감정과 생각을 분출하기를.


 

"자신이 왜 사생활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는지 한번 살펴봐도 좋을 거예요."

"보통 다들 그러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지키는 건 다른 사람들이 내 문제를 알게 되는 것보다 더 해로워요. 비밀을 지키는 건 자기 몫이 아닌 수치심을 품는 일이니까요." (60)

 

 

로젠 박사의 말대로 나의 문제를 타인에게 말하는 과정에서 수치심이 든다면 그건 오롯이 내 몫이다. 내가 숨기고자 했던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거니까. 겁이 나고 무서워도 그건 내가 내 몫을 정당히 감당한 거다. 반면, 타인이 숨기던 말을 나 또한 숨겨야 한다는 건. 타인이 공유한 수치심을 나의 몫으로 떠안는 셈이다.


이런 경험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아주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자기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전부 나에게 토로하곤 했다. 우리 둘 모두가 아는 겹지인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나는 그가 말했던 이들을 당장 다음날에라도 대면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꺼림칙함을 느끼며 그 사람과 거리를 두었고. 당시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그저 나랑 잘 안 맞는 느낌이라 피하고 싶은 것이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좀 다르게 보인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한 비밀이 나에게 전달됨으로써 나는 양쪽 모두에게 그 일을 숨겨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비밀이 드러난 사람에겐 내가 비밀을 모르는 것처럼, 비밀을 전달한 사람에겐 그 일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비밀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언가를 숨겨야 한다는 행위, 그 행위가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알기에 이 대목에 한참 머물렀던 것 같다. 


 
한번 수치심이 들면 그로 인해 나의 더 많은 약점이 드러나 내가 속한 집단에서 배제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나고 강렬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우리 뇌가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초원에 살던 고대 인류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부족으로부터의 추방은 곧 죽음과 다름없었다. (나의 수치심에게, 21)
 

 

1부는 가장 많은 변화가 크리스티에게 일어난 시기라고 느낀다. 그룹 상담을 시작했고, 자신의 수치심 하나를 공개하자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한 마디씩 말을 거들었고,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자 모두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줬으니까.


 
"데이트가 망한 건 크리스티 잘못이 아니에요." 그들은 그렇게 단언했다. "어떤 데이트는 그냥 망해요." (94)
 

 

어쩌면 크리스티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그냥'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크리스티가 관계에 대한 결핍을 숨기고자 몰입했던 건 공부였다. 관계 형성에 비하면 공부는 얼마나 쉬운가? 얼마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그 노력의 크기만큼 결과가 돌아온다. 스스로 컨트롤함으로써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신의 영향력을 비대하게 인지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나다. 고로 내가 나를 고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건 내가 상황을 모두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자신에 대한 오만함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불안에 질려 통제하려고 드는 모습이기도 하다. 불안하다는 건 알 수 없는 막연함에서 오는 공포이고, 그 뿌옇고 희끄무레한, 감각할 수 없는 그 느낌을 구체화하기 위해 뭐라도 움켜쥐려는 거다. 그게 무엇이든.

 

 

 

그들은 가끔 뾰족한 포크를 들고 나타난다


 

여기서 나오는 '그들'은 그룹 상담을 함께하는 이들을 가리킨다고 느꼈다. 화요일 오전에 하던 그룹 상담을 시작으로 3개까지 그 개수가 늘어났으니까. 그룹마다 구성원도 다르고, 분위기도 제각각이다. 고로 가벼운 농담을 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던 첫 번째 상담과는 전혀 다른 상담에도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수한 가면을 쓴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 말투도, 행동도, 표정도 조금씩 달라진다. 누가 더 좋고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드러내는 정도와 표현이 다른 거다. 처음으로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그룹에 들어간 크리스티는 우호적인 느낌이라곤 하나 없는 90분의 시간을 겪는다. 실제로는 그 정도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크리스티가 어렸을 때 겪었던 은근한 따돌림이 그때의 공포를 이곳으로까지 확장했을지도.


다른 상담도 함께 하고 있던 마니가 이 상담에서는 자신을 쳐다도 보지 않고 뚱하게만 굴고 다른 내담자와 살벌하게 싸우기까지 한다. 크리스티에게 갈등이란 공포스러운 존재다. 불쾌하고 불편한 경험으로 자신을 꾹 누르고 있다가 일순 모든 걸 터뜨렸고, 언제나처럼 상담의 마지막은 서로 포옹이나 악수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내가 자기한테 화를 낼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요. 알잖아요."

아니, 사실 그건 몰랐다. 전혀 몰랐다. (195)

 

 

사랑은 이모지에 있을 법한 선이 매끄럽고 광택 넘치는 형태가 아니라, 여러 갈등을 통해 울퉁불퉁하고 꺼칠꺼칠한 표면이다. 그 사실을 크리스티도, 이걸 읽는 나도 처음 느껴보았다. 모순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고 오히려 동시에 존재할수록 친밀함이 깊어진다는 것.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 드러내고, 요구하고, 조율하고, 맞춰 가는 게 관계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어느 쪽이 진짠지 어떻게 알아내죠?"

"계속 모습을 드러내세요."

"어디에요?"

"어디에든." (212)

 

 

 

계속 떠들 수 있게 놔두는 것


 

이 챕터에 다다를 무렵엔 독자들이 지루함을 못 견딜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티는 언제나처럼 일하고, 그룹 상담에 가고,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해서 그룹 상담 일원에게 연락하고, 조언과 위로와 채찍을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으니까.


여전히 크리스티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을 사람을 만나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했다. 이걸 지켜보는 입장에선 답답함이 치솟을 수밖에. 충분히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왜, 계속, 턱없이 부족한 선택지가 전부라고 여기는 것인지. 이 답답함은 독자만 느낀 것이 아닌지 그룹 상담에서 한결같이 적나라한 반응을 보이던 맥스가 자기 연민에 빠져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은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크리스티에게 한껏 반박했다.


크리스티는 물었지. 자신이 불쌍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맥스는 손쉽게 늘어뜨렸다. 시카고에서 큼지막한 회사에 다니는 변호사이고, 심화 그룹으로 진급도 했고, 자신의 망가진 부분을 살펴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열심히 알아보는 중인데 뭐가 불쌍하냐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다면, 불쌍히 여기지 말고 화를 내야 한다고. 그게 훨씬 더 낫다고.


맥스의 말을 듣고 크리스티는 아무 말 않는다. 다만 생각을 했다.

 

 
나는 맥스를 계속 쳐다보면서 숨을 쉬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맥스의 눈에 비치듯 바라본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295)
 

 

이 질문이 크리스티에게 아주 중요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듯 얼마지 않아 크리스티는 자신이 그토록 어려워하던, 골칫덩이 문제라고 하던, 친밀한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깨닫는다.


 
친밀한 관계란 이렇게 만드는 거였다. 말 한 마디, 또 한 마디. 이야기 한 자락, 또 한 자락. 놀라운 사실 하나, 또 하나를 나누며. (301)
 

 

이렇게 간단했다. 드러내고, 주고받고, 나누고. 그가 겪은 일들 중에 문제랄 건 없었다.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며 숨기고 움켜쥐려 한 게 문제라면 문제지. 크리스티는 드디어, 제 손으로 저와 맞지 않는 관계를 끝냄으로써 자유로워지기를 택한다. 물론 자유의 과정에 완전히 통달한 건 아니다. 그룹 사람들과 로젠 박사를 통해 위로와 조언을 받는다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내 평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나는 괜찮았다. 충분히 괜찮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427)
 

 

비로소 크리스티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기 자신'이라는 몫만 껴안기로 했다. 누군가를 만나 평생 반려자로 삼아야 삶이 안정적이고 아름다워지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고 몇 번이나 실패하고 무너져도 괜찮다고. 충분히. 거의 500페이지에 가까운 글들을 읽고 나니 문득 이야기의 초반부와 후반부를 비교해 보고 싶어졌다.

 

 
죽음에 대한 계획도, 방법도, 실행할 날짜도 없었다. 하지만 치통처럼 지속적인 불안이 느껴졌다. 죽음이 나를 낚아채주기를 수동적으로 바라는 일은 정상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는 어딘가 삶을 그만 두고 싶어지는 데가 있었다. (19)
 
 
나는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그 네 개의 방을, 심실을, 심방을, 판막을, 대동맥을 보호하고 있는 칼집이 난 표면을. (467)
 


여기까지. 상처를 가리는 데에 급급했던 매끄러운 표면이 삐걱거리며 요동치고, 이윽고 쿵 쿵 쿵 쿵 일정한 소리를 내며 강하게 뛰기까지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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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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