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프터썬, 기억 속 당신에게 [영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완벽히 사랑할 수 있을까
글 입력 2023.02.1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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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이를 돕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주려던 것을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오롯이 이해할 순 없어도 오롯이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1992년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출작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두고 목사인 아버지는 이같은 연설을 한다. 죽음을 끌어안을 순 없지만, 사랑을 마음에 끌어안고 살아갈 순 있다고. 

 

영화 <애프터썬>은 반대로 어린 날의 튀르키예 여행을 그리며, 딸 소피가 아버지 캘럼을 추억한다.

 

 

 

캠코더에 담긴 것



캘럼의 예상과 달리 여행지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침실은 잘못 예약되어 침대가 하나밖에 없고, 일부 객실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풍경이라곤 삭막하기만 하다. 캘럼은 소피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소피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와 함께여서, 혹은 방학이 끝나기 전 마지막 며칠을 외국의 휴양시설에서 보내는 것이 만족스러워서일 수도 있다. 마음껏 아빠와 함께 포켓볼을 치고, 음료수나 과자를 까먹고, 수영하다가 저녁엔 작은 파티를 벌이는 것. 아이에게 최고의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캘럼은 소피만큼 즐거워하지 못한다. 즐거워할 수 없다. 그의 마음속에서 도사리는 어둠이 자꾸만 그를 행복에서 끌어내린다. 어린 소피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웃다가도 자꾸만 우울해지려는 아빠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하고 싶은 것인지 자꾸만 장난을 친다.

 

소피는 캠코더로 아빠와의 대화를 녹화한다. 즐거움을 포착하려는 소피만의 방식이다. 소피의 캠코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캘럼은 그렇기에 화면 밖의 그보다 더 밝다. 그가 괴로움에 지쳐있을 때 소피가 캠코더를 들자 캘럼은 촬영을 거부한다. 그래서 결국은, 아빠와의 튀르키예 여행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기록물인 캠코더에는 행복한 아빠만이 등장할 뿐이다. 조금 우울한 장면이 찍히기야 했겠지만, 몇 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몇 초. 찰나의 시간. 어린 딸이 포착할 수 있는 아버지의 우울은 그 정도다.

 

캠코더 밖에서, 소피의 시야 너머에서 괴로워했을 아버지의 모습을 아이는 알 수 없다.


 


사랑은 가장 위대한 존재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사랑을 노래한다. 블러의 tender, R.E.M.의 Losing my Religion, 프레디 머큐리와 데이비드 보위의 Under Pressure. 당시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들이자, 영화의 주제를 포착하는 곡들이다.

 

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사랑은, 그러나 결코 완벽한 모습이 아니다. 애프터썬에선 다양한 사랑이 등장한다. 이혼했지만 여전히 서로를 아끼는 엄마와 아빠, 여행장에서 만나 풋내기 사랑을 경험하는 청소년들과 어린이들, 또 남몰래 숨죽여 입을 맞추는 성소수자들. 조금 닳은 구석이 있다가도, 폭발적이기도 하고, 또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다.

 

소피는 캘럼을 사랑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꼭 필요한 무언가를 줄 순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랑은 위대하다. 어린 날 부모님이 자신의 생일을 잊어 속상했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다가 아빠에게 서프라이즈를 하는 소피를 보며, 캘럼은 돌아와 속에서 삼켰던 울음을 터뜨린다. 그것이 기뻐서일지, 마지막 순간이기에 슬퍼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캘럼의 인생에서 그 한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순간이었에 틀림없다. 사랑은 사람을 흔들어 놓고야 만다. 마치 위대한 자연이 선사하는 재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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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밉고, 보고 싶고.



소피는 여행 중 캘럼에게 말한다. 누가 어디에 있더라도 같은 태양 아래에 있으니 아무렴 좋다고.

 

딸과의 여행 마지막 날, 캘럼은 아이를 웃으며 마주하곤 반대편으로 쓸쓸히 멀어진다. 화면이 전환되고, 소피는 성인이 되었다. 소피의 곁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기가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또 다시 화면이 회전한다. 아버지의 멀어지는 뒷모습이 보인다. 문을 열고,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시커먼 곳으로 캘럼은 걸어간다.

 

더 이상 같은 태양 아래 설 수 없게 된 아빠를 그리며 소피는 화내고, 울고, 그를 꼭 껴안아준다. R.E.M.의 Losing my religion을 부르면서도 그 가사가 무슨 뜻인진 정확히 알지 못했던 아이가, 이젠 그 뜻을 알아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애쓰는 것을 들은 줄 알았는데, 그래서 당신을 그렇게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게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자괴감. 그리고 홀로 괴로워했을 아버지를 할 수만 있다면 구해주고 싶은 절박함. 그리움.

 

영화가 끝나면 마치 옛날의 꿈을 꾼 것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가족, 애인, 혹은 말이 없던 학창 시절 친구부터 밉던 그때 그 사람까지. 여전히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어쩌면 조금 더 미워지고 원망스러워지기도 한 이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끼고 사랑하니 한 번 다시 보고싶다고, 그렇게 말할 기회가 찾아오길 조금은 바라게 된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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