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당신의 카메라

글 입력 2023.02.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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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 높은 삶을 살다 보면 가끔씩은 놀라울 때가 있다. 좋아하는 작가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거나, 친구가 만드는 노래가 내 취향에 꼬옥 맞아 춤을 추고 싶어진다거나, 너무나도 멋진 시를 쓰는 사람과 한 주제에 대해 공감하며 웃을 수도 있다거나, 그런 꿈같은 순간들.

 

최근에는 아프고 아쉽지만 어렵다고도 느껴왔던 현상과 양태를 카메라 필름에 담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본인의 시선을 사진에 투영해 타인에게 보여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뮤지엄한미에서 일하고 있는 박민호라고 합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으세요?

 

뮤지엄한미는 원래 한미사진미술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작년에 이름이 바뀌었어요.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이라는 점을 말씀드리려고 이런 얘기를 덧붙였네요.

 

저는 미술관 교육팀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미술관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진 교육에 대한 일을 중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강의하지는 않고요 (웃음)

 

 

언제부터 사진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이 질문은 정말 제가 살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예요.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 오늘도 받았네요.(웃음)

 

사실 사진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익숙한 매체잖아요. 아마 사진에 관심 없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로 어느 특정한 순간에 관심이 생겼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제가 가졌던 많은 관심분야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처음 사진을 찍은 때는 언젠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전혀 특별한 경험도, 기억도 아니에요. 주위에서 사진 안 찍는 사람 보신 적 없으실걸요, 아마? 누구든 이 질문받으면 제대로 대답하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에디터님은 처음 사진 찍었던 날이 기억나세요?

 

 

그러게요. 기억 안 나죠.(웃음)

 

사진이라는 매체가 정말 애매한 것 같아요. 사진은 카메라라는 특별할 것 없는 기계가 생산한 이미지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돌려서 말씀드렸지만 이 얘기를 한 이유는, 저 역시 ‘처음 사진을 찍어봤다’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을 기억해보면 자연스럽게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떠오르거든요. 특별할 것 없어요. 고등학교 때 처음 가졌던 카메라 달린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가족이랑 다 같이 사용하던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본 기억보다요.

 

 

어떤 사진들이었는지는 기억나세요?

 

그것도 모르겠어요. 아마 싸이월드에 올린 평범한 사진들 아니었을까요.(웃음)

 

 

본인이 생각했을 때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 사진을 처음 찍은 건 언제일지 싶어서 질문드렸어요.

 

음, 아무래도 졸업 전시를 준비할 때인 것 같아요. 아시듯이 사진을 카메라로 찍는다고 전부 작품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글도 써야 하고, 느낌에 걸맞은 인화지도 선택해야 하고, 프린트 크기도 정해야 하거든요. 액자도 제작하고 온갖 부가적인 과정을 거쳐야 작품이 나오는 건데, 그런 과정을 졸업 전시 준비하면서 처음 겪었어요. 작품은 달라요. 위 과정이 지나고 결과물이 나오면 뭔지 모를 감동 같은 게 밀려와요. 조금.(민망)


 

사진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긍합니다.

 

대학교 입학 선물로 부모님이 DSLR 카메라를 사주셨어요.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대학교에서 사진 동아리 활동도 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사진은 단순히 취미 생활이었고요.

 

사실 사진 찍는 것보다 다른 재밌는 게 더 많았어서 사진을 업으로 삼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러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이 제 인생을 이렇게나 바꿔놨네요.(웃음) 그 사진은 제목도 없는 보도사진이었어요. 한창 유럽 난민에 관한 뉴스가 쏟아질 때였는데, 기사들을 읽다가 본 사진이었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그 사진을 들여다봤는지도 모르겠네요. 사진의 힘을 그때 실감하고 압도되었던 것 같아요. 수백, 수천 자의 글자보다 그 사진 한 장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고, ‘내가 찍는 사진들도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내 사진이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들이 들었던 순간이었고, 이게 사진을 하게 된 계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포맷변환][크기변환]계기.jpg

copyright. @Reuters

 


좋아하는 타인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이 있다면?

 

노순택 작가의 ‘얄읏한 공’ 시리즈를 좋아해요. 수년 전 평택 미군 기지 건립과 현지인의 갈등을 담아낸 작품인데, 사회적 현상을 기록하면서도 작가만의 시선을 담아 너무 재미있게 표현한 시리즈예요. 평범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작업도 이렇게 보여줄 수 있구나, 느꼈어요. 이 사람은 정말 천재다, 하는 그런 느낌. 아직도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 중에 이보다 재미있게 진행된 작업은 보지 못했고요.

 

그리고 저도 사회적 현상을 보여주는 작업을 했었어요. 을지로가 ‘힙지로’로 바뀌는 현상을 담아내고 싶어서 3년 동안 매일같이 을지로 구석구석을 누볐습니다. 결국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대한 얘기예요. SNS의 유명세를 타고 가속화되는 이 현상을, 마찬가지로 사진을 통해 얘기하는 작업이었어요. “새로 생기는 힙한 카페의 옛 자리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흔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흔적을 아무도 모르게 지우고 있다.” 이 얘기가 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잘 전달되지는 않았네요.(웃음) 지금 돌이켜보면 작품이 좋았다기보다는 작업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내가, 혹은 내 사진이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의미 있지 않을까요.

 

 

[크기변환]을지금속.jpg

을지로15길 24 을지금속, 2019

 

 

지금은 정확히 어떤 분야에서 활동 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사진 전문 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처음 가졌던 꿈과는 조금 다른 길이네요. 처음에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찍은 사진을 통해 제 생각을 전달하고,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조금은 늦은 나이에(웃으며) 사진 분야로 전공을 바꾸고 사진 작업도 했어요. 에디터님이 관심 가져주셨던 그 작업 맞아요.

 

사진을 전공하면서 많은 한계를 느꼈어요. 스스로도 변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작가라는 사람은 생각과 감정을 전달했을 때 그에 대한 공감을 받지 못하면 꽤나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좋아서 시작한 일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웃음) 그때 생긴 오기로 미술과 사진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은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있네요. 근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제가 했던 작업이 많이 부족했다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재미있어요.

 

 

일을 하고 계신데, 일 끝나면 남은 하루는 어떻게 보내세요?

 

예전에는 운동도 하고 독서 모임도 나가고 여러 활동들을 했었는데, 나이도 들고(웃으며) 게을러지니까 아무것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날이 풀리면 다시 운동을 해볼 생각입니다. 요즘엔 오버워치에 재미를 붙였어요.(민망) 사진보다 더 좋아했던 게 게임인데, 이건 평생 못 끊을 것 같네요. 여담이지만 고등학교 때 프로게이머를 꿈꾸기도 했었어요.

 

 

오버워치 재미있죠.(웃음) 그러면 사진 관해서 질문 하나만 더 드릴게요. 앞으로 몸담고 싶은 분야가 혹시 따로 있으세요?

 

저는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게 너무 큰 복이라 생각해요. 수만장의 작품, 수천권의 사진집이 있는 공간에서 다양한 평론가, 작가들과의 생각도 공유할 수 있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스스로도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저를 보여주고 싶어요. 사진에 대한 글도 쓰고 작업도 진행할 거예요. 그떈 조금 더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결국 제가 있고 싶은 분야는 사진이네요.

 

 

[크기변환]창.jpg

 


결국엔 사진이네요. 좋은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는 결이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릴게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요. 불안함이 생길 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 어렵다는 걸 계속 느껴요. 도망가고 싶고, 회피하고 싶고. 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자주 가지는 요즘인데, 나부터 나를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려는데 매번 생각보다 참 어렵더라고요. 이건 앞으로도 평생 느낄 감정이지 않을까 싶어요. 좋은 방법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요 에디터님.(웃음)

 

 

저도 저를 믿고 스스로에게 의지하느라 요즘 애를 많이 먹고 있어서요. 그냥 두 눈 부릅뜨는 것 말고는 딱히 말씀 드릴 방법이 없네요.


이렇게 뜨면 되나요?(눈을 부릅뜨며)

 

 

그렇게 둘 다 힘내는 걸로 해보죠.(웃음) 다음 질문드릴게요. 언제가 가장 행복하세요?

 

‘가장’이라는 단어는 빼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를 찾기보단 뭐든 좋아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이런저런 순간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취하는 친구와의 술자리도, 나를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을 마주하는 시간도, 바람 좋은 날 낯선 동네를 걷는 것도 다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나만은 못 고르겠어요. 너무 감상적인가요. 먹고, 자고, 스킨십 하는 것도 행복해요.(웃음)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진 것에 만족하는 태도나 생각이요. 하루하루 고마운 것들이 너무 많아요. 옛날 이야기인데, 군 복무를 공군에서 했거든요. 4월 어느 하루는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에 활주로 옆에서 산책을 잠깐 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랄까요.(웃음)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군 생활 중의 하루가 아니라 탁 트인 공간을 홀로 걸을 수 있는 날이구나 생각했어요. 그 마음이 요즘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돼요.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고 느낀다면 모든 순간이 나에게 축제 같은 시간으로 다가와요. 그래도 군대는 다시는 못 갑니다.(웃음)

 

 

아무래도 그건 힘들죠. 그럼 그런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준 것은요?

 

조금은 민감한 부분이지만, 어렸을 때 생활이 많이 가난했어요.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지방에서 경제생활을 하셨고, 어머니도 하루 종일 장사를 하셔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집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좁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었는데, 어린 마음에 현실을 많이 원망했어요. 그때 스스로 버틸 수 있도록 찾은 방법이 지금의 가치관으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 해요.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부모님도 같은 마음이셨겠죠. 조금은 민망하네요.(웃음)

 

 

얘기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래 같이 있지 못했어도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되셨으니 상당히 뿌듯하실 것 같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스스로에 대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굳이 꼽자면?

 

생각해 보면 많은 부분들이 있겠지만 요즘 들어 부쩍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제 생각이나 가치관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는 점이에요. 누구나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건데, 머리로는 알지만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관여하게 되는 나쁜 버릇이 있어요. 각자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꼰대는 되기 싫어요.(웃음)

 

 

마지막으로 과거나 미래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게 어느 순간이든 아무 말 없이 꼬옥 안아주고 싶어요.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 가지는 생각들 전부 틀리지 않았으니 스스로를 믿어보라는 마음을 담아서요. 그리고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그렇게 안아줬으면 좋겠네요.

 

 


 


하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알고 뚝심 있고 끈기 있게 몰입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사모하는 나는, 이 사람이 훗날에도 23년 2월 지금의 그를 꼬옥 껴안을 수 있도록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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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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