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만의 씨앗이 발아할 수 있도록 –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다

그림에서 나로 이어지는 내면의 산책
글 입력 2023.02.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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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 가면 작품을 보는 것인지 눈치를 보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마치 클래식 공연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익숙지 않은 음들이 오가고, 선뜻 이해되지 않는 감정선 속에서 무언가를 반드시 느껴야 할 것만 같고, 노래가 끝나면 과연 박수를 쳐도 되는지까지 고민하게 되지 않는가. 전시장과 클래식 공연장 모두 조용하게 참가자의 몰입을 돕지만, 때론 그 분위기만으로 멀리 달아나버리게 하는 것 같다.


 

“어떤 그림에 마음이 끌리나요? 눈길이 머무는 그림이 있다면 내 마음을 점검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저자 김선현은 그림 감상이 익숙하지 않고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그림은 어떠한 감정을 품고 있고, 그것에 끌린 이에게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감정에 따라 집중되는 그림이 다르며, 어떤 그림에 끌렸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내면의 감정을 포착한 셈이다. 김선현은 이런 독자에게 더 구체적인 상황과 이야기를 제시하며 그림과 긴밀히 연결 짓는다. 


저자는 특히 ‘사랑’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현상들에 집중한다. 남녀 간의 로맨스적인 사랑이 주된 예시인데, 사랑의 형태가 무수하듯 반드시 남녀 연인 관계에서 국한된 해석과 몰입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이성애가 아닌 사랑, 친구와의 사랑, 물질과의 사랑, 관념과의 사랑, 살아있는 것으로서의 사랑, 어떠한 것이든 자기만의 사랑을 대입해도 무방하다. 사랑은 짧은 길이의 단어지만, 결코 단순하게 해석될 수 없는 여러 감정을 근원적으로 이루고 맞물리게 하는 매개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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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랑의 시작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네 부분으로 나눠 그림들을 소개한다. 자신이 속한 지점마다 방점을 찍는 부분이 달라질텐데, 어느 지점이든 그 과정을 천천히 밟을 수 있도록 그림과 심리상담을 결합한 점이 돋보인다.


그림마다 할당된 두 장 분량의 짧은 이야기엔 상담의 처음-중간-끝이 명료하게 반영되어있다고 느꼈다. 여기엔 자신이 겪고 외면하고 방치했거나 용기 있게 맞섰던 감정과 경험들이 나열되어있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공감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 또한 가득하다. 

 

이야기의 길을 따르면서 사랑에 얽힌 어려움, 형언할 수 없는 마음, 들키기 싫은 마음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도록 도와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그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려주는 동시에 사랑 입문서이자 지침서이자 안내서와 닮았다. 사랑이 필요할 때. 어려울 때, 좋아서 꼭 간직하고 싶을 때 길라잡이처럼 꺼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과정에서 '나'와 그림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을 고정적으로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전후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표정과 손짓의 미묘한 감정을 생각해보고, 이내 나를 대입하게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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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은 나는 초반부의 그림과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은 ‘신뢰’라는 감정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이 문장을 보며 사랑한다는 건 신뢰하고 선택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시 말해 특정 대상을, 그로 인해 변할 나를 감당하기로 선택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 대상의 말과 행동과 감정을 어느 정도 믿어버리면서.


그렇다면 결국 어떤 조건과 상태이든 그 존재를 품에 들이기로 한 자기 선택이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이고, 관계를 가꾸려는 노력과 믿음이 이를 지속시킬 뿐이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이기에 남이 왜 나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의심 역시 걷어도 좋겠다. 그게 어떤 이유일진 모르겠지만, 그 대상을 사랑하기로 한 고유의 생각을 존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저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집요하리만큼 ‘나’에 대해 질문하고 그 가치를 역설한다. 나의 상태, 나의 감정, 나의 선호를 문답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다른 존재를 향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아마 수많은 상담 경험을 통해 ‘나’가 아닌 ‘다른 것’의 기준에 따르는 무의식적인 강박이 고통의 시작임을 포착했을 것이다. 실체조차 알 수 없는 틀에 맞지 않는다고 자신을 탓하는 관행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남들이 통상적으로 따르는 기준에 맞지 않는 존재를 비난하고 배제하는 건 절대불변의 진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다양한 가치를 담지 못할만큼 그 기준이 협소하고 편협하다는 가능성을 드러내는 셈이기도 하다. 마이너라고 손가락질 받는 그들이 기준의 허점을 인식하고 개선하고 확장할 여지를 보여주는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기준에 맞지 않는 ‘이상한’ 존재로 치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존재에 맞지 않는 ‘이상한’ 기준이라는 역방향적인 시선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들.


그들의 고유한 목소리가 더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목소리에 지지의 손길을 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결국 영문도 모른 채 불안에 떨고 있는 수많은 '나'를 해방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이 책도 그런 작업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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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사랑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에게 맞추고 배려하며 ‘이타심’ 넘치는 사랑을 하기 이전에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미루지 마세요.”

 

 

사랑 앞에선 왠지 곧잘 망설이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의 시작, 진행, 끝 모든 과정에서 말이다. 어디에서든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저자는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한 자기만의 케렌시아를 마련해준다. 충분한 휴식과 시간 속에서 용기를 얻고 어디든 나아갈 수 있다고 북돋는다. 

 

흔히 사랑을 글로 배웠다는 말은 누군가를 조롱하기 위해 쓰인다. 사랑 안내서이기도 한 이 책은 그 조롱을 조롱하는 것 같다. 글로써도 훌륭히 사랑을 배울 수 있다고. 사랑을 배우는데 형식은 무관한 듯하다. 말 그대로 사랑이지 않은가. 사랑 앞에 우리는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괜찮을 것 같다. 자기에 대한 사랑이라면 더더욱.

 

펜을 들고 그림에, 글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덧대어보길 바란다. 자기 흔적을 남기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이 책을 자기만의 사랑 전시장으로 꾸며보는 것이다. 이 책이 다양한 사랑을 담을 수 있는 하나의 일기장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모습 그대로 미움받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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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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