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넌 아주 멋진 어른이 될 거야." [공연]

뮤지컬 <로빈>, 우주를 물들이는 환한 빛
글 입력 2023.02.1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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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에는 뮤지컬 <로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캄캄한 밤, 나는 웅크린 채로 생각했다. 이렇게 자라고 싶지 않았어. 눈이 부을까 싶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누군가에게 속을 토로하지도 못했다. 노래 한 곡을 틀고 노랫말에 마음을 기댔다. "넌 아주 멋진 어른이 될 거야." 그는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걸까? 뾰족해진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어떻게 그걸 확신할 수 있느냐며 이런 말을 듣는 '너'를 질투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싶었다. 이 말 한마디가 탐이 나서, 나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크기변환][크기변환]뮤지컬 로빈 포스터.jpg

 

 

 

시놉시스


 

여기는 우주, 지구의 방사선 피폭을 피해 도착한 행성 위의 벙커 안.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천재 과학자 ‘로빈’은 낭만을 사랑하는 딸 ‘루나’와 시시각각 부딪치고 그럴 때마다 이들을 보필하는 ‘레온’은 어쩔 줄 몰라 한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토록 기다리던 지구로부터의 귀환 신호를 받던 날, ‘로빈’은 자신이 일주일 후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구로 떠날 수도, 우주에 남을 수도 없는 상황. ‘루나’를 위해 ‘로빈’이 중대한 선택을 하며, 우주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을 준비한다.

 

 

 

"복제품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다는 걸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연속된 기억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면, '인간 로빈'과 '뉴빈'과 '뉴빈의 복제'는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루나는 어쩌면 아버지가 조금 더 잘 웃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란스러워하는 뉴빈을 보자. 뉴빈과 뉴빈의 복제, 인간 로빈은 정말 같을까? 만약 인간 로빈이 진짜라면, 루나를 사랑하는 뉴빈은 가짜일까? 그렇다면 루나를 사랑하는 뉴빈의 마음도 설계된 것에 불과할까? 그의 감정과 마음은?

 

뮤지컬 <로빈>은 정체성의 문제를 이렇게 다룬다.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그들이 맞닥트리는 내적 갈등과 혼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뉴빈은 자신이 복제된 존재임을 깨닫자, 인간 존재가 갖고 있는 고유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로빈은 생명의 위기와 정체성의 붕괴 속에서 루나를 떠올린다. 그는 자신을 '복제 인간'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로 정체화한다. "아빠는 단 한 순간도 아빠가 아닌 적이 없었어." 그는 깨닫는다. 그리고 루나에게 말한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 아빠 마음." 인간 로빈과 뉴빈, 그리고 뉴빈의 복제는 모두 DNA도 신체적 특징도 기억도 동일하다. 그들은 루나의 시선에서 볼 때 '아빠 마음'을 가진 '아빠'라는 점에서는 같은 사람이지만, 각자 고유한 자신의 마음을 품은 다른 존재다. 뉴빈은 혼란스러워하지만 끝까지 루나를 생각하고 딸을 위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복제된 뉴빈을 위해 기억을 남기기로 한다.

 

로빈은 루나의 생일날 초콜릿 케이크를 사 가겠다고 말한다. 뉴빈은 루나의 생일도 초콜릿케이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뉴빈은 루나를 위해 음성녹음기를 남긴다. 뉴빈의 복제는 지구로 떠나는 순간 뉴빈이 생일 선물로 받은 루나의 소설책과 고깔모자를 기억하되 챙겨가지는 않는다. 뉴빈의 복제는 눈송이를 처음 보고 그것을 향해 루나와 함께 인사한다. 초콜릿케이크에 대한 추억, 루나의 소설책, 고깔모자, 눈송이는 그들이 모두 나(로빈―아버지)이되, 고유한 ‘나(인간 로빈, 뉴빈, 뉴빈의 복제)’일 수 있도록 고유성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남겨두거나 가져가지 않음으로써 그들 고유의 기억―추억(자아의 중심이 되는)을 존중해준다.

 

 

 

"잊지마, 너도 내 소중한 아들이야."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사람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선으로 표현한다면 면이 될 만큼 관계란 사람 수의 배수만큼 많을 것이다. 가족은 인간이 가장 처음 맺는 관계이자 속하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집단이다.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개인화되면서 우리 주변 가족의 형태란 참 다양해졌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의 형태는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찾는다. 대개 ‘가족’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마 부모와 자녀, 4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일 것이다. 우리는 이를 ‘정상 가족’이라고 여기며 다른 형태의 가정을 배척해왔다. 사람 수만큼 관계는 많고, 가족의 형태도 다양할 텐데, ‘정상’적인 형태란 어디에 있는 걸까? 단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형태를 ‘정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덧붙여 수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맞는 걸까? 우리는 어쩌면 허상의 틀에 우리를 꿰맞추고 다른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는 두 사람을 보필하는 로봇 ‘레온’이 등장한다. 레온은 수다스럽다는 이유로 버려진 구형 모델의 로봇이다. 시스템 종료 직전 로빈은 레온을 집으로 데려와 이름을 지어주며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뉴빈은 인간 로빈의 부탁을 꿋꿋하게 지켜온 레온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며 “잊지마, 너도 내 소중한 아들이야.”라고 말한다. 이는 뮤지컬 <로빈>의 특별한 점이다. 로빈의 가족은 비인간과 인간 주체가 구성한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형태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여러 형태의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가장 기본적인 집단인 가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극은 ‘정상 가족’이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진 세상에서,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가족의 형태를 실제 무대 위에 올려 관객의 눈앞에 다양한 가족 형태의 실물 모델을 제시한다.

 

 

 

"모른다고 외면치 마요. 눈을 보며 진심을 말해요."


 

가족은 가깝기에 상처입히기 쉽고, 가깝지만 어렵기도 하다. “미울 때도, 싸울 때도, 참을 때도, 다 퍼주고 싶을 때도” 있다. 작품은 아빠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루나와 사춘기 딸을 여전히 어린 아이 대하듯 대하는 바람에 갈등이 생긴 로빈을 보여준다. 낭만을 사랑하는 루나와 현실적인 로빈은 시도 때도 없이 부딪친다. 루나는 효율의 세계에서 무용한 문학을 함으로써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세계를 알아간다. 두 사람은 서로 달라 부딪치지만 기록하길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가족은 함께 살기에 오히려 서로의 세계를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타인은 다른 존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대하지만, 가족은 가깝기에 다른 존재라는 걸 잊고 더 함부로 대하기 쉽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 충분히 다를 수 있고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서로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한다.

 

 

 

"그리고 잊지마, 널 사랑해줘. 네가 찾는 빛은 네 안에 있어."


 

로빈은 어둠을 무서워하는 딸 루나에게, 캄캄한 우주 공간을 환하게 물들이는 빛을 선물한다. 루나의 소설 속에는 주인공 ‘솔라’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날개를 선물한 ‘새’가 등장한다. 새가 바보 같다고 말하는 루나에게, 로빈은 나침반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한다. 흰 새와 솔라는 로빈이며, 솔라는 루나이기도 하다. 자세히 짚어보자면, 흰 새는 로빈, 그리고 이후의 뉴빈, 솔라는 뉴빈이자 복제된 뉴빈이 아닐까 생각한다. 로빈은 혼자 남을 딸을 위해 자신을 복제하여 루나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로빈은 이후 기억을 레온을 통해 뉴빈에게 넘겨준다. 뉴빈은 복제된 뉴빈에게 자신이 겪을 혼란을 겪지 않도록 기억을 다 남겨줌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생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빛을 선물 받은 루나는 더는 어두컴컴한 밤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두려워한다 해도, 밤하늘을 밝히는 북극성을 보고 나아갈 길을 헤아리던 옛사람들처럼 뉴빈이 보여준 빛을 기억하기에 이를 나침반 삼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두려울 때는 자신의 안을 들여다봄으로써 기억 속 아빠가 보여준 빛을 보면 된다.

 

나는 선한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세상에는 인간의 험악한 본성을 밝혀내는 이야기보다 선한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한 이야기는 사람 사이 신뢰를 회복시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거나 상처입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아픈 이를 돌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돌봄을 통해서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만약 우리 본성이 추악하다고 해도, 세상이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인간人間이니까. 만약 앞으로 이 슬프고 불행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선함을 상상하고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살아가는 것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선한 이야기란 로빈이 보여준 빛과 같다. 누군가가 상상해낸 선한 이야기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언젠가 꼭 힘들 때 찾아볼 수 있는 빛이 되리라고 믿는다. 언제나 사람이 이야기보다 먼저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선한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선의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히 뛰어갈 필요 없어. 너의 호흡으로 걸으면 돼."


 

‘웃으며 안녕’, 을 부르는 로빈의 눈빛을 떠올린다. 이제 그 눈빛을 떠올리는 것은 나를 통해서 가능하다. 내 마음을, 기억을 들여다봄으로써, 나는 따스한 빛을 만날 수 있다. 빛은 내 안에 있다.

 

넌 아주 멋진 어른이 될 거라고, 로빈은 아주 따스한 눈길로 노래한다. 질투는 눈 녹듯 사라지고 어딘가에 이런 믿어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쩐지 나는 아주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과 우주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깜깜하다는 거야.” 루나처럼 말하곤 하던 나는 이제 우주 같은 내 마음속에 선한 이야기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그 빛을 들여다보며 나의 호흡으로 걸어나갈 차례다.



[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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