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 [도서]

글 입력 2023.01.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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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 이 책은 19세기 비혼 여성이자 익명 작가에서 로맨스 소설의 여제로 자리 매김한 위대한 작가의 사생활을 품위 있게 보여준다. 그녀가 살았던 스티븐턴, 바스, 윈체스터에서 보낸 편지들과 당대의 풍경과 문화를 그린 삽화를 가득 실었다. 제인 오스틴의 모든 순간의 편지 72통을 소개한다.

 

 

파스텔 색 하늘과 초록색 정원을 그려놓은 표지는 제인 오스틴이 그녀의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한 데 소포로 묶어 넣어둔 선물 봉투 같았다.


편지라. 그것도 종이에 직접 적은? 내 기억 상 가장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써준 편지는 4년 전 어떤 학생에게 써 준 것이었다. 계산적이지 않고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이었던, 같은 비행기 옆자리에 앉아 여행의 처음과 끝을 같이했던 학생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대강, 그 친구의 성격을 칭찬하고 혹시나 스스로 그 모습을 잊는 때가 오더라도, 넌 한때 내가 본 학생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카카오톡으로 편지의 답장을 받았었다. 답장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딱 봐도 장문으로 눈에 들어온 글들을 보고는 오, 좀 감동받았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내가 좋은 기억이 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의 마음이 고마웠다.


제인 오스틴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제인의 편지는 이때까지 봐온 편지 중에 가장 길고,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보다가 한번은, 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오히려 긴 대사 같다 느꼈을 정도였다. 좋아하거나 의지하는 상대에게 곧장 답이 오면 신나고 설레고, 우다다다 있었던 일들을 말하기 바쁜 그 기분이 느껴졌다.

 

이 느낌을 확신하게 된 건 그녀의 편지 속에도 담긴 말을 보고서였다.


 

이제 난 편지 쓰기의 진정한 묘미가 뭔지 알게 됐어. 그건 늘 상대에게 말로 하던 걸 고스란히 종이에 옮기는 거야. 그러니까 난 이 편지에서 최대한 빨리 언니에게 이야기하는 중인 거지

 


편지를 써 내려간다는 것보다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는 것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건 나 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느끼고 있구나 생각해서 귀엽고 웃겼다. 다부지게 말하는 느낌도 들어서 더욱. 제인 오스틴의 편지에 담긴 이런 매력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마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내킹턴으로 갔어. 우리가 어떻게 나눠 탔는지 맞혀 봐. 난 모자나 보닛을 쓰지 않아서 의자에 앉는 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어.”, “이상한 굉음이 나서 놀랐어. 그래서 창가로 가보니 느릅나무 두 그루가 넘어지고 있는 거야!!!!! 그게 다가 아니야…(중략)”


제인의 편지를 보면 몰입감이 있어 답장 쓸 맛이 날 것 같았다. 지금 같으면 바로 핸드폰을 들고 “그래서, 그래서?”란 말로 되받아쳤을 텐데. 편지를 통해서 가족을 좋아하는 마음과 일상을 자세하게 공유하려는 가치관과 ‘차분한 성격에다 인생의 사소한 부분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살피는(81p)’ 그의 성격을 견주어 상상하다 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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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독특하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이자 나의 즐거움이야. 넌 네 몸무게만큼의 금화 혹은 새로 나온 은화만큼 특별해. 넌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분별력이 있고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며 슬프면서도 쾌활하고 자극적이면서도 흥미로워. 너의 근사함과 환상적인 취향, 모순적인 감정의 변화를 따라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넌 아주 특별해. 그리고 항상, 아주 완벽하게 자연스럽고 너만의 독창성이 있어 다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아!" -249p


제인 오스틴이 사랑하는 조카 패니에게 쓴 편지 중 일부이다. 경탄스러울 정도로 멋지고 예쁜, 자존감을 높이면서도 이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느낄만한 말들의 연속이다. 되려 제인 오스틴에게도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가 쓴 편지들도, 모두 그의 눈으로 보고 생각한 독창성 넘치는 ‘제인 오스틴만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편지 덕에,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의 독창성, 개인이 가진 개성을 마음 깊이 예찬해본다. 나와 모두 역시, 그런 존재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저런 아름다운 말을 기억해 잠시 지칠 어느 때, 내게도 해주고 싶다.


일상을 공유했던 기록들로 그때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고, 한 작가의 시야를 감상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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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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