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쟁을 막자, 저마다의 전쟁을 상상하며 - 원청 [도서]

저마다의 전쟁을 상상하며
글 입력 2023.01.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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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서사를 떠올리면 <삼국지>밖에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그에 관해 무지하다. 어린이가 읽기 편한 만화 버전의 삼국지였음에도 인물과 서사와 분량이 상당했던 기억만이 또렷하다. 그래서인지 <원청>을 실물로 마주했을 때 조금 당황했다. 익숙하지 않은 중국 서사의 소설인데다가 마치 삼국지를 한 권으로 압축해 놓은 듯한 600여 쪽의 두께를 가진 책이기 때문이다. 


두려움(?) 속에 첫 장을 넘기고 한 챕터를 넘기고 또 넘기면서 괜한 기우를 가졌음을 알았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덮을 수 없는 스스로를 계속 목격했으니 말이다. 위화의 쉽고 간결한 서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아내는 여러 군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삶은 그저 정해진 시대의 운명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시대 앞에서 개인은 무력할 수밖에 없을까?’ 두 질문에 매료되어 읽기 시작한 <원청>은 나만의 다른 질문들을 품게 했다.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대답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의지와 관계없이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마련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완벽한 답을 내놓은 것도 그럴듯한 방향을 찾아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끝은 저마다의 지점으로 향하고 있음을, 그것이 바로 나와 인간의 형상이 아닐까 곱씹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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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느꼈다. 처음엔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로맨스적 관계, 이후엔 전쟁 속에 얽힌 수많은 관계다. 소설은 ‘린샹푸’라는 인물로 서막을 연다. 그의 삶에 느닷없이 나타난 ‘샤오메이’는 어쩌면 예고 없이 찾아와 멋대로 삶을 어지럽히는 얄궂은 운명과 같았을지 모른다. 강력한 운명에 엮이면서 그의 삶은 예측 불허한 궤도에 올라가게 된다. 


상처를 안기고 삶을 흔들어놓고 결국 자신을 떠나간 신기루 같은 샤오메이에게 린샹푸가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맹목적으로 샤오메이를 쫓으며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샤오메이를 경유하여 떠오른 숱한 질문에 전부 대답하지도, 끝내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작은 해답을 던지며 삶을 지속하는 린샹푸의 모습은 보편적인 인간상을 대변하는 것 같다. 어떠한 것도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무언가에 이끌리는 것, 그 불안함 속에서 삶을 계획하는 것은 기이하면서도 왠지 납득이 가는 모습이었다. 

 

린샹푸라는 일반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전쟁 소설이 되어 있다. 한 인간도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만큼 강력할 수 있음을 목격했는데 전쟁이란 상황은 그야말로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시대의 운명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전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차분한 서술 속에서 장강명의 추천사에 절로 공감했다.


“나 혼자 '위화적인 순간'이라고 부르는 시간들이 있다. 너무 재미있고 뒤가 궁금한데, 갑작스럽게 가슴이 미어져서 책장을 잠시 덮고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시간. 원청에는 위화적인 순간이 무척 많았다. 책장을 덮고 눈을 감았다가, 인물들의 운명을 알고 싶어 다시 펼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전쟁이라는 절대적 잔인과 무기력 속에 인간이 만들어 온 윤리의 선은 얼마나 낮아지는가. 실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이기도 하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각종 매체를 통해 자극적인 소식에 점진적으로 물들고 있는 현재다. 슬프게도 그것에 익숙해지면서 애써 지키고 늘려왔던 윤리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 지를 보고 있으면 무력감이 든다. 그래서일까. 엄청난 흡인력으로 글자를 읽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것을 쉬이 넘겨도 되는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잔인해지지 않기 위해” 다시금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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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누군가 입에 담지 못할 고통을 겪을 때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의 존재들에겐 어떤 시간이 흐르고 있을까 상상하게 됐다. 누군가의 역사 속에 그 시간은 전쟁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시간에 누군가에겐 전쟁과 같은, 실제로 전쟁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섬찟함이 들었다. 


한편으론 나의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엔 무엇이 있을까 질문하게 됐다. 비록 남은 보지도 못하고 공감하지도 못할 수 있는 전쟁에 투쟁하는 삶이 외롭고 공허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사실이 어쩌면 나만의 삶을 증명하는 확실한 명분이 되어줄 거란 아이러니한 기대도 피어났다.


모두에게 저마다의 전쟁이 있다면 각각의 삶은 그것에 저항하고 버티는 삶이기도 하다. 그리고 분명히 서로의 전쟁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 속에서 우리는 혼자만의 쓰린 고통을 함께 승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타인의 전쟁을 상상하고 인지하려 한다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마을과 개인을 무너트린 잔인무도한 토비를 죽이자는 아들의 말에 천융량이 고개를 저으며 한 말을 고민해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절대 안 돼. 우리는 사람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구하려는 거야.” 각자의 전쟁을 이해하고, 삶의 적절한 목적을 상기하고, 지나치게 잔인해지지 않는 관용의 여유를 찾을 때 전쟁의 불꽃은 점차 사그라들 수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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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펼쳐진 샤오메이 중심의 서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을을 덮쳤던 전쟁의 속성과 영향을 인지한 채로 샤오메이의 시선을 따라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었다 . 이는 한 여성인 동시에 보편적인 여성이 겪는 '전쟁'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들이 매일을, 매 역사 속에서 겪는 전쟁은 전쟁이라고 명명되지 못한 채 그 처절함만이 쌓여만 갔을 것이라고 보았다.


한 존재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직간접적인 폭력과 멸시에 노출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약자의 삶은 전시 상황의 속성과 매우 유사하다. 엄청난 비극의 전쟁과 나란히 병치 되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여성, '약자'라 일컬어지는 자의 삶은 가히 전쟁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실제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여성’의 ‘전쟁’은 보통의 삶에서 크고 작게 벌어지고 있었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쟁이 아닐 때도 그러하지만, 실제 전쟁 속에서 그들은 이중의 ‘전쟁’을 겪는 위치에 존재한다. 이는 같은 상황과 맥락 속 사건이 사회 속에 처해있는 위치에 따라 다른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의 서사와 역사는 다르게 서술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보라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김보라 감독은 전투신은 전쟁과 가장 멀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쟁은 전투가 끝난 일상에서 시작되는 것, 일상의 폐해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류에서 다뤄지지 않은 여성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볼 때 우리의 서사가 새롭게 쓰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물음과 논의를 통해 결국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전쟁'을 막는 게 아닐까. 그 방법을 고안해본다. 어쩌면 그 시작은 각자의 전쟁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필요한 것은 개별적 전쟁이 맞물리는 공동의 영역을 찾고 손을 맞잡는 행위일 것이다. 서로 다른 삶에서 비슷한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를 집요하게 묻고 드러낼 필요가 있다. 거기서 드러난 사회적으로 다른 위치의 위계를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인식의 경계를 확장해야 할 것이다. 


이 간결한 문장이 한 줄 한 줄 실현되기까지는 엄청난 양의 투쟁의 역사가 필요함을 인식하고자 한다. 자신의 전쟁을 마주하고 기꺼이 타인의 전쟁에 함께하는 용기가 나를 이끌어줄 수 있음도. 그것이 우리가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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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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