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대와 개인 - 원청 [도서]

글 입력 2023.01.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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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읽은 위화의 소설은 『허삼관 매혈기』였다.

 

그저 국내 개봉한 영화 <허삼관>의 원작이 중국 소설이라는 말을 듣고 읽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가벼운 의도와 달리 위화의 소설은 읽었다가 무겁게 책을 덮게 되는 힘이 있었다. 가족을 위해 매일 피를 뽑는 인물이 주인공이라니.

 

뒤이어 읽은 위화의 『형제』 역시 강력했다. 문화대혁명부터 자본주의 중국까지의 두 인물을 그려낸 소설은 잔인할 만큼 섬세했다. 그의 소설을 연달아 읽으면서 신작을 내내 기다렸다. 『원청』의 국내 출간 소식에 나는 당연히 『원청』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도시


 

『원청』은 소설의 도입부가 강력하다.

 

첫 문장이 “시진에 사는 그 사람은 완무당을 소유하고 있었다.”라는 『원청』은 ‘그 사람’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뒤이어 그가 강한 북방 억양으로 언어를 구사하고 젖먹이를 안고 젖동냥하러 다닌다고 서술한다. 그의 과거가 궁금해지는 요소로 독자에게 호기심을 부추긴다.

 

아이는 왜 엄마가 없는가. 그는 왜 고향을 숨기는가. 왜 “집을 통째로 옮긴 듯한 봇짐”을 들고 내려왔을까. 과거 정착하지 못했을 것 같던 그는 어찌 완무당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찾던 ‘원청’이란 도시는 어디일까. 도입부만으로 소설은 독자들이 무수한 호기심을 키운다.

 

 

[크기변환]캡처2.JPG

 

 

주인공인 ‘린샹푸’는 그 호기심을 무수히 키울 수 있는 존재이다. 전형적인 피해자형 인물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호감 표현도 못 했고 샤오메이의 욕망도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아내 샤오메이의 진짜 정체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수동적인 인물이다.

 

결국 아내가 그를 두고 도망갔다가 임신하여 다시 돌아왔을 때도 별다른 말 없이 그를 믿었으며 다시 도망칠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 않았다. 결국 아내를 찾으러 고향을 떠날 때조차 아내의 고향을 ‘원청’이라 믿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도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원청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청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이 허구의 도시 덕분에 인물이 행동하고 변할 수 있었던 계기라는 점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린샹푸가 원청이라 믿은 곳은 시진이었고 결국 그는 시진에서 정착했다. 심지어 샤오메이가 있던 곳은 시진이 맞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포기하지 않고 원청을 찾으려고 했던 린샹푸의 인생은 미련해 보이기도,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자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시대와 개인


 

위화의 소설의 큰 특징은 인물이다.

 

그의 작품에서 개인은 사회를 개혁하는 지도자나 정의감으로 불타오르는 인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주 보통의 존재를 주목하여 이를 활용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허삼관 매혈기』의 경우 가족을 위해 매일 피를 뽑아야 하는 가장을, 『형제』에서는 두 형제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을 끌어냈다.

 

개인은 본인의 의지로, 혹은 주변 환경으로든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 한다. 위화의 소설은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 하는 인물을 그려낸다.

 

 

원청_띠지 표1.jpg

 

 

『원청』의 주인공 린샹푸는 고지식한 인물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굳이 비단 천을 두고 가며, 원청을 찾는 도중에 실수로 성매매 여성과 마주쳐도 돈은 두고 도망갈 만큼 미련한 남성이다.

 

위화는 이 어리숙한 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 주위를 둘러싼 사회를 면밀하게 보여준다. 소설 중반부에 딸의 약혼식과 토비들의 납치, 잔혹한 고문, 그리고 문란한 약혼자와 달리 딸은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움과 정숙을 강요받은 것 등 여러 장면을 소설 속에 녹여낸다.

 

이들을 지켜보자면 『원청』은 장편소설이지만, 어떠한 부분도 군더더기라고 느낄 인물이나 문단이 없는 아주 치밀한 소설 같다. 특히나 린샹푸의 딸은 소설을 읽을수록 린샹푸의 자식이 아들이 아닌, 딸로 설정한 이유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이야기


 

『원청』을 읽을수록 점차 기대치도 높아지면서 결말을 읽고는 의아했었다. 허무나 허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정체를 모르는 아내를 찾기 위해, 다시 단란했던 가정을 찾기 위해 고향을 등진 남자가 맞이하기엔 단순하면서도 해결되지 않은 기분 때문에 복잡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뒤이어 ‘또 다른 이야기’로 샤오메이의 삶을 서술하면서 그 당황스러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린샹푸는 결국 샤오메이가 자기와 같이 시진에 있었다는 걸 끝까지 모르지만, 샤오메이는 린샹푸와 딸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린샹푸보다 먼저 비극적인 결말에 맞이했으나 오히려 샤오메이와 린샹푸에게 걸맞은 이야기였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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