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원청 - 잃어버린 도시와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들

글 입력 2023.01.1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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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_띠지 표1.jpg

 

 

오래간만의 위화의 책을 읽었다. 아는 작가고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를 신청했는데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어느 부분은 얼른 지나갔으면 했고 어떤 때는 읽는 것만으로도 속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근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을 의도한 게 아니라서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니까.


이야기는 린샹푸가 돌도 되지 않은 딸 린바이자를 데리고 시진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황허 북쪽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린샹푸는 혼인할 때를 놓치고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런 린샹푸의 집에 어느 날 아창이란 남자와 샤오메이란 여자가 방문한다. 어딘가로 향하던 두 남매가 잠깐 린샹푸의 집에 들리게 되었는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진 샤오메이는 남고 아창만 예정대로 떠난다. 린샹푸는 샤오메이에게 마음을 줬으나 샤오메이는 린샹푸의 재산을 가지고 떠났다. 그러다 부른 배를 하고 린샹푸에게 돌아왔지만, 딸아이를 남기고 다시 소리 없이 떠났다. 린샹푸는 아창과 샤오메이가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말한 ‘원청’에 가면 샤오메이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갓난쟁이 딸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난다. 시진은 원청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곳이었다.

 

북쪽에서 온 린샹푸는 마찬가지로 외지에서 시진으로 온 천융량의 도움을 받게 된다. 샤오메이를 찾아다니는 동안 백여 집에서 젖동냥했는데 천융량의 집도 같은 이유로 방문하게 되었다. 린샹푸 부녀는 청융량 부부의 도움을 받게 되고, 목공 솜씨가 좋은 린샹푸는 천융량과 목공소를 세워 시진에 자리를 잡는다. 


린샹푸는 원청을 찾아 시진을 지나 더 남쪽으로 갔었지만 두 사람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단 생각에 샤오메이의 고향을 시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둘이 사용했던 말투와 샤오메이가 신었던 것과 같은 나막신이 시진에 있었기 때문이다. 둘이 시진 사람이라고 생각한 린샹푸는 언젠가 둘이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빈집 수리를 도맡게 된다. 샤오메이를 놓치지 않고 알아보기 위해서.


하지만 이야기는 북쪽 도련님이 남쪽에 터를 잡고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내용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시대 초기에는 토비라는 무장 강도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 도적질이 아닌 약탈, 학살, 살인, 납치를 서슴지 않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한다. 린바이자가 토비에게 납치될 위기에 처하자 천융량의 아내 리메이례는 딸처럼 키운 린바이자에게 큰일이 생길 걸 우려하여 큰아들 천야오우를 대신 인질로 보낸다. 이야기는 천야오우의 이야기를 통해 납치 피해자들을 고문하는 토비의 모습을 그려낸다. 토비는 몸값을 받기 위해 천야오우의 한 쪽 귀를 잘라 천융량에게 보내고 천야오우는 한쪽 귀를 잃은 채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야기는 토비와 시진의 민병대 이야기로 이어진다. 시진의 상인회 회장인 구이민은 시진을 지키기 위해 군인 출신의 단장을 데려와 민병대를 조직한다. 시진에는 천야오우를 비롯하여 토비에게 잡혀갔다가 한쪽 귀를 잃고 돌아온 19명의 피해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민병대가 되었고 원수와 싸워 이겼다.


꾸며낸 이야기라면 이대로 시진이 평화를 찾으며 해피엔딩을 맞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듯 이 소설에서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죽을 만큼 힘들었으며 누군가는 죽음 같은 고통을 견디고 복수를 다짐한다. 이야기의 결말은 그들이 겪어온 험난했던 일상의 어느 하루로 마무리된다. 

 

*


이 이야기에 악인이 등장하지만 악역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린샹푸를 생각하면 누군가는 샤오메이를 나쁜 여자라고 할 수 있고, 누군가는 토비를 욕할 수도 있겠지만.

 

샤오메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본인이 선택이 아닌 남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샤오메이의 행동으로 린샹푸는 상처를 받았고 린바이자는 엄마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샤오메이가 누군가의 딸일 적에 샤오메이는 입을 덜기 위해 일찍이 집 밖으로 나가야했고 그녀의 거처는 늘 그녀를 보호해주지 않는 어른이 정해주었다. 그녀가 본인 의지로 한 일은 임신한 걸 깨닫고 린샹푸에게 돌아가 딸을 낳아준 일이었고, 린샹푸에 대한 죄책감에 그를 위해 기도를 올린 일이었다. 

 

토비의 약탈과 학살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한 세상을 살다보면 자동발생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토비가 되지 않고도 먹고 살았다지만 그들은 토비가 되지 않았으면 굶주리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생존을 향해 나아간 방향이 그르다고 다그칠 수는 없고, 그들의 악행만이 처벌과 비난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토비는 원수고 적이고 악인이지만, 토비에게 있어서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래야만 하는 곳이었으니까. 

 

원청에는 오늘의 생존이 내일로 이어지지 않는 삶이 등장했다. 그저 최소한의 생존을 바라던 사람들이 얼어 죽고 물에 빠져 죽는다. 도적 떼에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하고 부패한 군인 앞에서 비굴해야 하지만, 이들이 지옥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샤오메이는 린씨 가문의 대를 이어주고 싶다며 배의 아이가 딸이라면 아들로 바뀌었으면 해서 늦은 밤 미신을 따랐고, 엽전을 들고 젖동냥하는 린샹푸에게 문을 열어준 사람의 수는 백 명이 넘고, 토비의 인질로 잡혀간 사람들은 서로의 연대가 되어주었고, 내가 살아남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 이웃이 있다. 정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 심어져 있었다.


소설 초반에 린샹푸의 목공 스승이 목공에는 세부 분야만 있을 뿐 빈부귀천이 없다며 장식공, 소품목수, 손잡이 목수, 톱장이 등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분야에도 전문가가 있고 모두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준다. 나는 이 부분이 이후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가진 이웃이 아니고 그저 주인공의 관련인물이 아니라 소설을 채우는, 저마다의 쓰임새를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조각들. 그 조각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우리’를 만들고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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