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이한 향수 - 마리아 스바르보바 : 어제의 미래

글 입력 2023.01.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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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가 좋은 감정으로 다가올 때는 어떤 때일까?

 

나는 원래 향수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돌아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그리워해야 한다는 점이 싫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의 주된 감정은 '향수'다.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어떤 향수에 잠겼고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그 때로 돌아갔다. 한 줄기 빛이 얼굴에 내리던 그때의 냄새, 그곳의 습도. 그것은 내가 진실로 겪은 경험 마냥 생생하게 느껴졌다.

 

피사체가 외국인인 것과 배경이 외국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리아가 만든 '향수'는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채 오로지 '향수'라는 감정만 남는 것.

 

 

공간.jpg

 

 

우리가 특히 마리아의 작품에서 향수를 강하게 느끼는 이유는 그녀가 고향인 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공산주의가 종식되었을 때인 1989년에 태어났지만, 1989년 이전 슬로바키아의 일상 속에 이미 녹아있는 공산주의 요소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만드는 향수는 기이하다. 그녀의 향수에는 본인이 직접 겪은 것이 아닌 어른들에게서 들은 과거의 삶, 그리고 공산주의의 흔적에서 끌어온 요소들을 미래 지향적인 감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가 섞인 작품.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퓨트로 레트로'  혹은 '어제의 미래 '라고 부르기로 했다.

 


퓨처레트로.jpg


 

그녀의 작품은 공간과 인간의 관계가 두드러진다.

 

어떤 의미를 의도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닌 그 관계가 뚜렷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래서 때론 작품의 모델들이 인형 같기도 하다. 잘 만들어진 인형의 집에 살고 있는 인형. 그들에게는 자아가 없는 공허한 눈이 요구된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개인의 개성을 죽인다. 어쩌면 마리아가 그리워하는 공산주의 시대의 한 부분이 이런 식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싶었다.  자아가 없던 과거와 자아가 없을 미래가 섞인 작품들.


그녀의 작품들에는 복고풍과 미래풍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향수와 함께 따라오는 슬픔을 피할 수 있다. 향수에 잠겨 슬퍼했던 이유는 돌아가기 힘든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절히 섞인 미래풍은 우리에게 이 아름다운 광경을, 이 분위기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준다.

 

 

 

스위밍 풀 시리즈


  

마리아의 대표적인 컨셉인 [스위밍 풀 시리즈]는 수영장의 건축과 완벽하게 직선적인 라인, 아름다운 자연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이 시리즈는 다른 무엇보다도 색깔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그 색깔들은 바로 빨강, 파랑, 노랑이다.

 


Windows, 2016.jpg

 

 

수영장을 보고 있자니 흥건한 타일을 밟는 소리, 알록달록한 수영모들, 소독약 냄새가 전해졌다. 또다시 우리는 노스텔지아에 빠진다. 직선이 많은 수영장에서 느끼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 그 간결함. 그리고 큰 공간의 여백에서 오는 자유로움에 매료되고 만다.

 

그러다 문득 작품들에 여성 모델이 다수임을 포착한다. 바로 이 [걸 파워 시리즈]는 희망, 여성의 화합, 연대의 힘을 상징한다. 이들의 뒤로는 하얀 배경에 빨간색 글씨로 쓰여 있는 다이빙 금지를 의미하는 "Zakazskakat"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마리아는 수영장과 같은 자유로운 공간에도 제한이나 금지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기 전 느꼈던 묘한 위태로움은 수영장 속 자유로움은 결국 규범 안에서만 이뤄지는 제한된 자유였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결국 눈에 보이는 자유로움에 속아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규범이 없는 곳에는 자유가 없다. [스위밍 풀 시리즈]는 억압이 있어야지만 이뤄지는 고차원의 자유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View, 2019.jpg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마리아의 [로스트 인 더 밸리 시리즈]는 스위밍 시리즈의 본질을 사막으로 옮긴 듯하다.

 

건조한 사막에서 복고풍의 옷을 입은 채 포즈를 취하는 모델. 이는 마리아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제작한 프로젝트인 만큼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서 인간과 환경의 관계로 확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현대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풍경을 담고 있다. 여러 가지 관념들이 공산주의 소품과 복고풍의 복장 등 사회적 기반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향수는 우리에게 공감각적 심상을 통해 작품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어제의 미래'라는 역설에 열광한다. 이는 겪어본 적 없는 과거를 추억하는 기이한 향수다. 우리는 조작된 기억임에도 찬란했던 과거를 통해 쓸쓸하고 고요한 현재를 잠시 잊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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