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로소 찾아간 김초엽 세계 - 글리프 6호 [도서]

글 입력 2023.01.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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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드디어. 글리프 6호. 김초엽 작가 덕질 아카이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를 앞둔 일주일은 한 해를 가득 채운 날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먹고, 자고, 숨 쉬는) 생활을 하지만 분명 다른 감성을 지녔다. 예쁜 포장지로 하루하루의 선물을 포장하다가 남은 자투리 같다. 여전히 예쁜 모습이지만 필요를 설명하기 애매한 그런 싱거운 시간.


작년과 올해 사이를 채우는 날에 친구와 약속을 만들기도 하고, 그런 감상적인 여유 없이 바쁘게 보내기도 한다. 연말에는 나라는 한 사람 말고도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부분이 정리하는 시간이니까. 아무튼 나는 작년 연말을 김초엽으로 채우기로 마음먹었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처음 보는 덕질 콘텐츠로 만났다.


김초엽 작가를 만나는 대표적인 방법은 당연 그가 쓴 책과 인터뷰 자료를 읽는 것이다. <방금 떠나온 세계>를 미리 읽고 있던 건 그를 맞이할 나만의 준비였다. 한국 문학의 미래를 이끌 젊은 작가인 그를 영상에서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은 다양한 매체에서 기록해두고자 하고 카메라 앞에 등장하는 순간도 잦기 때문이다. 가장 고난도 방법은 실물로 만나는 것이다. 이건 김초엽 작가도 나도 같은 때에 시간을 내야 해서 실현하기 어려운, 하지만 성공하면 여운이 가장 오래 남는 방법이다.


<글리프 6호 - 김초엽>은 그중 첫 번째 방식으로 그를 만난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글리프>는 비범한 잡지이기 때문이다. '작가 덕질 아카이빙 잡지'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기에 포장부터 함께 온 '모의덕력평가 문제지'까지 비상하게 마니아 분위기를 풍긴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처음 '문제지'를 보았을 때 생각보다 더 굉장한 것이 왔구나 싶어서 당황스러움과 깊은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애정하는 사람들의 글: 에디터,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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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의 방식에는 비평가가 대상에게 기본 전제, 논리적 원리, 표현방식, 구조의 측면에서 아쉬움을 느낀 부분을 밝히는 것이 있지만, 좋았던 부분에 집중하여 분석한 경우도 비평에 해당한다. <글리프>는 후자의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엠디랩프레스(M.D.LAB.PRESS)가 <글리프>를 제작하기 시작한 이유도 문학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더 깊이 즐기고 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글리프>는 김초엽 작가 책을 애정하는 독자인 엠디랩프레스 네 명의 에디터가 전하는 '좋아하니까 더 깊이 알고 싶은 세계'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같은 글을 읽고 각자에게 인상 깊었던, 관심 있게 알아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정 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행성을 누비는 이야기의 배경,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회에서 꿋꿋이 때론 유연히 살아가는 개인적 서사를 지닌 소설 속 인물, 그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의미 있는 변화에 대한 감상은 그의 소설을 다시금 선명하게 떠올리는 시간을 만든다.


에디터 외에 자신의 일상 속에서 김초엽의 시선을 적용하고, 김초엽 세계관에 대한 분석이 담긴 독자들의 글도 수록되어 있다. 책을 읽고 난 이후 좋았던 감상을 나만이 간직하지 않고 타인과 나누면, 내가 느낀 '좋음'의 감정을 더 강화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좋음'을 마주할 경우 새롭게 채울 수도 있다. 특히 '좋아함'이라는 따스하고 적극적인 태도는 타자에게 너끈히 전달되는 에너지를 지녀서 서로가 공유하는 관심의 영역을 넓혀준다. 이런 점에서 <글리프>는 '아트인사이트'와 콘텐츠의 결을 함께 한다.

 

 

 

<글리프>의 특별한 점: 독자 설문, 아카이빙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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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 비평과 이 잡지가 분명하게 달랐던 점은 김초엽과 그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이 그대로 담긴 '우리가 사랑한 김초엽' 독자 설문과, '아카이브 : 김초엽'으로 꼼꼼히 저장한 기록이다. 처음 책을 받고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가볍게 훑어보는 과정에서 대단히 눈에 뜨인 부분이기도 하다. 두 영역은 '글'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편집된 모습부터 다르다. 독자 설문은 자유롭고, 아카이브는 색다르다.


독자 설문 | 제목부터 '우리가 사랑한 김초엽'이다. 그의 글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든 사람이라면 먼저 읽고 싶은 내용일지도 모른다. 나랑 같은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과 장면은 무엇인지,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혹여나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덕질 아카이빙'이라는 이름에 알맞은 하트(♥)를 발견하면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머릿속으로 나의 답을 정하다 보면 답변을 작성한 독자들과 친밀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아카이브 | 덕질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덕질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 순간이 있다. 누군가 영상과 사진 위주로 시각적 자료를 수집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면, 같은 마음으로 누군가는 대상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덕질 대상이 작성한 글과 인터뷰 위주의 정보적 자료를 정리하며 기쁨을 느낀다. 두 방식 모두 즐겁지만 시각적 자료보다 정보적 자료를 보기 좋게 정리할 때 더 대상을 깊이 좋아하게 된다. <글리프> 에디터들이 얼마나 꼼꼼하게 사랑으로 잡지를 준비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영역이다.

 

 

 

글리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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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설문 답변 중 사랑(♥)이 가득한 김초엽 작가에게 쓰는 편지 면에서 짧지만 강력한 한 문장이 보였다. "같은 시대를 살아서 행복해요". 한국에서 주류 분야에 속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생소하게 여겨졌던 SF 장르가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새로운 작품으로 쓰이는 시대에, 김초엽 작가는 독자들에게 믿고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든든한 존재이다. <글리프>를 기획한 에디터들의 말처럼 김초엽 작가의 작품 세계가 더 확장된 후 김초엽 2.0, 3.0으로 더 이야기 나눌 수 있길 소망한다.

 

이번이 6호인 만큼 <글리프>는 2019년부터 5~8개월 간격으로 다양한 작가를 다루며 꾸준히 발간되어 왔다. 창간호의 주인공인 정세랑 작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구병모, 김금희, 강화길, 정유정 그리고 김초엽 작가의 아카이빙이 이루어졌다. 잡지는 펀딩 사이트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펀딩이 끝난 이후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독립서점에서 찾을 수 있다(품절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관심이 생긴다면 빠르게 구해야 한다).

 

<글리프 6호>를 모두 읽은 후, 언젠가 새로운 프로젝트로 다시 찾아올 엠디랩프레스 펀딩 페이지에서 후기를 읽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리프> 구매자의 멘트에 고개를 자연스레 끄덕였다. "다들 글리프 하세요!!". 235쪽에 불과한 가벼운 책이지만 그 속에 담긴 김초엽 작가를 향한 애정에 마음 다해 공감하고 나니 나에게는 제법 무거운 존재가 되었다. <글리프>가 지금까지 발간된 시간 흐름을 계산해 보니 곧 새로운 작가의 아카이빙 자료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뜬 기분이 든다. 앞으로 글리프 하는 사람이 사람이 많아져서 엠디랩프레스 에디터 모두 더 신나게 작업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추신.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반짝이고 소중해서 마음 편하게 책을 펴서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독서대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냥 펴서 읽어도 된다(이 말에 책을 구매할지 망설임이 생겼다면 염려 놓아도 된다). 내가 경험한 불편함은 그저 나만의 김초엽을 향한 사랑하는 방식, 김초엽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대감을 의미한다. 아! 그리고 내가 본 김초엽 덕력고사 점수는...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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