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2년을 구해낸 [사람]

글 입력 2022.12.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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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부버는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



이번 해는 보잘 것 없는 최악에서 시작했다. 모두의 언어로 말하자면, 과거라는 멍에를 기워서 메고 성공의 도장으로 스스로를 내려찍는다. 인스타에서 보이는 반짝거림에 목이 타고, 기성세대가 말하는 "좋은 삶"에 짓눌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심장은 콩알만해지는...젊은이의 불행도 써 놓고 나니 다 비슷한 모습인 것만 같다. 그런데 책 '빅매직'의 작가 엘리자베스는 두려움이 싫은 것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순환 논증처럼 돌고도는 지루한 반복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려움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고. 어떤 의미에서 이 두려움 혹은 이 무거움은 한없이 가볍다. 공기에 부푼 가방을 짊어지고 허리가 굽는 것처럼, 이렇다할 실체는 없다.


삶은 또 이런저런 이유로 무겁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어 무겁고, 끝이 보이지 않아 무겁다. 계속해서 큰 돌을 언덕 위로 올려야 했던 시지프스처럼 올라갔다 내려오고 오르고 내려오고 또 오르고. 누군가 말하길 인간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지는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때가 생기고 냄새가 나게 된다고. 그래서 자주 씻어줘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지는게 아니라고? 이 빌어먹을... 반복과 반복. 저항과 저항. 투쟁과 투쟁. 그래서 나는 언젠가 한참 우울했다.

 

삶을 조금 가볍게 보는 방법은 죽음을 잠시 빌려오는 것. 어떤 영웅의 삶이나 악인의 삶도 죽음 앞에서는 농담이나 먼지, 혹은 웃음처럼 가벼워진다. 생각해보시라. 삶이 생생할 수 있는 것, '살아있다'라는 감각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저 멀리 죽음이라는 존재의 끝이 있기 때문이지 만약 죽음이 없다면 붕뜬 시간속에 있는 것처럼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있는 것"이 될 뿐. 흔히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또렷이 보는 것처럼 죽음 앞에 서서야 삶의 윤곽, 그리고 삶에서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용기가 부족할 때마다 죽음에게 수혈을 받았다. "너는 언젠가 죽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수혈에도 내성이 생긴다. '메멘토 모리'도 한번 말해야 생경하지 '죽음' '죽음' '죽음' 너무 많이 반복하면 옷장이나 손톱, 털실 이런것에 다를바 없이 대상화된다. '그래 나는 죽는다', 그러나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것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이미 우리는 모두 죽음에 대한 낯섦을 잃어버린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리타분해진 죽음은 발을 잡아 당기는 이 존재의 끈적한 무거움, 다리가 쑥쑥 빠져버리는 이 집요한 늪에서 나를 건져낼 수 없었다. 요컨대, 아직 모르는 죽음보다는 마음 속의 두려움과 허무, 생에 대한 피곤이 더 실제였던 것이다. 죽음이 쉽게 죽어버리는 기만.

 

 

 

사람의 얼굴


 

벤야민 발터는 그의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사진이 예술의 제 1기능인 제의가치를 밀어내고 전시가치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때 제의가치는 아무런 저항 없이 밀려난 것은 아니다. "제의가치는 최후의 보루로 물러서서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의 얼굴"이다. 인간의 얼굴에는 아우라가 스친다.


나는 언젠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느꼈을 때 "당신들과의 만남을 내 이정표로 삼아야지"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고백건대, 이 문장을 썼을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이 문장을 조금 더 이해한다. 무거움과 두려움에 짓눌릴때 그 가위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재인식도 아니요, 마음을 조금 더 강하게 먹어보는 만트라도 아니요, 누군가의 얼굴들이였다. 똑같이 여리디 여린 살을 가진 그들의 담대함과 가벼움. 멀리갈 필요도 없다.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필요도 없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지금 나와 같은 시각 여기 어딘가 아주 가까이에 살아가고 있는.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를 가진 누군가들의 얼굴. 그리고 그들의 말. 나의 삶은 누군가의 얼굴, 그리고 그들의 말로 구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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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번 해를 돌아본다면 무엇을 세어보아야 할까? 답은 해마다 한결같을 것 같다. 얼굴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손끝으로 다시 만져보아야지. 


E씨의 여동생은 남다르다. 하고 싶은것은 해내고야 만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서 꼬박 1년 동안 돈을 벌고 학원을 다녀 원하던 과에 입학했다. 1년전 즈음에 졸업을 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근황이 궁금해져 E씨에게 묻자 이제는 완전히 다른 일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하던 공부는 재미가 없어졌다고.

 

이 단촐한 이야기에 돌연히 벙찐것은 쌓아올린 것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현재. 과거의 부단한 노력도 그 때마다의 현재를 위한 것이였다는, 과거로 현재를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단순한 사실의 깨달음. 이어령 선생을 인터뷰한 책 '마지막 수업'이 떠오른다. 선생은 백남준을 기억하면서였나, "예술가의 마지막은 쓰레기통"이라고 말했다. "사라져야 해. 그것을 화랑에 들이고 박물관에 진열하고 경매하고, 그건 상품이지." 삶, 예술로 살아볼 수 있을까?


작가 J씨*는 말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의 성경구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길을 잃어야 한다는 선생의 말은 깊고도 깊어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것은 용기의 과제이기도 했고, 믿음의 문제이기도 했다. 길을 잃어도 영영 미아가 되지 않을거라는 믿음, 그 거친 길에서 내 손으로 따먹는 열매, 그 열매에서 맛보는 목자의 은혜와 마침내 성숙한 탕자로 돌아올 집이 있다는 안식까지(그 집의 좌표가 설사 죽음일지라도). 그것이 눈보라치는 우주의 회오리 속에서 기어이 자기를 사는 인간의 아름답고 기구한 운명이라고 그는 가르치고 있다."

*'마지막 수업'의 김지수

 

D 씨는 말했다. 그 외교관 시험 있잖아. 내가 시험을 보라고 너한테 강요를 하거나 그랬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안하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단순하게 살면 된다.

 

S 씨는 말했다. 저는 기대가 돼요. 이 아이들이 미래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Y 작가*는 말했다. "아름다움은 삶의 과제, 즉 살아내야 할 어떤 것이였다...미학은 단지 아름다운 사물을 감상하고 이를 인지하는 작업이 아니다. 미학은 활동으로써 개입할 필요가 없는 대상의 가치에 거리를 두고 이를 판단하는 일이 아니다. 미학은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일이다"

*'중세의 아름다움'의 김율


K 교수님은 말했다. 공부하는 사람은 성공이나 누가 그걸 알아줘서 하는게 아니라 세계를 내 말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그리고 그거면 됐다는 그 마음이 있어야 돼.

 

C 할머니는 식전기도를 하며 "이 음식 앞에 떳떳이 살게하기를" 하셨다.

 

M 작가*는 말한다. "나는 그들이 허물없이 내 등을 두들기는 태도나 내 가슴을 향해 격정적으로 뛰어드는 그런 감정을 견딜 수 없다. 내게는 그들의 열정이 어딘지 빈혈 증세처럼 느껴지고, 그들의 꿈도 약간 따분하게 여겨진다. 나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기야 이제 한물 간 사람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2행 압운의 교훈시를 쓰겠다. 내가 나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어떤 것을 위해 글을 쓴다면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 '달과 6펜스'의 서머싯 몸

 

L 씨는 말했다. 이 시간이 진짜 힘들었는데 어떻게 버텼는지 돌아보니 너 덕분이였다.

 

E 작가*는 말한다. "우주는 우리 모두의 깊은 내면에 이상한 보석들을 묻어두고, 한발 물러 서서 과연 우리가 그것들을 찾아 낼 수 있는지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 보석들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 그것이 곧 창조적인 삶이다."

*'빅매직'의 엘리자베스 길버트


2022년 지독하게 시작해서 명랑하게 끝내는 중이다. Eppur si muove, 그래도 지구는 움직이니까.

 

지구가 도는 것처럼 명랑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상냥히 나에게 다가와 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산책이나 유흥, 끝없는 방랑이 다 해주지 못할 환기. 때마다 얼굴이,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어른어른한 길에 다시금 이정표가 되어주리라.

 

이렇게 우리는 muove, 움직인다. 모든 참된 삶은 정말로, 만남.

 


[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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