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실재하진 않으나 어디에나 있는 - 이국에서

글 입력 2022.11.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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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에서 우연히 <모르는 사람들>로 처음 접한 이승우를 <이국에서>로 또 만났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명확한 것이라곤 하나 없는 듯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황선호는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는 재난적 상황에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국으로 떠난다. 하늘이 투명하고 태양빛이 순수한 보보민주공화국으로 떠난 황선호는 맥주를 마시며 우연찮게(라고 쓰고 ‘운명적으로’라고 읽는다) 자신과 닮은 자를 아는 사람들을 만난다.

 

내부인이었기에 떠나야만 했던 조국과 외부인이기에 떠나야 하는 이국에서, 황선호는 여태껏 외면해왔던 자신의 기원과 욕망을 마주한다.

 

직접적인 단어 제시 없이 국가적 폭력, 재난적 상황, 정치적 공동체, 집단의 파괴성 등 역사와 현재에 대해 낱낱이 고발하는 듯한 소설로, 천천히 읽어내려가다 보면 황선호는 곧 우리 중의 아무개일 뿐임을 쉬이 알 수 있다.

 

 

 

내부와 외부, 외부와 내부


 

벽을 없애고 개방을 지향하던 몇 년 전에 반해 쌓은 벽을 더 높이고 모든 것을 내부에 두려는 경향이 팽배한 요즘, 우리는 갈수록 강해지는 내부와 외부에 대한 구분을 겪는다.

 

격리와 봉쇄, 수출 금지, 난민 수용 등 다양한 현상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분리가 작품 내에서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황선호와 그를 비롯한 외부인이 겪는 당혹감과 부당한 처우는 분명 잘못된 것이 맞으나 그다지 낯설지도, 낯익지도 않다.

 

다만 겹쳐 보이는 상황과 연상되는 요소들이 확실히 적지 않다.

 

[공간은 그의 신분을 바꾸고 그의 능력도 바꾸었다.] (173쪽)

 

[생각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것은 악어를 길들이는 것보다 어렵다.] (19쪽)

 

 

 

네가 원하는 일을 해라, 남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보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생각을 해보지 않았거나, 부러 외면하거나, 알면서도 무시하거나 등 그 이유는 다양한데, 황선호 역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종내 이국에서야 찾고 마는 황선호의 ‘원하는 일’은 조국에서 하던 일과 사뭇 다르다. 선거 유세 전략을 짜던 그가 공동체를 꾸려나가며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고 농사를 짓는다.

 

독자에게 격려 혹은 일침처럼 가해지는 저 문장은 소설 내내 등장한다. 평범하지 않은 듯 평범한 주인공은 앞서 말했듯 우리네와 다를 것이 없는 인물인데, 그런 인물을 앞세워 독자에게 남기는 작가의 말은 아닐까. 어디서든 어떠한 불행이 닥치든 빵을 찢어 먹고 가끔은 배를 굶주려도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을 살도록.

 

[무엇으로든 가득 채워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불안했으니까.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를 추동한 것은 성찰이 아니라 모방과 관성이었다.]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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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한때 이국에서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했고, 간헐적으로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현대인의 삶을 너무나도 예리한 문장으로 이야기해놓아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고 몰입이 쉬웠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수기로 옮겨 적는데, <이국에서>에서 수집한 문장은 자그마치 2쪽이나 된다.

 

잠시 현실에는 눈을 감고 다른 세계에 다녀오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주말에 혼자 읽기 좋은 책.

 

덧. 빠른 템포로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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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 없다는 건 근거가 없는 생각이었다. 그럴 리 없는 게 있을 리 있나, 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137쪽)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렵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쉬운 것이 방법이니까. 모르는 사람은 알려진 것만 방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지만 아는 사람은 알려지지 않은 것도 방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쉽다.] (173쪽)

 

[뜻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유동하는 기운들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한데 뭉쳐 구체적인 물질과 사건을 만든다고 스승은 말했습니다. 유동하던 기운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 뜻이라고 했습니다.]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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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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