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삶을 무너뜨리는 재난 속에 지워진 것들 - 박유경 저 ‘바비와 루사’ [도서]

우리 곁에 지워진 존재들을 제대로 마주하는 일
글 입력 2022.11.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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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건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그 중 어떤 유의 ‘앎’은 ‘감당’과 동의어였다.

 

- 정유정, 『완전한 행복』, 은행나무, 2021, p.195.

 

 

‘아는 것이 힘’이라는 오래된 관용구처럼 ‘아는 것’은 권력 그 자체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 어떤 ‘앎’은 불편하고 무겁다. 심지어 안다는 것만으로도 책임이 생기고, 아는 것을 마주보기까지 꽤 많은 용기와 시간이 필요한 ‘진실’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어떤 위치에 발 딛고 있든 우리는 많은 경우 ‘앎’을 감당하기보다는, 이를 외면하는 쉽고 편한 방법을 택한다. 이러한 사이 불합리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존재들도 우리의 기억과 주변에서 지워져 왔다.

 

박유경 작가의 장편소설 『바비와 루사』는 이렇게 ‘지워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미등록 이주 아동 문제와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지워졌기에 계속 반복되는 문제와 사건들을 그린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잔혹한 폭력 앞에 무력했던 트라우마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진실을 마주하고 이를 감당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는 팬데믹과 태풍 등 거대한 재난과 일상적인 폭력의 위협이 교차하는 삶과 사회 안에서, 무력함을 실감하면서도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우리의 ‘현재’와 그대로 닮아 있기도 하다. 이렇게 현재와 가깝게 호흡하는 이야기를 통해 바로 우리 곁에 분명 존재하지만 지워져 온 존재들에 대해, 또 애써 이야기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다시 제대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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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무너뜨리는 ‘폭력’이라는 재난 속에


 

소설 『바비와 루사』의 주인공 ‘현서’는 어린 시절 맡겨진 이모네 집에서 학대를 당하고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19살이 되기까지 아버지의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그런 현서에게 폭력은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이자 일상을 무너뜨리며 반복되는 재난이다.


 

거짓말하는 건 몸이었다. 몸의 상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복되고 말았다.

작고 어린 몸은 약해서 쉽게 짓밟혔다.

몸은 아이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미숙한 존재로 보이게 만들었다.

몸은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p.22.

 

 

지워진 몸의 상처만큼 빠르게 회복되지 못한 마음은 현서를 불쑥불쑥 이모네 집의 지하실로, 흔들거렸던 배 안으로 데려다 놓는다. 현서는 학대 했던 당시 함께 있었던 푸른 눈의 어린아이 ‘헬렌’을 기억하지만, 헬렌의 존재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지워지고 현서도 헬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다 현서는 ‘헬렌’과 똑닮은 아이가 헬렌과 같은 상처를 입은 채 죽은 모습을 목격하고, 그 사건의 진실을 알고자 한다.

 

소설은 반복되는 폭력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담아낸다. 다양한 위치에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폭력을 견디고 그 위협에서 살아남는다. 또한 이들은 곁에 있는 피해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이들을 외면하거나 비난하며 폭력을 방관하고 동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위치에 있든 오랜 시간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특히 두드러지는 태도는 무력함과 익숙함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폭력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어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방관자, 목격자까지 폭력이 만들어내는 힘의 논리와 불합리한 관계 안에 편입되기 너무 쉬운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가해자의 잘못이나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가 아닌 피해자의 취약함과 무력함이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하기 쉬워지고, 폭력의 고리를 끊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폭력의 고리는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의 경계를 점점 희미하게 만든다. 끔찍한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철’이 또 다른 아동학대와 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되고, 스스로의 자존심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현서가 당했던 학대를 지워버리는 방관자이자 죄책감과 열등감 뒤에 숨어 가정폭력을 저질렀던 ‘진철’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동학대와 가정폭력과 같이 사적인 관계나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곳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은 더 무겁고 끔찍한 범죄이고, 공동체 안에서 제대로 살피고 함께 논의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설 역시 반복되고 되물림되는 폭력 안에서 누구나 폭력의 가해자이자 방관자가 될 수 있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누구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힘의 논리와 질서 안에 놓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누구나’에는 우리도 포함된다. 우리는 다양한 관계와 위치 속에 포장되는 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외면하지 않도록, 또 폭력의 생존자에게 가해지는 편견을 강화하는 데 동조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삶과 사회를 무너뜨리는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건을 제대로 밝히고 알리며 합리적인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공동체 안에서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측면에서 지원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설 속에서 현서는 자신이 당한 일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기에, 또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 ‘김기운’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자신이 당한 일이 ‘없었던 일’처럼 지나갔기에, 더더욱 ‘헬렌’을 닮은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이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살피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영역과 관계들을 다시 제대로 살피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설은 ‘태풍이 지나가면 또 다른 태풍이 온다’는 말로 폭력의 되물림과 지속되는 피해를 표현한다. 물론 뚜렷한 가해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폭력과 재난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폭력을 외면하고 강화하는 구조를 함께 고쳐 나가며, 인식의 변화와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폭력의 피해를 줄이고 심지어 일정 부분은 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용기*는 피해 당사자만의 것이 아닌 폭력을 외면하고 강화하는 구조 안의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하는 몫이다. 계속되는 폭력의 현장에서도 그 뿌리까지 제대로 마주하고 살아남은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라며, 현서를 지켜보는 ‘지 형사’의 바램을 기도처럼 또 다짐처럼 놓아둔다.


 

지 형사는 이 길로 들어온 것을 후회했다. 뿌리가 뽑힌 은행나무를 보며

현서가 스스로를 뿌리가 뜯겨나가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상상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의 말이 많지 않았다.

수사관 생활을 하며 나쁜 것에 맞서면서도 예의와 품의를 지키는

기적 같은 사람을 드물게 만날 수 있었다.

뿌리가 뽑힌 은행나무를 손쉽게 치워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뿌리가 뽑힌 자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왜 아프게 되었을까 골똘히 고민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 형사는 현서가 절망보다 그런 귀한 마음을 품기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랐다.

 

-pp. 205-206

 

 

 

우리 곁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자리를 마주하는 일


 

소설 『바비와 루사』 속 과거와 현재의 여러 사건들을 연결하는 큰 축은 미등록 이주 아동 문제다. 소설 속에서도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여전히 ‘지워진 존재’가 되었던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안에서 보호 받지 못해 더욱 취약한 자리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받기 보다는 너무 쉽게 어느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는 배제와 착취의 자리로 내몰렸다. 

 

물론 한국에서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삶의 궤적은 다양하기에, 소설에서처럼 극단적인 아동학대와 착취 사건의 피해자로서만 이들을 묘사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식의 묘사에는 자칫 자극적인 소재로만 이들을 대상화할 위험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만큼 사회와 제도 안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피해에 취약하고, 피해를 당했을 때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 법무부는 2013년 12월부터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강제 퇴거를 졸업 시까지 유예하는 지침을 고등학교 재학생까지 확대 적용하기 시작했고, 지침 대상 아동의 부모는 출국 조치를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 보호 일시 해제 등을 통한 한시적 체류를 허용했다. 위 지침은 이주 아동의 교육권의 필요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위한 체류를 일정 부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행정청 내부 지침이라는 점과 제도가 일관성 있게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가 공개되지 않는 점, 미취학 연령의 아동과 학교 밖 아동, 고등학교 졸업 아동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본인이 어느 문화권에 더 익숙한지, 어떤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고 여기는 지와 상관없이 연령에 따라 혹은 제도의 변화에 따라 머무르고 있는 국가에서 추방되거나, ‘본국’으로 출국 조치된 가족들과 떨어지게 된다. 많은 시민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에서조차 배제되는 이들은 가족을 포함하여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갈 권리, 의료 서비스를 받고 학업을 이어나갈 권리, 노동 현장에서 정당한 처우를 받을 권리 등을 위협받는다. 

 

책에서는 이렇게 어느 사회에도 제대로 속하기 어려운 미등록 이주 아동뿐만 아니라, 분명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되어야 했던 많은 존재들을 그린다. 그 중에는 ‘사적인 일’로 혹은 단지 ‘잊어야 할 일’로 치부된 가정폭력의 피해자들, 익명과 군중 속에 숨은 가해자들에게 착취당했음에도 편견 속에 2차 가해 당했던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 등도 포함된다. 

 

이들의 존재는 우리 주변에 언제나 폭력과 혐오의 위협이 함께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며, 우리 역시 그것을 무기로 누군가를 해치는 존재가 되거나 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뼈 저리게 경고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우리는 지금까지 이들의 존재를 지워내며 편안한 자리에 머무르고자 했다. 하지만, 그 사이 이렇게 지워진 존재들은 더욱 취약하고 위험한 곳으로 내몰렸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의지하며 속해 있는 시스템과 연대 역시 더욱 힘을 잃고 불안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억하는 사람 앞에서 시간은 굴절한다.

흘러가 버리는 듯하다가 과거의 순간을 홱 낚아채 그때로 되돌려 놓는다.

 

– p. 219


 

그렇기에 우리 사회 안의 ‘지워진 존재들’이 되어 취약한 위치로 내몰린 이들은 더 이상 지워질 수도, 지워져서도 안된다. 외면하고 싶은 우리 사회의 일면에 다가가는 것이 감당하기 어렵고 때로는 괴로운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해도, 우리 사회의 지워진 존재들의 자리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또 다시 외면하고 싶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과거를 제대로 마주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어쩌면 소설이 너무 많은 이슈들을 한번에 담아 내려고 했다던가,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를 그려냈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가시화되지 않았던 것들을 드러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앞으로도 우리 곁의 지워진 존재들을 현실감 있게 드러내고 이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더 나아가 그 방식에 대해서도 제대로 고민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 "학대를 견디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것을 멈추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 데이비드 그리피스, '힘과 용기의 차이' 中

** 이탁건, 「미등록 이주아동의 머무를 권리: 아동권리보장의 관점에서」, 『이화젠더법학』, 제11권 1호, 2019, pp. 161-194. 참고.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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