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매끄러운 세계의 틈에서, 누수된 진실을 포착하는 작가 - 김아영 [미술/전시]

글 입력 2022.11.0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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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매끄러워지는 세계에서 불완전함, 균열을 발견하면 반갑다.


실제 세계는 사실 매끄럽지 않잖아?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에서의 주인공은 개연성 없는 ‘헛짓거리’를 통해 멀티버스의 틈을 찾아낸다. 틈, 균열은 이처럼 평행우주, 다중우주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것이기에, 매끄러운 세계에서의 균열을 마주하는 일을 내심 반가워했던 것 같다.


‘균열’을 이처럼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으로 보기도 하지만, 고쳐야 할 ‘결함’으로 보기도 한다. 사이버 세계에서의 버그는 제거되어야 하고, 과학 세계에서의 오차는 최대한 줄여야 하는 것이며, 이야기 세계에서의 개연성 없음은 용납되지 않는다.


후자의 시선은 인간이 ‘발전’이라는 구실로 추구해왔던 맥락이다. 물론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세계, 즉 자연에서는 균열 및 결함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에 대한 지식이 적어- 이 점은 차치하더라도 인간 세계에서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개연성 없는 세계이든, 구멍 없는 매끄러운 세계이든 두 관점을 기반으로 한 각 갈래는 현실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흑백으로 나누어질 수 없고, 둘의 시선은 공존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 있다. 김아영 작가의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2017)이다.

 

 


매끄러운 세계의 틈에서, 누수된 진실을 포착하는 작가 : 김아영


 

 

 

위 작품은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에 전시되었던 <다공성 계곡2: 트릭스터 플롯>의 모태가 되는 작품이다. 현시점에서 2019년 작품이 아닌 2017년도의 <다공성 계곡>을 새삼스럽게 소개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2022년 8.10 - 9.14 현대 갤러리에서 열렸던 김아영 작가의 최근 개인전 《문법과 마법전(Syntax and Sorcery)》을 관람 이후 생겨났던 질문을 전작과 비교하면서 정리하고자 함이다.


둘째, 필자가 당시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김아영 개인전의 도슨트 준비를 위해 탐독했던 자료와 도록(18년 발행)이 남아있어 2019년 작이 아닌 2017년 작을 비교 대상으로 선정했다. (도록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은 일민미술관 의 일환인 김아영 개인전 《다공성 계곡》 (2018.2.23-4.29) 전과 연계되어 발간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 관람했던 《문법과 마법전(Syntax and Sorcery)》을 감상한 이후 알 수 없는 아쉬움과 질문이 생겼고, 17년 처음 마주했던 <다공성 계곡:이동식 구멍들>의 잔상이 동시에 떠올랐다. 따라서 당시 작품과는 무엇이 달랐는지 비교하면서 김아영 작가의 작품세계를 탐구하고자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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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갤러리, <문법과 마법전 (Syntax and Sorcery)>, 2022 8.10 - 9.14

 

 

《문법과 마법전》에서 메인 세계관을 종합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은 24분의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 영상작품이다. 스크립트를 기반으로 하여 그래픽, 실사 영상 등 다양한 클립들이 콜라주된 작품이다.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2017)은 21분의 영상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픽션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작가가 자주 언급하는 ‘사변 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SF 장르에 더 가까운 듯 보인다.


본격적으로 차이점과 공통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자.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2017) 와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2017)의 주인공은 ‘페트라 제넥트릭스(이하 페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광물이자, 데이터 조각이다. 본래 살던 구멍이 숭숭 뚫린 계곡 (다공성 계곡)에서 폭발이 일어나, 페트라는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주자 데이터 센터로 옮겨진 페트라는 이주를 도와주는 남자(문지기)의 질문에 답을 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맡는다. (남자의 질문은, 호주에서 난민 심사할 때 쓰는 실제 텍스트를 참고로 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주 데이터 센터로부터 복제된 새로운 장소로 거주지를 옮기는데, 그곳에서 자신과 똑 닮은 광물, 데이터 조각을 발견한다. 이후 페트라는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시공을 초월하듯 사라진다.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는 가상도시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세계관의 한 주인공, 여성 배달 라이더 ‘에른스트 모’의 이야기이다. 이 세계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배달 플랫폼인 딜리버리 댄서 소속 라이더인 에른스트 모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품을 배달한다.


에른스트 모는 딜리버리 댄서의 AI 알고리즘 시스템인 댄스 마스터의 능력은 신처럼 영검해서, 축지법을 쓰듯 시공간을 축약하고 뒤틀어 댄서들이 빛처럼 빠른 배달을 가능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에른스트 모도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데, 어느날 자신의 세계와 완벽하게 동일한 다른 가능 세계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 자신과 완벽하게 닮은, 마치 도플갱어나 유령과 같은 ‘엔 스톰’을 만나 혼란을 겪는다. 고스트 댄서였던(라이더 계급중 최상위) 에른스트 모는 이 사태를 벗어나려 상담을 받고 엔 스톰을 피하려 노력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엔 스톰과 조우를 반복한다.

 

*


두 작품의 공통점은 가상의 세계를 배경을 하고, 주인공들은 경계에 불안정하게 서 있거나 왔다 갔다 하며, 자신과 똑 닮은 도플갱어를 만난다는 점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영화처럼 도플갱어, 평행우주,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또다른 세계 혹은 '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유효하다.


그리고 ‘균열’, ‘구멍’, ‘누수 지점’은 이 관심을 더욱 증폭시켜주는 중요한 실마리이다.


‘다공성 계곡’에서는 이러한 주제를 형식적으로나, 내용 안에 충분히 담고 있다. 영상에 ‘구멍’이 이미지적으로 노출이 되며(형식적), 서사적으로도 ‘플롯홀’이라는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는 큰 균열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공성 계곡’은 워낙 다양한 분야의 제제를 직조한 탓인지, 꿰매진 자국이 보인다. 그러나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는 꿰매진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상당히 매끄러운 편에 속한다. 전문적 지식 혹은 제작 배경에 대한 맥락을 숙지하지 않으면 (호주의 지질학, 고대 신화, 데이터 이주 등에 대한 관심으로 콜라주 된 ‘다공성 계곡’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다공성 계곡’보다 관객에게 조금 더 친절한 것은 분명하다.

 

 

 

김아영 작가가 작품에 사용하는 두 가지 도구 : 사변소설, 체험성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과연 ‘다공성 계곡’을 기점으로 하여 미술계가 아닌 영화계에 진출한 작가의 매체적 고민의 결과물일까. 혹은 그의 SF소설, 사변 소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된 결과물일까.

 

작가는 ‘다공성 계곡’에서 사변 소설의 형식을 취한 이유를 사고실험을 마음껏 밀어붙일 수 있게 하는 내러티브 장치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용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돕기 위해 작가가  ‘사변소설’에 관해서 ‘과학소설’과의 차이를 언급하는 부분을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사변소설의 성격은 때로 과학소설의 성격과 겹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과학소설이 실현 불가능한 범주의 과학적 상상을 주요 제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비해, 사변 소설은 실현 가능할 수도 있지만 벌어지지 않았거나, 현실에 깊게 뿌리 내린 소재를 우화적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종종 사변 소설에는 과학적 엄밀성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현실의 소재에서 출발한 추론적 상상 그 자체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데 그 특별함과 의의가 있다.’ ( 일민미술관,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 2018, p.25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변 소설’도 결국 ‘소설’, 픽션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런지 김아영 작품은 유독 영화적이라고 여겨지는 듯하다. 특히 이번 《문법과 마법》에서는 신체적인 체험을 목적으로 한 듯 보였다. 딜리버리 댄서들이 앱 알고리즘에 지배당하는 신체 감각을 소재로 하였으며, 웹툰 작가의 협업으로 완성된 (위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다시 돌아온 저녁 피크타임>(2022)은 관객들의 상상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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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갤러리, 《문법과 마법전 (2022)》, <다시 돌아온 저녁 피크 타임(좌)>, <고스트 댄서 B(우)>

 


‘다공성 계곡’ 시리즈 이전에 김아영 작가는 사운드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김아영 작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운드를 이용해 몸을 통해 직관적으로 체험을 전달하는 지점이, 김아영 작가의 아카이브성과 어떻게 만날지 매우 궁금하다.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 시리즈 (2014-5),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2016) 등 사운드 퍼포먼스 기반으로 하는 작품에 관해서 배명지 학예연구사가 언급한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텍스트와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하나의 내러티브로 가공, 작곡가와 안무가, 성악가 등과 협업하여 새로운 문맥의 예술 언어로 풀어내는 김아영의 다성성(多聲性)의 작업 방식은 결국 근대화 과정에서 숨겨진, 억압된, 발화되지 못한 수많은 목소리와 이야기를 끄집어내 주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2019 올해의 작가상> 김아영 페이지)

 


다성성, 독립되고 온전한 제재들이 엮여 또 다른 독립된 제재를 완성하는 것. 틀과 경계가 모호해진 사회에서 개별적 주체들이 모여, 또 하나의 조각보 같은 독립된 세계를 만든다는 점이 김아영 작가 작품의 매력이다. 한편, 허구성과 ‘사변 소설’이라는 방법론을 채택하고, 사운드 퍼포먼스를 기획한 이유 이면에는 (소격효과를 자아내는 제목이나 형식을 띰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부단히도 어떤 의도를 기필코 전달하고자 하는, 체험적인 목적이 결부되었다고 느꼈다.


 

 

관심사에 대한 집요한 조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제재를 엮어내는 조립공



《문법과 마법전》의 전시 설명 중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 왔던 모든 사실이 흔들리며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전 지구적 위기의 상황에서, 김아영의 작업은 우리의 사변적 상상을 자극하여 누락되고 잊힌 이 세계의 ‘진실’을 마주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 《문법과 마법》(2022)전에서 ‘사변적 상상’에 자극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락되고 잊힌 이 세계의 진실’을 찾아 볼 수 없었음에 아쉬움을 느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방식은 ‘다공성 계곡’ 때처럼 (집요하고 철저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제재들을 콜라주하는) 작가의 주특기가 발휘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구멍은 메워졌다.


한편 고스트 라이더 주인공 '에른스트 모'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도로를 가장 빠르게 달리는 능력자이다. '페트라 제네트릭스'처럼 이도 저도 아닌, 경계에 선 불안한 존재는 아니다. 혼종과 거대 권력의 도시 서울에 발붙이고 사는 에른스트 모는, 그래도 페트라에 비해서는 집이 있는 듯 보인다. 이방인의 생활을 끝내고 정착한 작가는 이제 물리적 경계가 아닌 가상의 경계를 탐구하고자 한다.

 

*


김아영 작가의 작품을 통해 어떠한 단일한 의도나 메세지를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균질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스타일도 아니다. 대신, 방대한 아카이빙 자료를 직조하여 ‘틈’을 벌리는 행위를 통해 현 세계의 누수된 ‘진실’을 밝히는 편에 가깝다.


이미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행위는 현실에서 늘상 이뤄지고 있다. 확실하고 매끄럽고, 모자람 없는 세계. 이 맥락과 반대급부에서 예술가들이 해야 하는 일은 따라서 자명하다. 객관적 태도를 견지한 채 세계를 관찰하면서, 균열되고 누수된 지점을 집요하게 포착해 내야 한다.


앞으로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던 작가의 소망처럼, 관심사를 충분히 소화하고 화학적으로 잘 빚어낸 정수 같은 작업을 다시한번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각주 및 참고

-도록

일민미술관,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 2018

-웹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김아영 작가, 2019 올해의 작가상 웹페이지

영화진흥위원회, 김아영 작가, 인터뷰 영상 ('다공성 계곡2: 트릭스터 플롯')

김아영 작가, 개인 웹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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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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