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우리가 잠시 겹쳐지는 하루 – 연극 ‘임지윤의 하루2’

글 입력 2022.11.0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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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임지윤의 하루>로 관객을 만났던 임지윤이 <임지윤의 하루2>로 돌아왔다. DJ유니의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의 하루’의 게스트로 초대된 임지윤은 장애·입양·여성·퀴어의 당사자성을 중심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라디오로 만나다


 

임지윤의하루2_제공 극단제이와이_ⓒ예준미 1.jpg
제공: 극단제이와이 ⓒ예준미

 

 

아무 때나 어디서건 원하는 콘텐츠를 손쉽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정해진 시간, 정해진 주파수로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매체다. 방송 시간 동안 청취자들은 실시간으로 문자를 보내며 진행자 및 다른 청취자와 소통한다.

 

진행자는 그때그때 날씨나 상황에 맞는 멘트를 하는 등 생방송이기에 발생하는 여러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라디오만큼 지금 이 순간, 내가 누군가와 같은 방송을 듣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게 느껴지는 매체는 많지 않다. 그래서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유대감은 유독 크다.


<임지윤의 하루> 시리즈는 라디오 방송의 이러한 장점을 활용한 공연이다. 연극이란 허구의 이야기를 배우의 연기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임지윤의 하루2>는 배우가 어떤 인물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무대에 선다. 다시 말해 임지윤이라는 현실의 인물이 곧 <임지윤의 하루>의 배우이자 연출, 작가다.

 

무대는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처럼 꾸며져 있다. 실제 라디오 방송처럼 공연도 진행자와 게스트가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된다. 물론 진행자인 유니와 게스트인 임지윤 모두 임지윤이 맡는다. 게스트 임지윤은 현장에서 직접 말하고, 진행자인 유니는 모니터 속 아바타로 등장해 미리 녹음된 대사를 하는 방식이다.


라디오 방송이 진행되는 과정은 연극과 닮은 부분이 많다.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관객을 만나듯 진행자와 게스트는 방송이 시작되면 대본에 따라 그날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극이 시작되면 관객은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인 동시에 라디오 공개방송을 들으러 온 방청객이 된다.

 

라디오를 들으며 평소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아주 사소한 일상을 듣게 되는 것처럼, 관객은 이 연극을 통해 임지윤이라는 낯선 사람을 만난다.

 

 

 

임지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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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극단제이와이 ⓒ예준미

 

 

공개적인 장소에서 우리가 타인의 소수자성에 대해 듣거나, 반대로 우리가 자기 자신의 소수자성에 대해 이야기할 일은 드물다. 특히 정상성의 틀이 확고하고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회에서 소수자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 취급을 받기도 한다. 여러 예술작품에서 소수자성이 다뤄지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태는 아니다. 우리는 배우나 작중 인물이 재현하는 소수자성을 보는 데 더 익숙하다.


<임지윤의 하루2>는 그 벽을 깨며 현실에 있는 임지윤이라는 사람이 1시간 동안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결혼에 대한 질문을 하는 진행자에게 연인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결혼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하고, 입양 사실을 알게 된 어느 밤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비장하거나 숨겨왔던 사실을 고심 끝에 털어놓는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가 가진 소수자성은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임지윤은 짧은 무용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축구공으로 트래핑을 해 보이며 특유의 덤덤하면서도 밝은 목소리와 스스럼없는 태도로 공연을 능숙하게 이끌어간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는 까닭은 ‘편안한 관람을 위한 공연(Relaxe performance)’을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여러 사람이 편안한 환경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고안된 개념으로, 관객석이 완전한 암전이 아닌 상태에서 공연이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공연 중 입장과 퇴장도 자유롭다. 임지윤은 공연 시작에 앞서 공연을 보다가 웃기면 소리 내 웃고 슬프다면 엉엉 울어도 된다고 말한다.

 

관객들이 작은 소리와 몸짓도 조심하며 오로지 무대에만 집중하는 기존의 공연에 익숙하다면 낯선 풍경일 수 있다. 덕분에 무대와 관객석 사이 위계는 해체되고, 관객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임지윤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상상의 지평을 넓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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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극단제이와이 ⓒ예준미

 

 

‘배리어 프리’ 방식으로 진행된 공연은 관객에게 수어 통역과 자막을 제공한다. 점자 리플렛과 큰 글자 리플렛이 마련되어 있고, 공연 시작에 앞서 임지윤이 나와 자신의 인상착의를 설명해준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여러 가지 장치를 보며 그동안의 공연 환경이 너무 당연하게 소외시키고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임지윤의 하루2>는 임지윤이라는 사람에 대한 연극이지만 임지윤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공연을 보며 자연스럽게 나와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사람들에게까지 상상의 지평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임지윤이라는 고유한 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입양아,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수자성은 중첩된다. 같은 소수자성을 갖고 있는 이들을 동일하게 여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게다가, 소수자성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는 없다. 이 연극의 제목이 ‘임지윤의 하루’인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입양아,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임지윤이 아니라 임지윤이라는 고유한 사람이 그러한 소수자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귀하다. 연극이 끝나고 각자 흩어져 자신의 삶을 살면서도 관객들은 우리의 하루가 우연히 겹쳤던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모르는 또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타인의 하루를 상상하는 힘이 모여서 좀 더 다양한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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