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보는 사회 속 나 [문학]

문학 작품을 통해 마주하는 선과 악, 사회 속 나
글 입력 2022.10.23 18: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우리의 석대는 그렇게 작아서는 안 되었다 ...(중략)... 그날 밤 나는 잠든 아내와 아이들 곁에서 늦도록 술잔을 비웠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두어 방울 떨군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게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를 위한 것이었는지, 또 세계와 인생에 대한 안도에서였는지 새로운 비관에서였는지는 지금에조차 뚜렷하지 않다.”

 


처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접했던 것은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권력과 사회 구조, 앞으로 내가 살아가며 마주하게 될 세상의 여러 단면을 모르던 시절에도 내게 엄석대는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인물로 다가왔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주기적으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엄석대의 비범함을 실감했다.


그렇다, 엄석대는 비범한 인물이다. 이때 '비범하다'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범하다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과는 상반되게 간결하고 단순하다. 형용사인 ‘비범하다’는 보통 수준보다 훨씬 뛰어남을 가리킨다. 비범하다는 말에는 그 어떤 부정적인 판단이나 긍정적인 판단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포맷변환][크기변환]다운로드.jpg

 

  
“거듭거듭 말하지만 석대는 참으로 무서운 아이였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다 해도 기껏 열대여섯의 소년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는 참아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하는 곳을 아는 듯했다. 그쪽으로는 본능적으로 발달된 감각을 지닌 아이 같았다.”
 

 

사회는 표면적으로 절대선을 숭상한다. 우리가 쌓아온 좋고 나쁜 업보들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Karma’라는 단어는 흔히 사용되곤 한다. 성경에서는 성인과 악마를 구분한다. 고전 동화에는 선인과 악인이 존재한다. “비범함”이라는 단어는 선과 악에 의해 규정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비범한 인물들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비범한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주인공이 된다. 비범함은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석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제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엄석대가 가진 본능적 정치 감각은 분명 어느 사회에서든 그를 중요 인물로 만들었을 것이다.

 

  
“여하튼 나는 석대가 맛보인 그 특이한 단맛에 흠뻑 취했다. 실제로 그날 어둑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 머릿속에는 그의 엄청난 비밀을 담임선생에게 일러바쳐 무얼 어째 보겠다는 생각 따위는 깨끗이 씻겨지고 없었다. 나는 그의 질서와 왕국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믿었고 바랐으며 그 안에서 획득된 나의 남다른 누림도 그러하기를 또한 믿었고 바랐다.”
 

 

인간은 참으로 복합적이다. 어떠한 종류의 비범함 앞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도덕관은 무너지며 정의롭지 않다고 여겼던 행위에 굴복하는 데에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 모두는 때로는 악인의 편에 서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한다.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은 특유의 매력을 가진다.


사람은 선한 동시에 악하다. 작품 속에서 선과 악을 구별해 판단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작품 속 인물을 통해 나를 마주하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인물을 스스로 다시 해석해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 각국의 영화나 소설에는 사연 있는 악인, 매력적인 악인이 등장한다. 창작자가 설정한 인물 구도에서 분명 갈등을 조장하고 주인공의 성공을 막는 포지션에 놓여 있지만 때로 대중은 악인을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캐릭터인 스네이프 교수는 시리즈물이 진행되는 내내 주인공 해리를 방해하고 그를 고깝게 바라보았지만, 시리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의 그런 행동들이 사실은 해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포맷변환][크기변환]common.jpg

 

 

2013년 46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각종 유행어를 탄생시키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신세계'. 범죄 조직 속에서의 정치와 의리를 다룬 이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해 결코 ‘선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화 속 이정재와 황정민의 진한 우정에 눈물을 흘린다.


서부영화에서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 한국의 신세계에 이르기까지 – 대중들은 은연중에 비범한 이들의 ‘마초스러운’ 이야기를 선망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선망은 위험하다. 우리는 인물들을 다시 곱씹어보아야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또 다른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6학년 담임선생님이다. 그의 학급 운영 방식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선생님의 발언은 석대의 행동 나아가 우리는 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를 고민해보게 한다.


 

[포맷변환][크기변환]다운로드 (1).jpg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두 교단 위에 손들고 꿇어앉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아마도 그때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걸 가르치려고 들었던 것이나 아닐지 모르겠다. 우리 중 누구도 그 자리에서는 그 말의 참뜻을 알아듣지 못했고, 더러는 30년이 지난 지금에조차 그 말을 다 이해한 것 같지 않다.”
 

 

나 역시 해가 바뀔 때마다 이 책을 다시 읽어도 선생님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생각은, 과연 나의 몫을 뺏기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 라는 질문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뺏고 뺏기는 행위를 통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러한 나의 생각 조차도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한 것일지 모른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결국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었기에 이런 형태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반대로 소설 속 담임선생님과 같이 또 다른 강압적인 방식으로의 개입이 없다면 선뜻 저항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그사이의 나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다. 사회의 권력구조를 이루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자아를 가진 개인으로서 나는 무엇에 순응하고 무엇에 저항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스스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답을 내지 못하더라도 고민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독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박소현.jpg

 

 

[박소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